오늘, 퇴근 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고객이 있다.
영업이 끝나갈 무렵, 한 여성이 창구로 다가왔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 또래보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 그러나 눈빛은 어딘가 총기가 없어 보였다. 말을 잇는 모습도 조금 어눌했다.
"고객님, 어떤 업무 도와드릴까요?"
"계좌 개설점을 알고 싶은데요."
"고객님 계좌이신가요?"
"아니요..."라고 답한 고객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서류들을 꺼내놓는다.
조심스레 내민 서류는 뜻밖에도 법원의 판결문이었다.
그녀는 성범죄 피해자였다.
어눌한 말투이지만 또박또박 필요한 얘기를 다 해주었다.
범죄자가 7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록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혼자 법원과 법률구조공단을 오가며 자료를 챙겨온 듯했다.
갖고 있는 서류 중에, S 은행의 등기부 등본도 있었다.
'피고가 판결을 이행하지 않아 계좌 압류를 하려는 거구나.'
상황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피고의 계좌에 대한 정보를 원고에게 알려주라는 내용은 없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개인 정보라 법원 판결문이 없다면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법원에 먼저 알아보셔야 합니다."
'혼자서 힘든 싸움을 하느라 얼마나 고될까.'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여성이었다.
범죄자는 그녀의 이런 면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순간 화가 났다. 그렇지만 고객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낼 순 없다.
그녀는 한동안 객장에 앉아 전화를 몇 통 걸더니 조용히 나갔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순수한 얼굴에 담긴 무력감,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든 범죄자의 잔인함이 떠올라 속이 쓰렸다.
창구는 늘 숫자와 서류가 오가는 곳이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삶이 무겁게 흘러들어오는 자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