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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에필로그

Let It Be

by 철없는박영감
에필로그


"형! 이것 봐. 이 기사 좀 봐!"


"왜? 뭔데? 재밌는 기사라도 났어?"


"아니 재밌다기보다는..."


"어디 보자... 「국내 첫 출산한 레즈비언 부부」라... 엥? 뭐야 이게? 징그러. 뭐야 여자들끼리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형,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는? 우리는 남자들끼리 뭐 하는 건데...?"


"어? 그게..."


"이분 이거 안 되겠네, 제일 싫어하는 내로남불 유형이 여기 계셨네..."


"앗!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앗! 사람들이 이런 경우를 무의식 중에 진심이 튀어나왔다고 표현하나? 으악!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진심이 아닐 거라고, 낯설어서 그럴 거라고 항상 스스로 위로해 왔는데... 아니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나랑 다르면 이렇게 거부 반응부터 나오는구나..."


"그렇지? 사실 나도 처음에 기사보고 좀 그랬다. 둘이서 부둥켜안고 있는 사진만 봐도 눈살이 찌푸려지더라고... 내가 밖에서 우리 조심하자고 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아?"


"아~ 그렇네. 나 반성 좀 해야겠다. 진짜 이거는 아니다. 남자 여자 편갈라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나는 되고 너는 안되고... 나 그런 사람이었네... 미안! 반성할게.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사옵니다요~"


"흐흐흐. 그래 우리 같이 벌 좀 받자. 종신형! 서로의 마음속에 무기징역수로 복역! 탕탕탕! 알았지?"


"어! 이거 뭐야? 무슨 벌이 이렇게 개꿀이야? 그 벌이 그 벌이 아닌가 보지? 우히히! 여상제씨 많이 발전하셨네... 썰렁하지만 끼도 부릴 줄 알고... 여우 다 되셨어... 아주~!"


"아이~ 오랜만에 기분 좀 좋게 해 주려다가, 또 놀림감 하나 득템하셨어 아주~! 에이 이게 뭐라고 괜히 안 하던 짓 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네. 뭐 어쨌든 그냥 갇혀있는 게 아니고 징역수야, 징역수! 일을 해야 한단 말이지... 가만히 먹고 자는 게 아니야. 그걸 명심해...!"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나으리~!"


"칫! 내가 오늘은 좀 귀여워서 봐준다..."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나으리~!"


"그만해라~!"


사실 농담으로 끝내긴 했지만, 내 진짜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이 부러움은 불안함에서 기인한다. 들킬까 봐 불안하고, 들키면 비난받을까 불안하고, 비난을 넘어서면 배척당할까 불안하고... 무엇보다 우리는 혹독한 환경이 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불안했다. 기사 속에 그녀들은 어찌 됐든, 용감하게 커밍 아웃했고, 당당히 결혼식도 올렸고, 마지막으로 축복받을 생명을 얻었다. 우리 같은 처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결말이다.


이들의 파격적인 행보에 처음엔 다소 부정적이었다. 좀 이기적으로 느껴졌달까? 자기들만 행복하면 된다는 심보 같았다. 왜냐하면 이들의 선택으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더욱 극과 극으로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잘 살길 응원한다. 아버님의 말씀대로 '살게는 해줘야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다. 댓글을 보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겁먹어서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말하라고 한다. 꼭 정체성에 대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에게 말하면 그냥 내버려 둔다.


무슨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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