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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Dec 06. 2023

철들어야지, 안 그래?

2. 회사와 나, 우린 제법 안 어울려요

아침 일곱 시. 알람을 듣고 깬다. 의식의 반틈이 아직 저편에 머물렀다. 밍기적거리면 안 된다 하면서 스스로에게 딱 오 분을 더 준다. 퍼렇게 시린 스마트폰 불빛에 메마른 눈을 적셔 가며 의식을 강제로 끌어낸다. 고양시민은 갈 길이 멀다. 지각에는 취미가 없다. 열 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강남 땅 한복판으로.


반 년 가까운 한량 생활이 끝났다. 세 번째 정규직 일자리를 따 냈다. 계속해서 술이라는 주제를 다루게 된 것 외에 모든 게 변했다. 확연히 안정감이 든다. 아무렴은 영세한 작은 회사에 다니던 때에 비할 바 아니다.


중견이기는 해도 규모가 주는 묵직함이 있다. 하루아침에 망조가 깃들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변에 소식을 전하기도 쉽다. 대중적 인지도를 조금 가진 곳이다. 요즘은 여기 다녀, 여기서 이런 일을 하게 됐어 정도로 현재 나의 근황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편리하다. 재취업 소식을 알리니 어째선지 전과 다르게 격한 축하가 이어진다. ‘건실한 청년’이 되어 받는 특혜가 톡톡하다.



부모님에게도 면이 좀 선다. 알 만한 곳에 취업하면 제일 신나는 쪽은 아마 당사자보다 부모일지도 모른다. 부모 세대는 보통 자식 세대의 일자리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하는 일의 종류나 성격을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특히 나처럼 신상에 관한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나누지 않는 자식을 둔 부모라면 더욱 그렇다. 물어도 시원찮은 대답을 돌려줄 뿐이라 구태여 더 캐묻지도 않게 된다. 그런 아들내미가 갑작스레 번듯한 명패 하나를 들고 온 셈이다.


"자기 아들 요새 뭐해?" 따위 흔한 질문에 전처럼 우물쭈물하거나 말이 길어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응, 내새끼 요새 이런 데 다닌다네 하며 회사 이름을 가볍게 던지고선 상대의 반응을 슬쩍 살피는, 자식 둔 부모만의 ‘플렉스’가 이제 가능해졌다. 실제로 부모님은 내 재취업 소식에 연신 장하다며 어느 때보다 기뻐했다.



물론 기쁨의 핵심은 안도감일 것이다. 어디로 튈 지 모르게 삐죽빼죽한 인생곡선을 그리고 사는 자식을 보는 부모 심정이 편할 리 없다. 그래서 안정적인 인생을 강조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잡도록 일평생 자식에게 권면한다.


엄마는 나에게, 아버지처럼 공무원이 되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물론 귓등으로도 들어본 일 없다. 단순히 안정을 위해 직업을 택하는 인생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색 빠진 밋밋한 삶에 다름없었고 이는 내게 절망과 같았다.


나는 나만의 총천연색 팔레트를 들고, 볼 만한 그림이 되든 말든 멋대로 인생을 칠해야 했다. 성장기때부터 그러마고 선언해 왔다. 그런데 나이를 좀 먹고서 모처럼 당신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니, 부모님 입장에선 ‘이놈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하며 안도하는 것이 당연하다.



안도하기는 나도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내보일 만한 일자리를 잡아 한없이 기뻤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엉성한 첫 취업을 했을 때 오히려 더 기뻤다. 원색적으로 기뻐할 수 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금번 일자리를 잡을 때는 정말이지 어떠한 환상과 기대도 찾아들지 않았다.


앞서 열거했듯 회사 간판이 주는 특장점은 분명 달달했지만, 직장 생활이란 짓궂은 밸런스 게임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가 괜찮다 싶으면 다른 무언가가 반드시 나를 괴롭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남들만큼 긴 경력을 갖지 못했어도 이를 깨닫는 데 그리 대단한 관록이 필요하지 않았다. 직장생활은 직장생활이다. 피고용인으로서 남의 돈 벌어 먹는 일은 모두 험난하다.


따라서 환희 대신, 다만 결혼을 앞두고 다시 돈을 벌게 되었다는 안도와, 내 인생 전반을 관통해왔던 고집스런 삶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데 대한 고무적인 기운이 얽혀 자아낸, 좋지도 어떻지도 않은 묘한 심상만을 덤덤하게 훑을 뿐이었다.




임시 사원증이 정식 사원증으로 바뀌었다. 이름과 소속 부서가 쓰인 윗편 정중앙에 어색한 증명사진이 컬러로 또렷히 박혔다. 번듯하다. 이 정도면 비로소 남들이 다 이야기하는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된 걸까. 부모가 안심하고 살 만한 착실한 아들로 불릴 자격을 얻었을까.


생각만큼 명쾌한 해답을 얻은 기분은 아니지만 내 발로 구태여 좁은 문 비집고 들어왔으니 가없는 생각을 말기로 한다. 가장이 될 사람으로서의 당위와 의무에 중심을 둔다. ‘철 들어야지, 안 그래?’ 스스로를 타이른다. 


그럭저럭 버티려면 버틸 만한 일상이라 생각한다. 하루를 묵묵하게 살아낸다. 미래를 그린다. 연차별 저축액을 상정한다. 적금을 붓는다. 어쩌면 이제는 정말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누구나 밑그림 그린 대로 곧이 완성품을 낼 수 있다면 세상살이 어렵다 할 이 아무도 없다. 상대적으로 더 규모 있고 체계가 잡힌 새 회사와 나는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흘러간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반복 재생됐다.


산 채로 매장해 유기했던 보람과 낭만 따위의 것들이, 아우성치며 지하에서 관짝 문을 세차게 걷어차기 시작한 것이다. 쾅 쾅. 이거 열어. 네가 우리 없이 사람다운 모양새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가졌다고, 이제 또 그렇게는 안 된다며 저항을 했다. 이제 나는 세상 혼자 사는 인간이 아니다. 서로 힘을 합해 살아야 할 아내가 있다. 또 안팎으로 기특한 아들 지위를 생애 처음 얻었다. 남들 다 말하듯 자아실현이, 꿈과 낭만이 뜨끈한 밥 먹여 주는 거 아니지 않나.


진득하니 건실하게 미래를 그리며 살려거든 들끓는 불만과 회의를 잠재워야 했다. 버티어 내야만 했다. 애를 썼지만 안에서부터 치밀어오는 역한 기운에 욕지기를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속수무책이었다. 바닷물에 내던져진 민물고기처럼 제 머물 곳이 아닌 데에서 스며든 짜고 쓴 기운을 온 몸으로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얼마 못 가 나는 다시 나답게 분주히 비죽댔다. 집단에 남들처럼 녹아들 수 없는 명확한 사유가 뭘까 생각했다. 좌절감을 느꼈던 다양한 사례가 머리를 스쳤다. 분석이 필요해 보였다.


집단이 요구하는 모습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고야 마는 이유. 이를 알기 위해서는 나에게 회사생활의 폐쇄적이고 불합리한 성질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절망의 사례를 하나하나 뜯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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