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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Sep 20. 2021

가을 우체국 앞에서

아침 동산에서(9)

   뜨거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태풍도 큰 피해 없이 한반도를 지나갔다. 어느덧 추석도 다가왔고 이제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 참으로 낭만적인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봄, 여름이 소년과 청년을 의미한다면 가을은 중년,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 남자가 떠오른다. 가슴 뛰는 봄과 뜨거웠던 여름을 다 보내고 이제는 좀 쉬려고 하는 중년의 남자가 바로 가을이 아닐까?


중년의 가을남자가 살고 있을 법한 오두막


   가을의 남자는 이제 좀 쉬면서 자신이 달려왔던 지난날들을 되돌이켜 보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뜨거운 폭염 속에서 탈진할 뻔도 했고 거센 폭풍우에 휘청거린 적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모두 물러가고 주위는 조용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맞서느라 푸르던 나뭇잎들은 모두 말라 낙엽으로 땅에 떨어져 버렸다. 가을의 남자는 발밑의 낙엽을 밟아본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낙엽은 부서져 버린다. 마음이 허허롭다.  


https://youtu.be/K6Ya2XLRPZo

윤도현-가을 우체국 앞에서

 

   하지만 손에 쥔 것은 없다. 만약 있다면 부치려다 만 편지 한 통뿐이다. 젊을 때부터  사랑했던  그녀에게 부치려고 했으나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래서 가을 우체국 앞에서 혹시 올 지 모를 그녀를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기다려도 그녀는 오지 않고 시간만 가고 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본다, 한여름 소나기에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눈보라 속에서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버텨 준 그들이 대견하고 한편으론 고맙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너무 늙어버렸음을 깨닫는다. 머리 위로 소복이 내린 흰머리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흰머리 날리고 있는 갈대밭


   그는 우체국 계단에 앉아서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생각해 본다.


   '나는 나의 길을 제대로 걸어왔던 것일까?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로 40대엔 불혹(不惑), 50에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셨는데, 50이 다 된 나는 아직도 주위의 것에 매일 같이 흔들리고, 하늘의 명은 커녕 당장 내일의 내 앞길도 알 수가 없으니...'


   그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그런가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50의 지천명은 그렇다 치고라도 40대 불혹까지는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남은 것은 그저 단풍과 낙엽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싱그러운 초록 빛깔로 바람에 흔들리던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그때는 꿈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시간이 흐르면 모두 다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노랗고 붉게 물든 저 낙엽들 뿐이라니...


   그는 아픈 다리를 움켜쥐며 일어선다. 잠깐 우연한 생각에 빠졌었는데 벌써 날이 저물려고 하는 것도 몰랐다. 기다리던 그녀는 여전히 오지 않는다. 저 멀리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이곳을 떠난 이후에도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얼마나 오래 남을까를 생각한다.

 

우리집에서 바라본 저녁 노을


   그는 어두워지기 전에 이정표를 따라 내려온다. 그가 가고 난 이후에도 이곳의 아름다운 것은 홀로 서서 그가 이곳에 와서 잠시 머물렀다는 것을 기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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