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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Sep 28. 2021

오징어 게임과 오징어 달구지

아침 동산에서(10)

소위 말하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이 말을 꼭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요즘 '오징어 게임'이란 넷플릭스 드라마가 인기다. 하도 인기라 안 보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또 옛날 감성이 조금 생각날까 해서 나도 몇 번 봤는데 우리 때 갬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상당히 잔인하기도 하고 또, 너무 돈과 연관되다 보니 요즘의 삭막한 세태 속에서 어릴 적 감성이 파묻히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초반부에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 - 내 어릴 때 우리 동네에서는 이걸 오징어 달구지, 혹은 오징어 육군이라 불렀었다.(왜 이렇게 불렀었는지는 아직도 모름) - 을 하고 노는 것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오징어 그림 안에 있는 아이들의 수비를 물리치고 오징어 허리를 가로질러 가면 깽깽이 발에서 두발로 뛸 수가 있다. 그리고 나서 오징어 다리에서 돌격해서 적들을 물리치고 오징어 머리 부분을 - 정확히 말하면 세모와 동그라미 그리고 그 밖에까지 - 밟아버리면 우리 팀이 이기는 것이다.


   '오!, 징!, 어!'


   드라마에 나오는 성기훈(이정재 분)의 아역이 상대편에게 런닝셔츠를 찢겨지면서도 오징어 머리 부분을 밟으며 이 세 글자를 외칠 때, 머나 먼 내 7살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도 그때 그 아이처럼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더랬다. 그때만큼은 의기양양해져서 좀 있다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을지언정 내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게임에 진 상대방이 다시 한판 하자고 해도 런닝을 벗어버리고 또 상대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는 런닝이 없으니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덧 날은 어둑어둑해져 오고 멀리서 누구누구네 엄마가 '밥 먹어라~'는 말이 들리면 하나 둘 자기네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제서야 나는 흙 묻고 찢겨진 런닝을 손에 들고 근심스런 표정으로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뿐인가?, 한겨울에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면서 했던 구슬치기, 팽이치기. 나중에는 손이 부르트다 못해 쩍쩍 갈라져서 피가 나는 것도 모르고 했던 놀이들이다. 흙바닥에서 삼각형을 그려놓고 구슬을 던져 그 안의 구슬을 따먹는 구슬치기, 구슬을 많이 따서 신발주머니 하나 가득 구슬이 모이면 마치 부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곤 했다. 잃은 애들에게 몇 개 나눠주는 인심도 쓰면서...(그래야 내일도 할 수 있으니~ㅎ) 팽이는 오줌통에 담가놓으면 나뭇결에 금이 가지 않고 단단해진다고 해서 밤새 요강에 담가 두었다가 말리기를 반복한 뒤, 해가 뜨면 그 냄새나는 걸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아이들과 팽이치기를 하러 가던 것이 생각난다. 서로의 팽이를 향해 힘껏 채를 휘둘러서 상대편 것은 죽고 내것은 여전히 돌고 있을 때의 쾌감이란... 그렇게 손이 부르트고, 또 낫고 하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어갔던 것이 아닐까?


   딱지치기와 비석 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상대편 딱지를 넘기기 위해 힘껏 내리쳤던 딱지들... 그 많던 딱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있는 힘껏 치느라 고무팔처럼 늘어난 팔로 저녁에는 내일의 승부를 위해 또 딱지를 접곤 했다. 교과서와 공책은 물론이고 신문지와 박스까지, 빳빳한 종이를 찾아 헤매었던 날들, -그때만 해도 종이가 이렇게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종이를 발견하면 내일은 꼭 옆집 병수 녀석에게 복수하겠노라 다짐하며 침을 묻혀가며 딱지를 접어놓고 그 딱지를 베개밑에 베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딱지가 최대한 얍실?하게 접힐 수록 잘 안넘어간다~ㅋ) 그리고 비석 치기는 거의 남녀 공통이었는데(구슬치기, 딱지치기, 팽이치기가 남자 애들의 놀이라면 고무줄, 공기놀이, 인형놀이는 여자들의 놀이였다.) 마음에 드는 여자애 앞에서 비석을 정확하게 쓰러뜨려 내 실력을 뽐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학교에 다녀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놀기 바빴다. 그러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아차, 오늘 선생님이 내 준 숙제가 있었지'하며 정신을 차리고 숙제를 시작했지만 낮에 열나게 뛰어논 데다 흐린 전등불 밑에서는 잠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으레 지각과 함께 숙제 안 해간 벌로 화장실 청소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의리 있는 내 고추 친구(?)들은 내가 화장실 청소하는 것을 도와서 같이 해 주고는 또 학교 운동장에서 이런저런 놀이들로 하루 해를 채웠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게임들은 어떤가? 일단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많은 사람을 죽일수록 나의 레벨은 더 높아간다. 돈을 주고 능력치가 높은 무기를 살 수도 있다. 그러면 나의 레벨은 더욱 더 올라간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이 게임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일단 내가 살아야 하고 내가 더 높은 레벨에 올라가야 하니까... 모두가 각개전투, 각자도생이다. 마치 현실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모두가 남을 위해 신경 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일신을 위해서 분투 중이다. 지연, 학연, 혈연... 이런 것들을 따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것조차도 나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것들도 헌신짝처럼 버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의 게임에서 함께 게임하는 사람들과 팀을 만들고 노약자와 여자를 자신의 팀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의 매력이 돋보인다. 이렇듯 각박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은 가끔씩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는 왕년에 오징어 달구지 좀 해본 사람답게 팀웍의 힘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신경 써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나이 50줄에 들어선 사람답게 '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어릴 때 오징어 달구지 할 때는 힘이 모자란다고 팀에서 내치는 법이 없었다. 몸집이 비슷한 애들끼리 맞추고 그래도 안되면 '건달꾼'이란 것을 둬서 어떻게든 모두 같이 갔던 것이다. 자기만 챙기는 요즘 세상에서 이런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가기에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이제 5편까지 봤는데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 성기훈의 이런 모습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게임 같은 현실 속에서도 우리 팀 - 우리 가족, 우리 직장, 우리 친구... - 을 믿고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성기훈의 팀이 결국 승리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거칠고 냉정하고 불공평한 현실 속에서 약자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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