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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청소일은 그야말로 더위 그리고 모기와의 전쟁이었다. 층마다 들어선 사무실엔 에어컨이 제법 시원하게 나와 청소를 하다 보면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문 한번 열어 외부 계단으로 나오면 그야말로 심한 기온차에 덥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매웠다.
차츰 청소 도구 사용법이나 세제 아껴 쓰는 법, 조금 더 일을 수월하게 하는 노하우 등은 익혔는데 눈치 덜 보며 사무실 안을 오래도록 청소하는 요령은 터득하기 힘들었다. 늘 까맣게 머리를 염색하고 당당하게 청소 유니폼 바지를 무릎까지 접어 일하는 한 동료는 여유 있게 여러 사무실의 탕비실을 돌아다니며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하다가 누군가 오면 바로 테이블을 닦았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있었는지 저번 달부터 반장은 줄곧 말했다.
- 여기 사무실 쓰는 사람들 알게 모르게, 아니면 대놓고 다 우리를 살펴봅니다. 그러니 농땡이 피우지 마세요.. 아니면 어디 숨어서 하세요. 괜히 찍히면 여러 동료들도 다 눈엣가시처럼 바라보니까 서로 예의를 지키자고요!
매일 저런 소리를 들으니 원래 융통성이 영에 가까웠던 홍남이는 땡볕에 노출되는 사무실 밖 화장실 변기에 앉아 숨이 턱 막힌 채 쉬어야 했고, 그마저도 다른 사람이 오면 곧장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건물 한편에 청소노동자를 위한 휴게실이 하나 있었지만 워낙 좁기도 했고 혼자 가만히 앉아 있고 싶었던 홍남이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상당하기도 해서 해서 하루에 한 번밖에 들르지 않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간단하게 싸 온 샐러드로 점심을 때우고 남은 시간 혼자 사무실 빌딩에서 좀 떨어진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던 홍남이는 자주 말하지는 않지만 눈인사 정도는 하게 된 순애씨가 카페로 들어오는 것을 봤다.
- 여기까지 웬일이지?
혹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색할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책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순애씨는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출입구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얼음을 튕기며 가방에서 시집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는 이내 작은 파우치 속에서 립스틱과 연필을 빼내어 둥그렇게 입술을 그리고 연필로는 책에 줄을 치며 빠져들며 읽고 있었다.
홍남이는 이상한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만든 청소노동자의 모습이란 편견에 시집은 꽤 갖다 붙이기 어려운 항목이었다. 자신도 청소 일을 하면서 문학을 좋아하고 시원한 카페에서 가격 생각 안 하고 마음껏 음료를 사 먹는 생활을 즐기지만 굳이 이런 모습을 빌딩 가까운 데서 드러내지 않는 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사정이 뻔하디 뻔하기 때문이다. 휴게실에 모이면 누구 남편은 아파서 누워 있고, 늙은 부모님의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혹은 모자란 연금으로 생활하기 팍팍해 어쩔 수 없이 일하러 나온 사람과 이혼 후 자신이 일인 가장이라 벌 수밖에 없는 속내를 웃으며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홍남이는 휴게실에서 남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다. 남편의 보험금과 복권 당첨금이 통장에 고이 잠들어 있는, 그들보다 돈이 궁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티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순애 씨는 어떤 사람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흘끗 본다는 게 그만 눈이 마주쳐 버렸다.
- 어머, 남이언니. 여기서 뭐해요?
- 안녕하세요. 순애씨.
- 언니도 여기 책 읽으러 왔어요? 김약국의 딸들? 이거 유명한 소설 아니에요?
- 순애씨는.. 시집 읽나 봐요..
- 아.. 부끄럽지만 저 시인이 되는 게 꿈이거든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필사도 하고 습작도 하면서 공모도 해보고 그래요. 근데 언니도 여기 카페까지 온 것 보면 다른 언니들 눈 피해서 온 거 맞죠? 나처럼 비밀로 하려고?
- 맞아요. 내 시간에 뭘 하든 아무 상관없긴 한데 괜히 이 나이 먹고 이런 일 하면서 점심시간에 책 읽으면 별꼴로 볼까 봐요.. 말하고 보니 더 우습네요.
- 언니 그거 모르죠? 우리들 사이에서 언니 좀.. 이상한 이미지인 거? 아니 나이는 육십이라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젊어 보이고, 남편이 있다고는 하는데 없어 보이고, 도대체 어디서 사모님 행세나 꽤 했던 사람 같은데 화장실 변기나 열심히 닦고 있고.. 그래서 언니는 우리들 사이에서 뭐랄까.. 집 쫄딱 망한 사모님? 정도로 소문나고 있어요.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는 예상했지만 망한 집 사모님이라니.. 기가 차서 대꾸할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얘기는 일절 뭣도 한 적이 없는데 그냥 있으려니 생각한 모양이었고 중년 아줌마들 특유의 붙임성과 억척스러움이 없어 사모 타이틀을 달았나 싶었다. 그래도 사모님이라고 생각해 줘 고맙다고 해야 할지, 망해도 열심히 살려는 모습이 은근히 아니꼽게 보여 짜증이 나는 건지 애매한 가운데 순애씨는 계속 얘기를 이어 나갔다.
- 근데 저는 언니랑 말 한 번 하지 않았지만 좋았어요. 뭔가 쉽게 다가가지 못할 분위기는 있긴 했어도 무섭거나 예의 없는 쪽은 아니었고 오히려 적당하게 거리 두는 게 눈에 보여서 안심되는 사람이기도 했거든요. 왜 알잖아요. 이런데 여자들 많으면 말 많고 질투 많고 기 세고 그런 거.. 전 그런 거 정말 싫거든요. 그냥 내 할 일만 딱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시 쓰는 일만 계속하고 싶어요. - 순애씨.. 결혼했어요?
- 아이참. 언니는. 내가 나이가 몇인데요. 저 쉰다섯이에요. 큰 애는 대학교 3학년이고, 막내가 연년생이에요. 걘 학교 안 다니고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해요. 남편이랑은 십 년도 전에 갈라서고 애 둘 키우면서 여기저기서 청소했어요.
큰 애 대학 보내고, 막내는 공부대신 자기 장사를 해보고 싶다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처음 시가 너무 쓰고 싶었다고 수애 씨는 말했다. 어떻게든 대학 등록금만 벌어 놓으면 자신도 본인을 위해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한 순간을 잊지 않고 그 길로 곧장 서점에 가서 유명하다는 시집 4권을 사 와 밤새 읽고 따라 쓰며 인생 처음으로 밤이 좋아졌다고 고백했다.
- 저는 그동안 밤만 되면 정말 괴로웠거든요? 잠든 아이들 모습 볼 때마다 앞으로 어떻게 먹여 살리나 고민스러웠으니까요. 또 이 밤을 보내고 나면 아침 일찍 청소하러 집 현관을 나서야 하는데 점점 그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영원히 이 인생이 반복될 것 같은 지긋함이었나 봐요. 사실 집에 남자도 없어서 뉴스 보다가 잠들면 현관 복도에 발소리만 나도 섬뜩했고요. 그런데 그날은. 처음 시집을 펼쳐서 둘째가 쓰다 만 공책에 내 이름을 적고 한 자 한 자 따라 써보는데 창문 밖의 밤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어요. 교회 간판에서 나온 빨간 불빛도 따뜻했고요, 편의점 환한 간판도 그렇게 안심이 되더라고요. 이런 감정이.. 제가 말을 잘 못해서.. 죄송해요. 언니. 제가 쓸데없는 말이 많았죠?
- 아마 순애씨가 그날 느낀 건.. 안도감.. 같은 거 아니었을까요? 누구나 마음속에는 자신이 키운 불안이 있어요. 자식보다 더 질긴 운명으로 제 팔자에 새겨지죠. 나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운명처럼 순애씨는 시에서 뭔가를 발견한 거죠. 그동안 품어왔던 불안을 한꺼번에 잠재울 뭔가를요. 이젠 아이들도 제 앞가림할 정도로 키워 냈으니 앞으로는 순애씨가 클 때인 거예요. 그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을지도요.
홍남이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언제 일어날지 기약 없는 남편. 평생, 제 나이 여든이 다 되도록 남편을 간호하면서 늙어갈 처치를 생각할 때마다 자신도 불치병에 걸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차라리 같이 죽고 싶었던 날, 약국에서 불면증 약을 모아 한 손에 움켜쥐던 날. 앞으로의 삶은 공포 그 자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럴 때마다 여은정이 옆에 있어줬고 주변의 도움으로 조금씩 희망을 발견하는 날이 생겼다. 그중에서 책이 그랬고, 담배는 구원이었고, 소주는 하루를 다시 살게 하는 물약이었다.
그날 순애씨와 헤어지고 홍남이는 가끔씩 청소하며 그녀와 눈을 마주치면 비밀스러운 웃음을 나눴다. 혹여 순애씨가 카페에서 만난 다음날부터 사람 많은 데서 친하게 다가오면 어쩌나 고민스러웠는데 역시 그녀는 비밀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러 이야깃거리를 가져왔고 홍남이는 홍남이대로 집에 있어도 읽지 않는 시집을 선물하며 이따금씩 그 카페에 앉아 점심시간을 나눠 가졌다.
여전히 여름은 제 기운대로 더웠고 반장은 오늘도 몇 가지 당부를 말하며 화장실에 날파리가 자주 나온다며 청결에 더 신경 쓰란 말을 전했다. 그렇게 여름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