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사를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살고 있던 동네는, 역 한둘 정도 차이가 나긴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리 잡게 된 동네였다. 꽤 오랜 시간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기엔 난 내 생활을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운동도, 친구들과의 약속도, 취미로 하는 재봉틀 수업까지 다 이쪽에 터를 잡고 있었고. 매일같이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버스 한 번이면 되었으니 못할 것도 아니었다. 익숙한 동네와 익숙한 집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리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난 집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이사하기 전까지 나는 거의 10년 동안 반지하 원룸에 살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지방에서 나 하나를 유학 보내는 일 자체가 우리 집엔 무리였고, 나는 일찍부터 과외를 2개씩 하거나 인턴 생활을 하며 퇴근길에 과외를 하나 하고 들어가곤 했다.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 뒤에도 처음엔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보냈으니 조금 더 넓은 반지하 집으로 이사해서 살았다.
살던 집은 내가 처음으로 반지하에서 벗어나 구한 집이었다. 이사하던 날에는 눈이 정말 많이 왔는데, 정남향이던 그 집은 그런 궂은 날씨에도 낮에는 불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환했다. 아직도 그 환한 거실을 처음 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당시의 전세 대란으로 전세금이 폭락한 덕도 있었지만, 어땠든 서울에선 이 가격으로 꿈도 못 꾸는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살 수 있었다. 나에겐 몹시도 큰 감동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이 집에 대한 애정도 커지게 됐다.
하지만 편도 30km가 넘는 출퇴근길, 날씨가 궂은날엔 때때로 한참이나 늘어지는 출근시간을 겪으며 이사를 하지 않는 게 밀린 숙제를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다. 아무리 지금 생활이 좋고 이 집이 좋아도 계속 이렇게 다니는 걸 고집하는 게 과연 맞는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강남에서 일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광화문으로 일터를 옮기게 되었던 탓에, 이사를 준비하지 못하고 그 집에서 전세 계약을 한 번 더 연장한 상태였다. 그렇게 2년 정도 더 먼 길을 출퇴근하면서 평일엔 더 이상 밝은 집을 볼 수 없게 되고 나니, 다음번엔 재계약을 하는 게 바보 같은 일일 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긴 했다.
그러던 중, 거의 6년을 사는 내내 연락 한 번 없던 임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그동안은 서로 연락할 일도 없었지만, 있더라도 부동산을 통해서만 간결하게 해 왔다.) 군더더기 없고 정중한 연락이었다. "안녕하세요. 임대인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집을 매각해야 돼서 미리 알려드립니다. 혹시 살고 계신 집을 매입하고 싶은 의사가 있으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출퇴근이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난 아마 매입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전세조차 재계약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되는 시점이었으니, 이 집을 매입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였다. 임대인의 연락에는 숙고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연락을 받고 곧 결론이 났다. 아, 비용적인 문제도 당연히 있었고. 다음 날 임대인의 연락을 받은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무래도 매입은 어렵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고 나니 다음 순서는 집을 보여주는 것이다. 낯선 이들이 묻지도 않고 우리 집 불을 켜며 돌아보고, 짐이 많네 어디는 고쳐야겠네 하면서 평가하는 광경은 나에게 전혀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쉬어야 하는 시간을 낯선 이들에게 침범당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연락처가 다른 부동산까지 전해져 난데없는 카톡이 오는 것도 불쾌했다(원래 거래하던 공인중개사분은 그러지 않으셨는데, 처음 본 부동산에서 난데없이 카톡으로 연락해 일방적으로 일정 얘기를 하셨던 탓이다.)
그때 나는 이사를 결심했다. 이 집에 살 이유가 없게 됐다. 이미 고민하던 일인데 이런 연락이 온 것은 어쩌면 우주의 기운이 나를 이사하게 등 떠미는 걸 지도 모르겠다. 매물로 나온 집은 더 이상 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없었다. 지금은 정말 좋은 분을 만났지만 이 집이 팔리고 나면 어떤 사람이 임대인이 될지도 몰라 불안했다(세상에는 나쁜 임대인도 많은데, 이 경우에는 내가 임대인을 고를 순 없으니까.) 아니, 애초에 전세 기간이 끝나면 계약을 연장해 줄 지도 알 수 없었다. 한 번 불안해지고 나니까 그동안 애정하던 집에 배신당한 것처럼, 내 마음이 짜게 식었다.
그렇게 부동산에 나의 이사 의사도 전달했다. 전세 계약이 있는 집을 매입하는 사람은, 나와 이전 임대인의 계약을 그대로 승계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부동산에서도 몇 차례 그 말씀을 해주시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서로의 니즈가 맞는다면, 계약 만기 전에라도 매입자가 원하는 시점에 집에서 이사를 나가겠다고 말해달라고 전했다.
그때부터 퇴근길에 여기저기 들러서 이사할 동네를 보러 다니게 되었다. 이사를 언제 하게 될지 정해진 바는 없지만 머지않아 하게 된 건 확실하니까. 시간을 두고 회사에서 출퇴근하기 좋은 곳을 봐두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음속에 컴퍼스를 가지고 회사를 가운데 두고 원을 그렸다. 그간 출퇴근 한 시간을 보상받고 싶다는 듯 이번 나의 목표는 무조건 도보가 가능한 곳이었다. 근데 이게 꼭 매일 도보로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고, 유사시(?)에 마음을 먹으면 도보로 갈 수 있는, 언덕이 많지 않은 도보 30분 정도의 거리.
직장이 광화문이었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선택지가 많이 남지는 않더라. 광화문 주변은 일단 워낙 사무실이 많은 동네이기 때문에 주거지 후보로 추릴 수 있는 동네가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주거지는 말도 안 되게 비싸기도 했고. 그렇게 해서 내가 돌아보게 된 동네는 서촌이랑 후암동, 갈월동, 청파동의 서울역 일대. 그리고 회현역 부근 정도.
아무래도 이곳들은 그동안 살던 곳과 많이 달랐다. 차가 들어올 수 없어 보이는, 대체 택배를 어떻게 받나 싶은 작고 가파른 골목이 정말 많았다. 건물들 자체도 오래되어서, 물론 간혹 깨끗한 건물도 있긴 하지만 동네 자체에서 연륜이 많이 느껴졌다. 편의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병원이든 운동이든 조금 나가야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편의점도 그리 가깝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덜 좋은 집에서도, 조금 더 불편한 동네에서도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장착하고 갔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큰 컨디션이었다. 그게 아니면 신축 오피스텔이었는데, 이미 내 예산 범위를 크게 벗어난 곳들이었다. 작은 평수의 원룸 타입이기도 했고. 집들을 방문해 보기도 전에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에 가격대가 맞고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해 보이는 집이 있어 찾아가 본 적이 있다. 그동안 보았던 곳 중 가장 쾌적해 보이고 현실적인 가격대라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이사할 만하다는 생각을 언뜻 하게 됐다.
찾아가 보니 건물 외관이 무척 낡아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부는 정말 갓 리모델링한 집이었다. 호텔 같은 깔끔한 인테리어에, 방이 2개였고 붙박이장도 있어서 꽤나 좋아 보였다. 화장실이랑 부엌까지 싹 고쳐서 깨끗하고 예뻤다. 그런데 정말 묘하게, 이렇게 깨끗하고 좋은 집인데 마음에 쏙 들지 않고 마음이 불편한 거다. 처음에는 현관에서 바로 복도가 이어지고 복도 끝에 주방과 작은 거실이 있는 구조가 답답하게 느껴졌나, 생각했다.
그 집에서 나올 때쯤 깨달았다. 그 집에는 창문이 없었다. 지하가 아니고 1층인데 창이라고는 부엌에 작은 창 하나만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집이 아니라 호텔 같은 느낌이 났고 나에게 아늑한 느낌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나오면서 중개사분께 창문이 없어서 마음에 안 든다고 말씀드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근처의 다른 집을 보여 주셨다. 그 예산과 조건에 볼 수 있는 집은 이 정도일 거라고. 친분이 있는 분의 집이었는지, 인사를 나누면서 "앞집이 창문이 없어서 맘에 안 든대."라고 하셨다. 기가 차다는 듯이. 투덜대는 투로 말씀을 하시는데 왠지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그 집도 창문이 이상하게 나있었다. 집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기도 했고.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난 좀 우울했다. 아니 울고 싶었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직장 생활을 10년 넘게 했는데, 이사를 하려고 보니 내가 살 수 있는 집이 낡은 동네에 창문이 없는 집이라니. 매매도 아니고 심지어 전세인데. 온전히 내 돈으로 전세금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세라도 들어가려면 난 대출도 더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이게 나의 30대 중반, 직장 생활 약 11년 동안의 삶에 대한 성적표인 것만 같아서 몹시 속상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동안 예쁘게만 보이던 남산이 그날은 참 잔인해 보였다.
오랫동안 잘 살아온 집에서 떠나야 하는 데서 오는 허탈함도 있었다. 결국은 다른 사람의 집이었는데, 내가 너무 애정을 담아 살아왔던 걸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그 집에서 평생 살 생각을 한 것도 아니건만. 막상 이사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마음에 드는 동네가 보이지 않으니 집 없는 설움도 느껴진 것 같다. 살던 집이 매매로 나온 상황이기도 했으니,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왕복 2시간이 넘는 출퇴근 길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생활을 해보겠다고 다짐하고 알아보기 시작한 거였다. 그런데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낡은 동네에서의 창문 없는 집이라니. 그게 아니라면 단칸방이라니.
아무리 이게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었다. 집이라는 건 내 일상에 절대적으로 큰 부분인 것은 맞으니까. 생각이 정말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이미 빌라 전세에 대해 나오는 많은 흉흉한 이야기들을 감수하기로 결심했건만(아파트 전세는 꿈도 꿀 수 없는 가격이었으니까) 여기서 좀 더 물러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많이 슬펐다. 대체 난 어디에 살아야 하는 걸까?
#뚝딱대는구옥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