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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먀우 Apr 11. 2021

독일:택배 수령의 공포

며칠 전에 Yes24를 통해 책을 샀다. 꽤 느즈막한 오후에 주문을 했는데 당일 배송을 해 준다고 적혀 있었고 불신을 가득 담아 정말 당일에 오는 걸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시켰다. 그런데 그 날 배송이 오지 않고, 그 다음 날까지 운송장 조회가 되지 않아서, 얼른 받아서 보고 싶은 책이었던 탓에 분실이 된 만의 하나의 경우라면 빠른 조치를 취하고 싶은 마음에 고객 센터에 전화를 해 봤다. 운송장 조회가 되지 않는데,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진 걸까요? 그랬더니 상담사님이 너무나도 미안하다며, 상황을 확인해보고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다. 황망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더니, 10분쯤 후 다른 분에게서 다시 전화가 와 물류가 밀려 있어서 오늘 오후 9시 이후에나 배송이 가능할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배송 지연 보상금 2천원을 포인트로 적립해 준다고 했다. 세상에 이렇게나 충격적일 수가.


충격 포인트 하나. 뭐가 미안한 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절대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둘. 원인 파악을 해서 다시 전화를 해 준다. 원인 파악도, 다시 전화도 독일에서는 꿈도 꾸지 말 것. 셋. 그 미안함과 지연의 결과물이 고작 하루다. 송장 조회만 되었더라면 전화를 하지 않았을 그런 짧은 시간이었다. 로그인을 해 보니 "총알배송 지연 보상금" 적립금 2천원이 들어와 있었다.


얼마 전 누군가가 독일 택배에 대해 불평하는 말에 '그래도 독일 택배는 오긴 한다' 고 말을 얹은 적이 있다. 독일의 신뢰와 믿음이 가득한 DHL은 택배를 내 경험 상 택배를 어떻게 수령은 가능하게 해 주긴 한다. 물론 알 수 없는 어느 집에 맡겨 둔 택배를 찾아 온 이웃을 떠돌아 다니고 쪽지를 남기거나, 수령 가능한 시간에 택배가 없거나, 우리 집까지 올라오기 싫어하거나,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구분하지 못해 택배를 반송시키거나 하는 인고의 시간과 수많은 가능성을 거쳤을 때 말이지만, 어쨌거나 택배를 언젠가는 내 손에 받아볼 수 있다는 믿음이 기본적으로 있다. 세상엔 시킨 택배가 내 손에 도착한다는 것조차 못 하는 나라들 덕분에 독일이 근면, 성실, 일을 잘 해냄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음은 세상이 아직 아름답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른다.


독일에서는 절대로 한국처럼 퇴근했더니 쨔잔, 문 앞에서 택배가 저를 마법같이 기다리고 있어요!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택배를 문 앞에 두는 택배사가 있다면 그 택배사는 고객 택배 수령율 0%의 기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밖에 놓인 상자 물건이라면 네 것도 내 것처럼이라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누군가는 전문적으로 남의 집 앞 택배를 몽땅 털기 시작할 것이고, 그 택배사는 아마 개업 서류 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망할 것이다.


독일 택배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받는 것이 원칙이고, 두 번째로는 우편함에 적힌 이름의 수취인이 사는 집에 배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내가 이 집에 살고 집에 24시간 처박혀 있더라도, 우편함에 이름이 제대로 적혀 있지 않거나, 배달부가 내 이름과 성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구분하지 못해 내 이름을 성 칸에서 찾다가 못 찾는 경우 절대 택배를 받을 수 없다.


우편 배달부가 내 이름을 제대로 확인했지만 내가 집에 없는 경우엔 원칙적으로는 택배 배달원이 괴도의 예고장처럼 종이 한 장을 우편함에 남기고 사라진다. 그럼 일반적으로 그 택배는 그 종이에 적힌 시간 이후에 지정된 우체국에 가서 신분증과 그 종이를 내고 수령할 수 있다. 일주일 내에 수령하지 않으면 반송되며, 절대 그 시간에 맞춰서 들어오는 경우는 없으니까 시간 맞춰서 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한 하루에서 이틀쯤 지난 후에 가면 직원이 내 소포를 찾지 못해 없다고 우기는 케이스 외에는 허탕치는 일 없이 무사히 택배를 수령할 수 있다. 나도 독일의 기대 시간을 모르던 시절 오후 1시 경부터 택배 수령이 가능하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우체국이 점심시간으로 문을 닫아 2시부터 열고, 그 시간까지 기다려 들어갔더니 아직 안 들어왔다고 해서 돌아간 적이 있다. 왜 아직 안 왔냐고, 언제 오냐고 물으니까 "DHL이 다 그렇지 뭐"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 찾아가야 하는 지점은 택배사와 랜덤방식에 의해 모두 달라지는데, 한 번은 친구가 택배 6개를 시켰는데 그 6개가 부재중이라는 이유로 전부 다른 곳으로 배송되어 찾으러 갈 생각에 고통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도 요새는 택배 시간을 조회할 수 있는 선진적인 시스템이 도입되었는데, 보통 아침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배송이 될 거라는 알림창이 하루 전에 메일로 전달된다. 하지만 그 시간 내에 배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큰 기대는 않는 것이 좋다. 아침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택배가 온대서 최대한 기다리다 회사에 갔는데 오후 4시 반이 찍힌 부재중 종이를 받은 적도 있다.


이웃에게 맡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웃과 생활 패턴이 맞지 않아서 일주일동안 엇갈리는 경우나, 나는 이웃 택배를 전부 받아 주는데 이웃은 내 택배를 절대 받아주지 않는 상황 같은 건 이웃 복불복이니 모두들 같은 경험을 하는 것 같지만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부분은 “이웃에게 전달하였음”이라는 종이를 우편함에 남기고, 인터넷으로 배송 조회를 하면 수령인의 이름이 뜬다. 전에 살던 집의 경우 사람이 집에 있는데도 4층까지 올라오기가 싫었는지 2층 정도의 이웃집에 택배를 맡기고 “이웃에게 전달하였음”이라는 종이를 남기기도 했다. 가끔 인터넷을 보고 있으면 “이웃에게 전달하였다고 하는데 누구한테 전달한 건지 벨 다 눌러 봐도 알 수가 없어요”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건물 앞에 “누구누구 택배 내가 가지고 있는데 가지고 가라”라는 쪽지가 붙기도 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무인 택배함도 도시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인터넷으로 신청해서 등록을 하고 카드를 만들고, 그 카드를 이용해서 택배함을 열 수 있는 방식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싶어서 신청했었는데 분명 거의 항상 집에 있었을 즈음인데도 불구하고 수취인이 불분명해서 배달하지 못했다는 메일과 함께 어디로 배송 해야할지 수취 가능한 정보를 제공 해 달라는 메일이 와서 어이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 뒀더니 내 웰컴 키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 서비스는 단 한번도 이용해 보지 못했는데 일단 아무 시간에나 택배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 좋은 모양이다.


우리 집 앞에는 자랑하지 않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작은 키오스크도 있었다. 터키에서 온 아저씨가 운영하는 집 앞 키오스크(작은 구멍가게)는 평일 밤 11시까지 문을 열고, 헤르메스 택배를 취급하는 지점이라 헤르메스 한정이지만 택배를 대신 받아준다. 평일 저녁 7시면 모든 쇼핑 센터가 문을 닫고, 밤 10시면 수퍼마켓마저 죄다 닫는 독일에서 일요일에도! 새벽 1시까지 문을 연다! 처음 이 키오스크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정말 너무 행복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했다. 직장 동료 한명은 그 기쁨을 공유하며 키오스크를 복지 차원에서 골목마다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종이 쪼가리를 들고 가게 영업 시간을 맞춰서 택배를 수령하기 위해 방문해야 하는 수고를 생각하면 이 집 앞 키오스크는 정말 복지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 당시 쓴 글에는 이 행복감에 대해 "정말로 독일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인지 내 인생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이상해져 버린 건지 잘 모르겠다." 라고 적혀 있다.


해외에서 오는 택배가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배송 추적으로는 분명 택배가 올 때가 되었는데 행방이 묘연해지고 3-4일 내에 우편함에 공포의 종이 쪼가리가 등장한다. 세관에서 너의 택배를 인질로 잡고 있으니 와서 가지고 가라는. 보통 대개 한국에서 이런저런 잡다한 생필품을 배송받은 경우엔 세관에 가면 슥 열어보고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세관이 보통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고 한국에서 아주 작은 쁘띠 소포를 시켰을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고 택배 수령의 공포에 바들바들 떠느라 거의 한국에서 뭘 받질 않아 택배가 세관으로 간 적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공포임엔 틀림이 없다.


만약 독일에서 택배가 오지 않아 누군가에게 문의를 한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들을 대답은 "기다려 보라"일 것이다. 택배가 중간에 사라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나 더 보내주는 것으로 유명한 아마존의 경우에도 며칠에서 일주일정도는 배송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 때까지는 기다려 본 다음, 그 때가 되더라도 오지 않으면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래도 독일 택배는 대부분의 경우 언젠가 어떻게 오기는 온다. 한국에선 DHL이 고급 택배사 이미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국인이 고용되어 택배를 배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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