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나라
독일에서 반 년간의 교환학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독일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공항 맥도널드 커리부어스트였다. 커리부어스트는 구운 소시지에 케첩 소스 같은 것을 끼얹고 카레가루 살짝을 곁들인, 금가루 살짝 뿌려놓고 금가루 음식이라고 이름 붙여놓은 음식인데, 독일 소시지 버프를 받아 제법 맛이 괜찮다. 파는 곳이 많고, 먹기가 간편해 내 머릿속 독일 음식의 상징이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평생 다시는 커리부어스트를 쳐다도 보기 싫을 줄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그 커리부어스트가 애틋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석사 공부를 하던 학교 학생식당에선 매주 수요일 저녁으로 커리부어스트가 나왔다. 나는 마침 학생식당에서 3분 거리의 기숙사에 살았다. 삼, 사천 원이면 먹을 수 있는 저렴한, 남이 만들어 준 끼니를 제치고 내가 직접 밥을 해 먹기엔 나의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의가 그다지 크지 않았고, 나는 자연스레 학생식당 지박령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시점부터 커리부어스트와 감자튀김의 망해버린 영양 밸런스를 혐오하게 되었다.
의외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은 독일이 맛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나라, 줄여서 노맛국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인의 삶의 질을 크게 결정하는 이와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독일이 소시지, 맥주, 학센, 슈니첼로 얇은 '음식 문화'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이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큰 맘먹고 유럽 여행을 가서 독일에서 아쉬운 3박 체류를 할 거라면, 맛있는 소시지를 먹고 온갖 종류의 다양한 맥주를 마시고 슈니첼과 감자 샐러드를 먹으면서 음 감자가 맛있네, 하고 만족한 다음 다시 맛과 햇볕이 가득한 유맛의 나라 한국 혹은 이탈리아 같은 곳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아래 길고 큰 공허와 고통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 또 독일인들은 음식 문화라는 게 이 꼴이 나도록 기여한 가장 큰 일등 공신이라, 맛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아서 노맛 음식들로부터 고통받지 않는다. 그래서 독일이 어마 무지한 노맛국이라는 사실은 독일 사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알지만 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렸다.
나는 한국에서는 맛에 정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남들이 급식을 싫어할 때 시간 맞춰 나오는 밥에 불만 없이 살았고, 줄 서서 기다리기도 싫어 남들이 다 급식을 받아간 다음에 느지막이 줄을 서곤 했다. 남들이 동네 맛집 정보를 공유할 때도 나는 그 정보의 가치를 몰라 그냥 가만 앉아있었다. 그냥 먹고 생존하는 것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중요했다. 독일에서 토스트나 시큼한 빵에 슬라이스 햄과 치즈를 올려 먹고사는 식생활에 진절머리가 나는 데도 3년이 걸렸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인 법이다. 맛에 대한 무관심으론 지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에 독일인들이 몰려왔고 나는 어느 순간 미식가가 되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독일에 갔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어학을 하던 처음 1년간은 신기하고 적당히 맛있는 것이 많았다. 소시지도 맛있었고, 동네 카페의 커피와 토르티야같이 여러 가지 재료를 싸서 만든 랩에 푹 빠져있었다. 무엇보다도 독일이 가장 자랑스러워해야 할 독일 식문화의 주축인 터키인 이민자들이 있었다. 되너라고 불리는 터키 케밥은 야채와 고기, 소스를 빵에 끼워 먹는 것으로, 어느 도시 어느 거리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고 저렴하고 맛있다. 여러 소스 등이 듬뿍 들어가니 다이어트식은 안 되더라도 온갖 재료가 다 들어가니 소시지만 주야장천 먹는 것보다는 영양 밸런스도 괜찮을 것이다. 석사를 하던 2, 3년째는 학생식당과 냉동피자, 백종원 파 볶음밥으로 칼로리를 섭취했다. 우리 학교 학생식당에는 독일 최고의 학생식당을 뽑는 사이트에서 10년 넘게 10위권 안에 들며 수상했다는 벽에 거는 상패가 잔뜩 붙어 있었다. 학생식당에서 밥을 일 년쯤 먹은 후에 이런 게 10위권 안이라면 대체 다른 동네는 어떻단 말인가 대단히 혼란스러워했다. 이 시기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점점 느끼기 시작했다. 4년 차 이후 풀타임 직장인이 되어 매 끼니를 스스로 챙겨야 하게 되자 유목 문화는 계속해서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문화가 쌓이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유럽 여행에 대한 나라별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어디 여행지에 가면, 중국인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독일인들은 길에서 빵을 먹고 있다고. 독일인의 검소함을 강조하는 말이었지만, 요지가 조금 어긋난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인이 차가운 광장 돌바닥에 앉아서 따듯한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하호호 먹고 있는 사람들을 창문 너머로 보며 빵조각을 먹는다면 분명 성냥팔이 소녀의 기분을 이해하며 서러움의 눈물을 줄줄 흘리겠지만, 독일인은 그렇게 먹어도 불행하지 않다. 반대로 고급 레스토랑에 가도 길거리에서 먹는 빵 조각 이상의 효용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여행지에서 그 돈을 내고 그런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한 때, 아직 독일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던 시절에는 그들이 살면서 맛이라는 것을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도 인간인 이상 맛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닐까. 하지만 그건 내 안의 K-DNA가 부추긴 순진한 생각이었다. 독일에 뇌가 너무 절어있던 시절, 이탈리아인 친구에게 어차피 유럽 음식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 피자나 파스타 정도고.라고 말했다가 친구를 잃을 뻔했다.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친구는 냉동실에 항상 송로버섯을 상비해두는 애였다. (내가 독일에서 비참하게 감자를 먹으며 연명하는 가엾은 이탈리아인을 괴롭힌다는 오해를 받아 덧붙인다. 이탈리아에 사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이탈리아인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음식에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된 그 시점부터 독일은 뭐가 잘못된 건가 더 진지하게 고찰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독일 손을 잡고 이것이 맛이란다, ㅁ-ㅏ-ㅅ 하고 손바닥에 써 줄 지리적인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맛이라는 것이 뭔지 전혀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유맛이란 맛있는 재료와 식문화의 축적이 시너지를 일으켜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맛있는 걸 찾는 사람이 없다면 독일 슈퍼마켓에서 파는 원산지:스페인인 귤이 된다. 스페인에 가면 길 가다 아무데서나 아무 귤을 사 먹어도 너무너무 맛있는데, 독일 슈퍼에서는 과연 같은 나라에서 재배한 것이 맞나 고민이 되는 그 귤들 말이다. 덕분에 나는 내 인생 일부를 스페인은 맛없는 귤을 독일에 일부러 수출하는가 고찰하는 데 낭비했다.
내가 기숙사에서 본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저녁으로 썬 빵에 슬라이스 된 햄과 치즈를 올려 먹었다. 거기에 크림치즈를 바르면 보다 노동력이 들어간 고급 음식이었다. 썬 햄과 치즈가 종류가 많아서 한동안은 이것저것 먹으면서도 내 안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만과 울화를 참을 정도는 되었다. 항상 영혼의 한 구석이 비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했다. 나는 한동안 슈바르쯔발트 햄을 그나마 좋아했다. 사람을 죽일 듯이 짜긴 하지만. 그들은 학생식당에 가면서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을 때 학생식당에 온다"라고 말했다. 세 끼를 펄펄 끓는 국이나 찌개를 곁들여야 하는 나라에서 온 국민은 국물도 없는 음식을 "따뜻한 음식"으로 부르는 데 당황했다.
많은 독일인의 소울푸드는 감자다. 독어독문과 학생 시절 독일인 교수님이 자기가 할 줄 아는 한국어라며 "감자 일 킬로그램 주쎄요"를 외칠 때 그렇게 많이? 하고 생각했던 나는 어느샌가 그렇게 적게? 하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슈퍼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적은 양의 감자가 1.5kg에서 2kg 한팩 정도라 항상 감자 싹을 틔우다가 질려 감자를 심어서 키워 본 적도 있다. (감자는 슈퍼에서 사 먹자는 교훈을 얻었다) 감자만 먹고도 행복할 수 있는, 감자 레시피를 앉은자리에서 30개쯤 말할 수 있는 애도 알고 있다. 내 안의 한국인이 감자는 쌀 못 먹어서 먹는 것 아니었나 외치지만 그들의 감자 사랑을 꺾진 못한다. 내 안의 다른 한국인이 그건 음식이 아니라 식재료 아닌가요, 외치는 것도 그저 공허한 메아리다.
그들의 식재료 사랑은 간식을 마련할 때도 드러난다. 썬 파프리카, 당근, 오이는 3살 아동의 저녁 메뉴에서부터 회의에 마련하는 핑거푸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랑받는 음식이다. 준비도 간편하다. 파프리카, 당근, 오이를 썰어서 찍어먹을 소스와 함께 준비하면 모두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간식이라 금세 동이 난다.
한국에 입국했을 때 인천공항에서 3월 말 한국 날씨가 그렇게 따뜻할 줄 모르고 두꺼운 겨울 코트를 입고 다니다가 검역 때 체온이 높게 나와 공항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항에서 기다리게 되면서 점심과 저녁으로 각각 햄버거랑 김밥 한 줄을 받았다. 버거킹 햄버거와 김밥 한 줄이었는데, 양상추도 맛있고 당근도 맛있고 쌀도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입국 후 3일 동안은 쌀만 씹어도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독일은 나에게 햇반이, 한국 쌀이 그렇게 맛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인간은 과연 결핍을 통해 만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며 더욱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