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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Oct 18. 2021

Keep calm and...

엄마를 통해서야 간간이 소식을 듣던 사촌오빠가 어느 날 수능을 봤다고 했다. 이내 재수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곧 군대를 간다고 했다. 그다음 소식은 휴가를 나왔다던가, 하더니 얼마 뒤 제대했다고 했다.

"뭐? 벌써?" 했었다.

혼잣말로 중얼중얼 '군대는 2년이라더니 빠르기도 하구나' 했다.


그런데, 동기 놈들이 군대에 갔더니 시간의 속도가 달랐다. 2학년을 마칠 즘, 매일을 붙어 다니던 동기들 대여섯 명이 우르르 군대를 갔다. 그땐 학교 전체가 휑한 거 같더니, 한참이나 지나서야 녀석들에게선 첫 수신자 부담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며 새삼 '아들 군대 보낸 기분'에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나서야, 100일 휴가라며 어색한 까까머리를 하고 첫 '군인 친구'가 학교에 나타났다. 그날 어리게만 느껴지던 녀석의 행동은 여기저기 어색했다. 말로 콕 집을 수는 없는데, 그냥 움직임 자체가 낯설었다.

녀석과는 신입생 시절 내내 같이 술을 먹던 사이였다. 의례 아침 9시에 만나서 밤 11시에 퇴근한다고 말할 정도로 붙어서 놀았다. 근데 그러던 녀석이 술집 현관을 방금 통과한 거 같은데, 만취했다. 취해서 횡설수설하다 울다 했다. 그리고 툭 건드릴 때마다 "이병 김! 철! 수!"를 외쳐댔다. 안쓰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때부터 한동안 줄줄이 백일 휴가를 나오는 친구들 덕에 중간고사 기간이 내내 바빠졌다.


그즈음부터였다. 가끔 가던 용산역에도 학교에도 휴가 나온 '군인들'로 꽉 찼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군인들만 가득 보였다. 괜히 까까머리를 하고 "이병 김! 철! 수!"를 외치던 친구들 생각이 나 군인들에게 눈길이 오래 머무르곤 했다.


동기들의 군생활은 느리고 느리게 흘렀다. 그 시간은 너무나 느려서 함께 한강으로 놀러 가고, 농구 (구경)하고, 점심을 먹고, 공부하고, 술 마시던 일상이 점점 흐릿해졌다. 내겐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고, 영어 공부와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난 대학생보다는 취업 준비생이라는 타이틀이 편해졌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은 길고 긴 시간이었다. 내게는 그 바뀐 생활들이 당연한 게 될 무렵에야, 동기들이 하나 둘 제대했다. 녀석들은 까먹은 자기 학번을 나한테 물었다. 서로의 학번을 기억할 만큼 친한 녀석들이었고, 매일 전공책 맡에 써두던 학번을 까먹을 만큼 2년은 꽤 긴 시간이었다.


친구들이 재대하면 다시 신입생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웃고 떠들고 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군인의 신분을 벗고 다시 사회에 적응하는 친구들과 토익점수 30점을 이번 달까지 올려야만 하는 나는 관심사가 너무나 달랐다. 편한 듯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친했던 동기들은 조금씩 어색해졌고, 자연스레 각자 말이 통하는 이들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 취업 스트레스나 풀려 오랜만에 찾은 용산역에는 군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많던 군인들이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자취를 감춰 버렸다.

대신 역 앞에 위치한 대기업 간판들만 도드라졌다. 꽤 어둑어둑 해진 시간까지 사무실을 밝히고 있는 형광등 불빛만 눈에 들어왔다.


대체로 그랬다. 세상은 관심이 있는 만큼 보였다.

늘 당연히 그곳에 있는 걸 알지만, 관심이 있을 때만 눈에 반짝반짝 띄었다.


집도 그랬다. 사막에 머물던 몇 년을 빼고는 누구나 그렇듯 늘 집들에 빼곡히 둘러싸여 살아왔다. 하지만, 난 그 집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당연히 있는 하늘처럼, 구름처럼 배경을 장식하는 소품들이었다.

그 집들이 눈에 밟혀 보이기 시작한 건 호주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달에 200만 원이나 하는 월세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집주인이 조금 더 확고하게 '갑'의 위치에 있는 호주에서는 내가 살고 싶은 집에 사는 게 생각처럼 수월하지 않았다. 그제야 비로소 '나 빼고는 누구나 다 한 채쯤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분함'으로 집들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하늘처럼, 구름처럼 당연히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집들은 아는 만큼 선명하게 보였다.


영어시험, 대학원 졸업, 영주권, 결혼, 취직. 인생의 마일스톤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일들이 휙 휩쓸고 나자, 이제는 집을 사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제야 뭉게뭉게 지도 속에 '읽기조차 힘든 영어 발음으로 무언가' 적힌 것 같던 지명들이 선명해졌다. '클레이톤은 회사들이 몰려 있고, 뷰 뱅크는 공립학교 순위가 좋은 학교가 있다.' 막연히 시선에 부딪히던 것들을 이해되기 시작했다. 마치, 용산역에 가득하던 군인들을 보면 누가 상병이고, 누가 이병인지 알게 된 것과 같았다. 한창 관심이 있던 때는 부대 마크만 보고도 '어! 박병수랑 같은 부대다!' 하며 알아채던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간.


아주 좁은 의미로는 내 집과 그 앞마당까지를 정의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의미를 확장하자면 그 배경이 되는 동네, 도시, 그리고 나라. 문화와 법률이 영향을 미치는 그 경계선까지의 공간을 포함한다.


남의 군생활만큼이나, 남의 부동산도 언제나 쉬었다. 누군가 척척 어딘가에 집을 샀다가 이내 팔았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과정에서 몇억을 벌었네, 하는 부풀려진 희미한 소식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겪은 '공간'은 너무나 어렵고 복잡했다. 삶의 틈새마다 느껴지는 작은 문화 차이를 익혀 나가는 단계부터 집을 사고, 팔고, 다시 사서 꾸미는 그 과정들 고비고비가 수많은 고민과 좌절과 선택의 순간들이었다. 어느 하나 간단히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겁났고, 푹 꺼지기도 했다가, 좀 의기양양 해지기도 하는 패턴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런 고민과 좌절의 증거처럼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우리 집'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최! 대! 한! 빨리 집을 공사해서 가! 능! 한! 빨리 이사하자는 처음 목표가 무색하게, 아직도 몇 달째 월세와 이자를 이중으로 내고 있는 신세다. 당연하다는 듯 공사의 단계마다 하루 이틀씩 지연이 있었다. 3일 만에 작업을 끝내겠다고 말하면 꼭 4일이나 5일 만에 끝났다. 계약한 어느 업체도 약속한 일정을 정확히 맞추지 못했다. 절정은 그런 사소한 지연이 익숙해질 때쯤 찾아왔다. 건설 노동자들 시위가 격화되면서 2주나 공사 현장들을 강제로 다 닫게 하더니, 이내 계약한 업체들에서 돌아가면서 한둘씩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매번 일주일쯤 일정이 밀리는 건 수선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오전 오후로 시간을 쪼개서 계획하며, 부지런히 공사를 속행하려던 꿈은 이미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지 오래다.


덕분의 글의 마무리도 애매하게 되어버렸다. 원래는 동엽이 아저씨가 매주 주말마다 그랬듯이 "이랬던 공간이 과연 어! 떻! 게! 바뀌었을까요?" 하면서 비포 에프터를 내놓을 심산이었다. 사진마다 '이런 이런 점이 어려웠지만, 이런 걸 고려해서 이렇게 고쳤어요!' 하며 덧붙일 설명들까지 그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갖다 붙일 에프터가 없어졌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어쩌지?


이럴 때 이곳 호주인들이 즐겨 찾는 해결책이 하나 있다. '어차피 고민해봤자 해결되는 거 하나도 없어. 바비큐 불이나 올려.'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호주에 살고 있다. 호주는 이런 종류의 느려 터짐과 불편이 언제나 함께하는 곳임에 분명하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와 정 반대라는 생각도 든다.


- 우리나라가 '내 일이 꿈지럭꿈지럭 지연되는 게 싫어서 나부터가 서두르는 게 당연한 곳'이라면,


- 호주는 '누군가 날 독촉하는 게 싫어서, 내 불편에도 남을 조르거나 독촉하지 않는 게 당연한 곳'이다.


그런 호주에 이제 막 집을 샀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집을 사기로 마음먹는 과정, 그리고 집을 사고파는 고뇌의 연속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집에 '살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한 장에 천 원씩 한다고 말하는 금 풀 '깻잎'을 키우는 이야기, 포썸과 지붕을 나눠 쓰는 두근두근한 하우스 생활기, IT 전문 리크루터와 함께하는 몇 번에 걸친 구직 일기, 그리고 호주의 아이들을 위한 집 안팎의 놀이시설까지.


그래서 조금은 어정쩡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이즈음에서 호주 살이 이야기의 'Part 1'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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