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디지털 OFF,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오늘 하루 처리해야 할 업무는 많고 도저히 디지털 기기를 등질 수 없는 하루가 예상된다면? 나는 최대한 내 몸을 자연 속에 밀어 넣으려고 노력한다. 랩탑이고 핸드폰이고 참고해야 할 전자책 다운로드 한가득 담아둔 태블릿까지 이고 지고 초록뷰 카페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좀 아이러니하긴 하다. 쿨하게 미디어 다 끄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자연에 산다> 다큐멘터리 찍는 모드로 몰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면서 굳이 속세의 것들을 낑낑 끌어 메고 초록뷰를 보겠다고 나서는가. 차라리 강남이나 잠실 한복판 공유오피스에 떡하니 자리 잡고 '나 오늘 업무 모드임' 티라도 팍팍 내던가. 이리 생각해도 저리 생각해도 모순 그 자체이지만, 끌 수 없는 업무 알람이 삐릭삐릭 울려대는 통에 스크린 보는 지속시간이 9 to 6 (나인 투 식스)를 찍는 대도 간간이 눈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조각 올려다보는 짧고 굵은 맛이 매력 있기 때문이다. 도시 여자가 자연 속에서 일할 때 얻는 소박하고도 확실한 행복. 다섯 가지 공간을 소개한다.
[첫 번째 공간]
* 경성 빵공장 남한산성점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14)
마무리 지어야 할 업무가 있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자마자 다이어리와 랩탑을 챙겼다. 자, 그래서 어디로 가지? 작년 하반기부터 회원권을 끊어둔 스터디 카페도 있고 이따 애들 하원시키기 편한 동선에 있는 동네 카페도 떠올랐다. 다만, 햇살이 너무 좋은 날이었다. 게다가 금요일! 아무리 몰입 끌어올리는 우아한 조명이 있대도 자연광을 꼭 받아야 하는 초가을 아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몇 번씩 들렀던 단골 카페보다는 한 번도 안 가봐서 낯설어도 보는 순간 '자연' 매력 뿜뿜 해서 첫눈에 반해버릴 만한 공간에 가고 싶었다. 하아, 이럴 땐 결국 핸드폰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도 리버뷰 카페, 숲뷰 카페 알고리즘에서 헤엄치는 수밖에. 그렇게 몇 차례의 디지털 파도를 타고 찾은 한 카페. 남한산성 근처의 카페는 물레방아도 돌고, 정원 조경도 그럴듯했다.
[두 번째 공간]
* 화담숲 (경기 광주시 도척면 도척윗로 278-1)
숲에 가는데 '숲체험' 풀 착장을 하고 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를테면 오래 걸어도 내 발 편안한 운동화와 찬 기운 막아줄 바람막이까지는 살뜰히 챙겨 착용하되, 가방에는 결국 오늘의 업무 내려두지 못하고 랩탑을 꼬박꼬박 챙겨 넣는 업무 준비 태세. (아, 물론 재택근무자에게 가능한 동선이라 오프라인 출근자에게 죄송한 마음을 표합니다.) 오늘 하루 완벽하게 디지털 오프하고 떠나는 숲으로의 여정도 좋겠지만, 낭만을 쿨하게 허락할 수 없는 날은 반 반 하이브리드 모드를 켜보기로 한다. 어른을 위한 숲 놀이 반, 초록 가득한 숲 향기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모바일 핫스팟 켜고 오늘의 업무 반. 가끔 엉뚱한 상상은 찐한 에스프레소만큼이나 에너지를 탁 깨우는 결정적 지점이 된단 말이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만큼 대중적이고 인기 많을 조합은 아니지만 제법 그럴듯하다고 우겨본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을 품은 화담숲은 거니는 곳곳마다 함께 간 사람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만한 장소가 많다. 만일 혼자 갔다고 해도 괜찮다. 타인과만 대화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던가. 끊임없이 펼쳐진 초록뷰에서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좋은 장소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문쯤은 온전히 자연만 느끼러 가는 걸 추천하지만, 숲의 기운에 익숙해졌다면 그다음부터는 조금은 변주해서 다른 목적을 품고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읽고 말 테다 생각해 둔 벽돌 책 한 권을 깊숙한 숄더백 안에 넣어가지고 가서 읽는 것도 꿈꿔봤고, 밀린 업무가 진짜 진짜 진짜, 지이이이인짜 하기 싫은데 진도 정말 안 나갈 때 홀연히 여기로 가서 일해봐야지 생각도 해봤다. 너무 까다로운 책도, 진짜 싫증난 업무도 '누군가와의 대화가 절로 춤을 추게 만드는 공간' 안에서는 왠지 훌훌 진입장벽을 낮춰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숲 반, 업무 반. 반반 조합이 도무지 뭔 조합인지 아리송하신 분들은 아래 사진으로 짐작해 보시길. 왠지 어디든 앉아서 나의 해결되지 못한 까다로운 일상의 잔재들을 하나하나 마무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지 아니한가. 없던 기운도 충전해서 뭐라도 '도전!' 해보고 싶게 만드는 싱그러움 한가득. 함께 느껴보시길.
[세 번째 공간]
* 홍제천 인공폭포(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70-181)
친정 엄마와 맨발로 황톳길을 걷고 향한 곳은 결국 돌고 돌아 카페. 발바닥에 엉겨 붙는 황토라니, 인생 첫 경험에 들뜬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한다? 커피 두 잔 놓고 수다 릴레이 진행시켜 분위기 더 끌어올려줘야 한다! 자연을 논하는데 '인공'이 웬 말이냐 하신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 말씀. 폭포의 물줄기는 인공일지라도 황톳길 서너 바퀴 쭉 돌아주고, 굽이굽이 안산 자락길을 걸어 폭포를 낀 카페를 향해 가는 동선은 자연을 한가득 껴안았다. 당장 내 눈앞에 둔 폭포가 찐 자연의 것이 아니래도 이미 그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이면 마음에 담아두고 저장 누르고 싶은 자연 풍경, 릴스 숏폼으로 따지면 백여 개쯤은 된다는 말씀. 스크린 하나 터치 안 하고 자연광 내리쬐며 두 눈에 저장, 옆 사람에게 조곤조곤 공유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건강한 여정인가.
세 번째 목적지에서도 반반 룰 적용해 보는 거 완전 가능! 맨발로 황톳길 1시간 걷고 안산 자락길 씩씩하게 1시간 걷고, 뒤 이어 2시간쯤은 인공폭포 뷰 카페에서 오늘 해야만 하는 일 묵묵히 해보는 거다. 꼭 워킹맘 워킹대디가 아니래도 도시인들에겐 해야 할 잡무가 넘쳐나지 않던가. 아이 어린이집에 작성해서 내야 할 서류를 정리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새로운 잡을 찾아보고 싶어 나의 그간의 이력을 정리해 매력포인트 꾹꾹 눌러 담은 인생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볼 수도 있을 거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면 그것 역시 훌륭하겠고. 그 어떤 형태의 업무나 공부도 좋으니, 두 시간은 자연 속에 몰입, 나머지 두 시간은 자연에서 받은 기운 풀 장착한 채 해야 할 일과 맞닥뜨리기. 하이브리드 형태를 강력 추천해 본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 별로인 분들께는 사진으로 힌트 나가니 참고하셔도 좋다. 차갑고 냉정할 때가 주로 많은 워킹맘이 자연에 점점 빠져들 때 생기는 일. 도시 여자가 자연을 만났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