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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휴전국이다



생수 30병

마스크 100장

두유 8개

새우깡, 그래놀라

충전기

내가 오늘 새벽 30초만에 챙겨 식구들 배낭에

넣어 준 것들이다.


새벽 6시 30분.

여느때처럼 출근 준비하는 큰아이에게 아침을

주고 몸이 찌뿌둥하여 잠시 침대에 눕던 찰라였다.

갑자기 재난문자 알림이 연속으로 들리더니

싸이렌이 끊이지 않고 울렸다.

" 국민 여러분, 실제 상황입니다. 북한이 남쪽으로 미사일을 발사했으니... 치지지직... 윙~"


잘못 들은줄 알았다.

그러나 싸이렌은 계속 울리고 실제상황이라는

단어가 계속 들렸다.

남편은 뭐 때문에 경계경보냐고 왔다갔다하고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순식간에 들었던 생각은 당분간 먹을게 있어야

한다싶어 그래놀라 한봉지와 두유, 그리고

500ml 생수를 배낭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다음 화생방이 떠올랐으나 방독면이 없으니

마스크라도 챙겨야지 싶어 그또한 마구 쑤셔넣었다.

길에서 자면 추울테니 털이 있는 후드잠바도 4개

챙기겼다.

어느새 나는 지휘관이 되어 남편에겐 충전기와

휴대폰 챙기기를 지시하고, 막내에겐 배낭에

필요한것들  알아서 넣으라 시키고, 큰아이와

나는 함께 배낭을 챙겼다.

집에 가정용 금고가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더니 비번을 누른다고 누르는데 자꾸 현관문

비번을 눌러재껴 에러가 났다.

남편이 그냥 관두라하여 포기하고

이 모든걸 3분만에 챙겨서 1층으로 내려가는데

금고 안에서 꺼내오지 못한 금목걸이가 생각나

괴로웠다.

친정엄마가 늘 말씀하시길, 전쟁이 나도 금만

있으면 살 수있다고 했기때문이다.


막상 1층에 내려가고 보니 그다음 어디로 대피할지 몰라 황당했다.

급한대로 승용차로 가서 4명이 대피소 검색을

하는데 네이버가 먹통이다.

라디오를 켰는데 어? 이상하게도 음악방송이

나오고 주파수를 바꿔도 영어회화 방송만 나왔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차안에서 넷이서 머리 맞대고 떨고 있는데 막내가 실시간

SNS 라는걸 들어가보더니 오보문자랜다.

세상에 ...  다리가 후들거려 간신히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내용은 이렇다.


처음부터 행안부에선 대피 문자를 보내지 않았는데 서울시에서 미사일 방향이 이례적으로

남쪽이어서 미리 대피 준비 문자를 보냈고

나중에 행안부에서 서울시의 문자가 오보라고

문자를 보냈던거다.

그런데 내 생각엔 오보는 아니란 생각이다.

늘 동쪽해상으로만 쏘다가 갑자기 남쪽을 향했으니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해 그런 문자를

빨리 보내준건 맞다고 생각된다.

단지 평소에 우리가 대피할 곳을 미리 숙지하지

않고 있으니 오늘같은 날은 엄청 당황스러웠다.


암튼 큰아이 출근하고 막내는  학교에 가고

남편이랑 둘이 집을 둘러보니 집안은 이미

전쟁터였다.

내가 떨리는 손으로 옷장을 헤집어서 모든 옷이

다 나와있고 주방과 냉장고도 물건이 다 쏟아져

있었다.


배낭을 하나씩 풀어보는데 영양제가 있었다.

큰아이의 문자를 받았는데 "  엄마, 전쟁나서

혹시 굶더라도 멀티비타민만 있으면 살 수

있대서 내가 넣었어."  그런다.

막내의 배낭을 풀어보니... 세상에....

아이패드만 덩그마니 있다. 세 사람이  물챙기고

마스크 챙길때 막내는 아패드 하나 달랑

챙긴걸 보니 너무 웃음이 난다.

조금 전에 집에 온 막내에게 물으니 학교엔

가야하는게 아닌가 싶어 그랬단다.

아이고 이 막내야...


나는 비상상황에서 매우 민첩해지는듯 하다.

고등학생때 이웅평 대위가 귀순하던날도

싸이렌이 울리고 실제상황이란 방송이 들렸는데

친구들이 책상밑에 숨었을때 난 이미 집을 향해

뛰고 있었는데 멀리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쌀집앞에서 쌀을 사려고 줄을 서고

계셨다.

엄마랑 둘이서 쌀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니

모든게 종료되고 학교에서 빨리 오라는 전화가

왔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무척이나 행동이 빨랐다.


오늘 깨달은게 많다.

우리는 휴전국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고 무기한 휴전중인 나라.

늘 전을 염두에 두면 불안하겠지만

어느 정도 안보의식과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북한은 6월에 발사하겠다고 하고선

5월 마지막날 이런 일을 벌였다. 그래서 6월에

또 한차례 이럴수 있다하니 심장이 두근두근이다.

제발 이제는 평화롭게 잘 지내면 안될까?


오늘 오보이네 아니네, 경기도는 왜 문자를

못 받았냐는 문제로 계속 떠들썩하다.

이렇게 오해하고 혼란스러워 지는걸 북한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그들이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자.

왜냐하면 우리는 휴전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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