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추모하며
"예쁜데, 좀 무서우셔."
그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하민이의 첫마디였다. 하민이는 수영이 결혼하고 십 년 만에 가진 아이였다.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하민이가 학교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수영은 감개무량했고, 선생님이 무섭다는 하민이의 말에 그녀가 촉각을 곤두세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날 마침 수영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여진을 만났다. 여진은 수영과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사는 다둥이 엄마로, 수영이 아는 한 가장 바쁜 여자였다.
“하민이가 복이 많네요. 하민이 담임이 작년 우리 첫째 아이 담임이더라고요. 진짜 젊고 예쁘고 센스 있어요.”
늘 그렇듯이 여진은 수영을 보자마자 너스레를 떨었다. 그 지역 토박이에다가 하민이의 학교 급식 도우미로, 학부모회 임원으로도 활동하는 여진의 정보는 대체로 정확했다. 수영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하민이의 담임 문제는 좀 더 지켜보자고 생각했다.
하민이의 첫 사교육으로 간택된 건 미술학원이었다. 어려서부터 하민이는 몸으로 하는 놀이보다는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를 좋아했다. 수영이 보기에 하민이는 그쪽으로 아주 소질이 있어 보였다.
수영이 하민이를 처음 미술학원에 데려갔을 때였다. 어디선가 보라색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나타나 하민이를 덥석 안았다. 아는 체하는 아이의 얼굴이 환했다.
“엄마, 우리 반 친구 보라야.”
얼굴이 새빨개진 하민이가 반기며 말했다. 그 아이 덕분인지 하민이는 미술학원을 볼 것도 없이 다녀보겠다고 했다. 이후로 수영은 하민이를 미술학원에 데려다주며 보라와 보라 엄마를 자주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보라 엄마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게 되었다. 그렇게 2주쯤 지났을 때 보라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보라가 선생님이 좀 무섭다는데, 하민이는 어떻대요?’
‘젊고 예쁘다던데요? 좀 무섭기도 하고, 아마 처음이라 그럴 거예요. 1학년 담임은 아무나 하나요? 제 소식통으로는 아주 좋은 분이랍니다.’
수영은 답문을 그렇게 보내면서도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젊다는 게 어린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일에 마냥 적합하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독문과를 나온 수영은 하민이를 갖기 전까지 학원가를 돌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과목도 수학, 논술, 한자, 영어 따지지 않았고, 연령대도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했다. 그때 수영에 대한 아이들의 평가는 대체로 ‘재밌지만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의 주의집중을 위해서는 언제나 기대 이상의 쇼맨십이 필요했다. 하지만 스탠딩 코미디 저리 가라 한 쇼맨십 뒤에는 언제나 무질서라는 거대한 산이 자리했다. 아이들의 질서는 한번 망가지면 쉬이 돌이켜지지 않았고 결국 선생으로서의 권위라는 민낯을 보이고서야 겨우 잡히곤 했다. 그 일을 십 년 가까이 해내고서야 수영은 선생으로서 권위도 잃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법을 터득했다고 자부했다.
미술학원이 끝나고 하민이와 보라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함께 놀았던 날, 수영은 보라 엄마와 처음으로 긴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 이사 왔다는 보라 엄마의 이름은 성현이었고, 수영보다 여덟 살이나 어렸다. 성현은 교육대학을 나와서 남편과 함께 학원을 운영하는 중이었는데, 이제 막 백일이 된 보라의 동생 때문에 일은 잠깐 쉬고 있었다. 성현은 당분간 자신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보라를 챙기고, 동생에게는 돌봄 선생님을 붙여놓았다고 말했다.
수영은 성현을 다시 보았다. 그녀는 백일이 된 아이가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돈된 모습이었다. 옅은 화장을 한 얼굴과 보풀 하나 없는 니트 원피스 차림의 성현을 보며, 수영은 오랜만에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술학원 처음 갔을 때 보라가 하민이 안아주는 거 보고 놀랐어요. 반갑다고 안아주기까지 하는 아이는 별로 없잖아요.”
수영이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이제 말 편하게 하세요. 흐흐.”
성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보라가 정이 많아요, 애교도 많고. 그래서 어딜 가나 귀염을 받는 것 같아요.”
말하는 성현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보였다.
하필 그때 아이들 쪽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엄마, 보라가, 어엉, 보라가, 어엉, 저거 다시 가져갔어…….”
하민이가 큰 소리로 울며 더듬더듬 말했다. 얼굴이 빨개진 보라의 손에는 포켓몬 카드가 들려있었다. 미술학원을 나오면서 보라가 하민이에게 선물한 거였다. 성현이 나섰다.
“보라야, 왜 줬던 걸 다시 뺏어?”
보라는 대답하지 않고 미끄럼틀 속으로 숨어버렸다. 성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보라를 따라 들어갔다.
“이거 나도 좋아하는 거란 말이야!”
미끄럼틀 속에서 보라가 소리쳤다. 아이다운 대답이었다. 그렇더라도 수영은 당황스러웠고 보라가 얄미웠다. 하민이는 보란 듯이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수영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은 채, 급하게 하민이를 챙겨 문구점으로 향했다. 똑같은 포켓몬 카드를 사주기 위해서였다.
수영은 성현 말고도 아파트 단지에 아는 사람이 많았다. 수영처럼 생활 편리와 학군을 찾아 신도시, 새 아파트로 입주해 온 아이 엄마들이었다. 그녀들은 한때 똘똘 뭉쳐서 공동 육아를 했고, 여전히 가볍게 맥주 한잔할 수 있는 사이로 남았다. 포켓몬 카드 사건이 있고 얼마 후, 수영을 포함한 하민이 또래 엄마 세 명이 카페에 모여 앉았다.
“근데 애들 담임들은 어떤 거 같아?”
화두는 역시 ‘아이들 담임이 어떤 사람인가’였다.
준우라는 아이의 담임은 나이가 많았지만, 아이들의 활동을 꾸준히 스마트폰 알림장에 올리며 부모들을 안심시키는 사람이었다. 또 소윤이라는 아이의 담임은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힌다고 했다. 부모를 위한 추천 도서도 꾸준히 올린다는 그녀는, 알림장을 너무 길고 자세하게 써서 오히려 좀 지루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수영은 하민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낸다는 건지 일언반구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알림장에도 숙제 몇 개와 교통안전과 같은 뻔한 말 두세 줄이 전부였다. 하민이 반 알림장을 본 엄마들은 그래도 자기 반 담임이 나은 것 같다며 한바탕 웃어젖혔다. 그렇게 수다를 떠는 사이에 보라 얘기가 나왔다.
“걔가 우리 준우 옷에다가 낙서를 한 거 있죠? 일부러 애들 몰래 뒤에서, 그것도 네임 펜으로 그린대요. 보라색으로 머리 염색한 여자애요. 하민이네 반이던데?”
“걔가 그럼 우리 소윤이랑 같은 피아노 다니는 애인가 봐요. 걔가 여자애들 옷차림 가지고 그렇게 놀린대요. 우리 소윤이한테도 할머니 옷 입고 왔냐고 놀려서 애가 그날 울고 왔잖아요.”
수영은 속으로 ‘역시’를 외치며, 자기가 사람을 제대로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보라는 아직 어린아이니까 여지는 있었다.
“나 걔 알아. 하민이랑 같이 미술학원 다니면서 알게 됐는데, 알고 보니 보라한테 어린 동생이 있더라고. 애들이 동생 태어나면 약간 엉뚱해진다고 하잖아.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하민이 오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
수영은 그렇게 아는 척을 하며 놀이터에서 난감해하던 성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멀끔한 겉모습 뒤에 숨겨져 있을 또 다른 얼굴에 대해 상상하면서.
“요새 보라랑은 잘 지내니?”
그날 하민이의 하굣길에 수영이 물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지만, 수영은 하민이의 등하교를 기꺼이 책임지고 있었다.
“아니, 보라 선생님한테 맨날 혼나. 맨날 지각하고 수업 시간에 과자도 먹어.”
“뭐어?”
지각이야 할 수 있다지만, 수업 시간에 과자를 먹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보라와 성현과는 다시는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영이 성현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로부터 또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하민이를 등교시키고 수영이 막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내키지 않는 전화에 한참 시간을 벌었지만, 전화기는 마치 그런 수영의 마음을 읽은 듯 집요하게 울렸다. 하는 수 없이 수영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침부터 죄송해요. 언니 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성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교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으응, 뭔데요?”
수영은 뜨뜻미지근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요즘 혹시 하민이가 선생님 무섭다는 얘기 했어요?”
“무섭다는 얘기? 요새는 괜찮은 거 같던데요?”
하민이는 그 사이 선생님 얘기보다는 친구들 얘기를 주로 했다. 수영은 보라가 선생님한테 자주 혼나서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사실은 제가, 보라가 선생님 무섭다는 얘기를 하도 자주 해서,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줬어요.”
“녹음기?”
수영은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직감했다.
“네, 근데 선생님이, 세상에 욕만 안 했지, 이건 거의 뉴스감이에요. 언니 잠깐 시간 되면 볼 수 있어요?”
수영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보라가 문제아이건 아니건 간에 하민이 담임이 그 정도라면 또 다른 문제였다.
카페에서 기다리는 성현은 퉁퉁 부은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커피를 시키자마자 곧바로 녹음 파일을 열었다. 성현이 편집을 했는지 곧바로 새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야?……그거 주워, 안 들려? 그거 주우라고! 야!’
수영은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어여쁘다는 담임에게서 어떻게 그런 쇳소리가 나오는지 놀라웠다.
“이게 다가 아니에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성현이 다른 파일을 열었다.
‘장난하냐? 눈 감아! 엎드려!……입 닫아! 입 닫으랬지? 이하영! 이하영 나와!’
성현이 재생 버튼을 멈췄다.
“애들 이제 어쩌니?”
그새 눈시울이 뜨거워진 수영이 내뱉었다. 그런 인간 밑에서 그동안 하민이가 덜덜 떨었을 걸 생각하니 수영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저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어요. 도대체 어떻기에 그렇게 무섭다는 건지, 이러면 안 되는 줄 아는데요, 이유는 알아야 하잖아요. 며칠 전에 제가 전화도 드렸거든요.”
“전화?”
“네, 보라가 학교 가기 싫어한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더니 글쎄 보라 때문에 다른 엄마들 항의가 너무 심해서 자기가 난처하다는 거예요. 평소에 아이와 대화는 많이 하냐면서.”
성현의 커다란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눈물을 훔치는 성현을 보며 수영은 학부모 상담치고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쌤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마스카라가 번져서 성현은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 와중에도 화장을 하고 원피스 위에 코트까지 갖춰 입은 모습이라니.
“근데 선생님이 임신하셨다는데, 우리도 임신해 봐서 알지만 그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임신?”
수영은 그것도 금시초문이었다.
“네, 자기도 임신할 줄 모르고 1학년 담임 맡았겠죠.”
“그럼, 저게 임신 히스테리라는 거야?”
수영이 물었다.
“그런가 봐요. 어떻게 해요……저는 진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이미 보라 가방에 녹음기를 넣었을 때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아이가 인지한 상태에서 녹음한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래요.”
수영은 역시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구나 생각했다. 교실 내에서 통용되는 상식에 대해서 자신이 무지했던 것도 그랬지만, 자신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정당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성현처럼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처해 본 적이 없었다. 수영은 언제나 감정과 인정에 호소하다가 제풀에 꺾여 먼저 상처받고 마는 스타일이었다. 수영은 자신의 그런 성격이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 보라가 이걸 알고 있었어?”
“네, 보라도 그만큼 저한테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주고 싶었나 봐요.”
똑똑한 엄마와 똑똑한 아이, 수영은 그동안 보라와 성현에 대해 섣불리 판단했던 일이 새삼 미안했다. 갑자기 수영은 사명감을 느꼈다.
“이번일 우리가 진짜 잘 해결해 주자. 여기가 아무리 신도시여도 바탕이 시골이다 보니까 저런 몰지각한 선생들 진짜 많을 텐데, 다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겨서 그런 거야.”
수영이 결의에 차서 말했다. 수영은 사실 동네 엄마들하고 어울리며 답답한 게 많았다. 인근 지역에서 이사를 온 대부분의 여자들은 본래의 자기를 진즉에 잃고 오로지 아이의 엄마 역할만이 남은 사람들 같았다. 그녀들은 카페로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누군가의 뒷담화는 할지언정 문제의 본질과 해결에 다가가지는 않았다.
최근에 아파트 단지 오토바이 문제만 해도 그랬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버젓이 있는데도 배달 오토바이들은 공공연히 지상으로 다녔다. 소음도 문제였지만 아이들의 안전이 더 큰 문제였다. 그 문제는 아파트가 만들어진 이래 계속 거론되었고, 놀이터에서 줄넘기를 하던 하민이가 오토바이에 치일 뻔한 사건이 생기자 수영이 발 벗고 나섰다. 그때 막상 수영이 함께 목소리를 내자고 도움을 청했을 때, 엄마들은 갖은 핑계를 대며 함께 나서주질 않았다. 수영이 혼자서 관리사무소를 찾았을 때 아파트 관리소장은 말했다.
“고질적인 문제예요. 저희가 아무리 여기저기에‘오토바이 진입 금지’라고 써 붙여봐야 배달 업체들이 무시하면 그만이에요. 그렇다고 저희들이 나가서 일일이 막을 수도 없고요. 주민들이 나서서 배달 금지 운동을 하던가, 단체로 나와서 오토바이를 막던가 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때 수영은 생각했다. 하민이를 놀이터에 혼자 보내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렇죠? 저도 그 생각했어요. 요새 이런 학교가 어디 있어요? 도시 엄마들 같으면 난리 나죠. 저도 보라 반 엄마들 만날 때마다 물어봤어요. 애들이 선생님 무서워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다들 무서워한다는 거예요. 근데 나서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고요. 옛날 우리 학교 다닐 때 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여기는?”
수영은 성현의 말에‘맞아, 맞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언니는 어디서 왔어요? 저는 부천에서 태어나서 계속 서울에 있었거든요.”
“나? 나도 서울에서 왔지.”
지방대학을 나온 수영은 졸업하고 상경한 경우였다. 그마저도 고향 친구인 남편을 만나며 다시 고향 인근 신도시로 이사 왔지만, 그녀는 누구를 만나든 앞뒤 다 자르고 자신이 서울에서 왔다고 강조했다.
“언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현이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말했다.
“녹음까지 한 마당에 뭐가 두려워? 선생님을 교체해 달라고 해야지. 우리 하민이를 어떻게 이런 사람한테 맡겨.”
수영은 자신이 시골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우선 수영은 학교에, 성현은 교육청에 사건을 고발하자고 정하고 두 사람은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었다. 수영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교감이었다.
“김라미 선생님이 그럴 리가요. 유능한 분이라고 칭찬이 자자한 분인데요?”
교감은 그렇게 말했다가, 수영이 녹음 파일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바로 학교로 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성현의 전화를 받은 교육청 직원은 자기가 경찰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지하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묻고 곧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교무실에 갔을 때 그들을 맞은 건 머리가 하얗게 센 두 노인이었다. 자신들을 교감이라고 소개하는 그들은 마치 남매나 부부처럼 보였다. 신도시에 처음 생긴 비정상적으로 큰 학교였고, 그래서 교감도 두 사람인 것 같았다. 수영의 전화를 받았던 사람은 할머니 쪽이었다. 교무실 한쪽 구석에 있는 소파 테이블에 안내된 두 사람은 두 교감과 마주 앉았다.
할머니 교감은 우선 녹음 파일을 들려 달라고 했고, 곧 새된 담임의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수영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클라이맥스인 ‘입 닫아’에서 내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할머니 교감이 녹음기를 그만 멈춰달라고 했다.
“더 이상 안 들어도 되겠네요. 충분히 어머니들이 왜 오셨는지 알 것 같아요.”
할머니 교감이 말했고, 할아버지 교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우선, 너무 죄송합니다. 지금 너무 당혹스러워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할머니 교감이 뜸을 들이며 말했다. 사과하는 그녀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러게요. 어머니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이미 교육청에도 전화를 넣으셨던데요.”
할아버지 교감이 거꾸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교육청에서도 발 빠르게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다. 수영은 일이 제대로 커지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학교도 교사도 교육청도 모두 한통속일 가능성이 컸다. 수영은 단호해지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저희는 선생님이 먼저 아이들에게 사과하시고, 궁극적으로는 담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영이 다부지게 말했다.
“담임 안 바꿔주시면 저희 언론에도 알릴 각오로 찾아왔어요.”
성현이 이어서 말했다. 수영은 성현을 믿음직스럽게 쳐다봤고, 반면에 두 노인은 더욱 어두운 얼굴을 하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작년에 김라미 선생님이 5학년 담임이셨는데 아주 인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정말로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교감이 말했다.
“너무 고학년만 맡아보셔서 어린아이들과는 안 맞는 거 아닐까요?”
성현이 말했다.
“더군다나 임신도 하셨다면서요?”
수영이 무의식적으로 자기 배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같은 여자로서 임신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았지만, 임신한 여자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속단하기도 쉬웠다.
“그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어요. 정말 이럴 분이 아니거든요.”
다시 할머니 교감이었다.
“평소에 아이들이 선생님 무섭다고 그랬나요?”
할머니 교감이 이어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네, 저희 아이는 정말 학교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전쟁이에요. 그래서 한번 상담도 했는데요, 막상 선생님은 저희 아이가 문제라는 식으로, 제가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식으로 얘기하시더라고요. 학교 입학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그런 얘기를 하셔서 정말 깜짝 놀랐고요. 보라는 정말 그런 아이가 아니거든요. 정말이지 보라를 전학시켜야 하나 고민하다가…….”
성현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저희도 엄마들끼리 만나서 정보 공유하거든요. 아이들이 1학년이다 보니까 서로 자기 반 분위기도 비교하고, 담임 선생님도 비교하는 거죠. 근데 저희 선생님은 알림장에도 거의 두 줄 정도? 꼭 필요한 말만 쓰시고, 아이들 활동사진 한 장을 올려주지 않으시니까, 부모로서 답답한 거죠. 아이들이 학교에서 뭘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이거 보세요.”
수영은 자신들 뒤에도 많은 학부모가 있다는 걸 강조하며 휴대전화 속의 알림장을 보여 주었다. 두 노인은 머리를 맞대고 하민이 반의 썰렁한 알림장을 살폈다.
“다른 반 선생님들은 아이들 사진이며, 그날그날 학습 분위기, 교실 분위기까지 자세히 올려주시던데요? 특히 7반 선생님은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올리시던데…….”
수영이 성현을 쳐다보며 동조를 구하듯이 말했고, 성현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7반 선생님은 정말 베테랑이시죠.”
갑자기 할머니 교감이 자부심이 넘치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죠. 그렇죠.”
철없는 아이처럼 할아버지 교감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아니, 선생님들이 다 베테랑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희 반 선생님은 이렇고, 7반 선생님은 베테랑이고, 이건 뭔가요?”
성현이 날 선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다들 베테랑이시죠. 다들 교육 전문가들이신데……7반 담임 선생님은 워낙에 오래 교직에 있으셨고, 그만큼 경험치가 많아서.”
당황한 할머니 교감이 둘러댔다.
“그래서 저희 요청을 들어주시는 건가요? 아이들 담임이 바뀔 수 있나요?”
다짐을 받아낼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한 수영이 다그치듯 말했다.
“그렇게 해야죠. 그런데 우선 대체 인력이 있어야 하니, 담임 자리를 공백으로 둘 수는 없으니까요, 시간이 좀.”
얼결인 것처럼 할아버지 교감이 대답했다.
“그 핑계로 흐지부지되는 거 아닌가요? 인력은 새로 구하셔야죠. 저도 교사 자격증 있어요. 엄마 중에도 자격증 있는 분 있을 거예요. 어차피 출산하러 들어가시면 새로운 선생님이 오실 거잖아요? 시기를 좀 앞당기는 것뿐일 텐데요?”
성현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수영은 성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라 어머니, 교대 나오셨어요? 그러면 저희 사정은 잘 아시겠네요.”
할머니 교감이 놀라며 대꾸했다. 마치 교직을 이수하고도 자기들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냐는 추궁 같았다.
“자알 알죠.”
성현도 의미심장하게 맞받았다.
“하민이 어머니도 일하세요?”
할머니 교감은 갑자기 이야기를 전환했다.
“네, 아, 아뇨, 지금은 쉬고 있지만 저도 학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 가르쳤어요.”
할 일 없는 엄마들이 괜히 시비를 거는 거라고 생각할까 봐 수영은 서둘러 대답했다. 그때 교무실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김라미가 누구야? 1학년 3반 담임 누구야?”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온 남자는 야구 모자를 눈썹까지 눌러쓰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앳돼 보이는 여자가 말리는 시늉을 하며 서 있었다.
“누구신데요? 저희도 지금 3반 선생님 때문에 왔거든요.”
수영이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마침 피해 사례가 보태진다면 담임 교체는 수월하게 진행될 터였다.
“아니, 자기가 뭔데? 김라미 어디 있어? 나와!”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앞에 놓인 탁자를 걷어찼다.
“당신이 교장이야?”
남자는 할머니 교감을 향해 때릴 듯이 돌진했다.
“하영이 아빠!”
옆에 있던 여자가 순간적으로 남자의 허리를 잡았고, 동시에 수영은 성현을 쳐다보았다. 놀란 표정의 성현은 입 모양으로 ‘하영이 아버지’라고 말했다. 할아버지 교감은 반사적으로 일어서서 할머니 교감 앞을 방어했다.
“하영이 아버지세요? 제 전화받고 놀라셨죠? 저희가 다 말씀드렸어요. 흥분하지 마시고요. 이러시면 저희가 곤란해져요.”
얼굴이 벌건 성현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여기에는 김라미 선생이 없다는 거죠? 3반 교실 어디야?”
남자는 홱 돌아서더니 자기가 들어온 문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만하세요! 애들 수업 중인데 뭘 어쩌려고요. 그러다가 담임 선생님 아기라도 잘못되면, 아버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저희가 다 얘기했다니까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 건지 수영이 꽥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애를 가졌으면 집안에나 있을 것이지, 씨팔, 말이 되냐고요? 애들이 뭘 안다고?”
남자는 울부짖었다. 남자의 무례와 폭력성에 수영은 화가 치밀었다.
“죄송해요. 실은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오늘 아침에 제가 아는 엄마들한테 다 전화 돌렸거든요. 특히 하영이 이름이 녹음에도 나와서…….”
성현이 죄지은 사람처럼 조그맣게 말했다.
“어머니, 아버님, 흥분하지 마시고 다른 학부모님과 아이들 생각하셔서 좀 기다려주세요. 여기 어머니들이 낱낱이 얘기해 주셨어요. 녹음 내용도 다 들었고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할머니 교감이 차갑게 말했다. 수영은 이미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현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수영의 손목을 잡고 지그시 눌렀다. 수영과 성현은 하영이 부모를 챙겨서 서둘러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아니, 하영이 아버지, 저희도 화나요. 아무리 흥분하셨어도 그렇게까지 하시면, 지금까지 저희가 한 얘기가 뭐가 돼요?”
수영이 건물 바깥으로 나와서 남자에게 따져 물었다. 환한 햇볕아래 남자는 더 추레해 보였다. 못해도 자기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였다.
“그게 아니라 저도 녹음 듣고 하도 열이 받아서…….”
의외로 남자는 금세 풀이 죽었다.
하영의 부모가 가고 두 사람은 뙤약볕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오전 내 있었던 한 시간가량의 여정이 까마득히 먼 길을 돌아온 것처럼 여겨졌다.
“지금이 어떤 시댄데 아직도 저런 부모가 있니?”
수영은 속으로 상황을 그렇게 만든 성현을 원망하면서 내뱉었다.
그날 저녁 수영은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여진이었다.
“아까 낮에, 학교에 언니가 온 거 맞죠?”
최소한의 익명성이 보장될 줄 알았던 수영은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면 진상 엄마, 시골 정서에 맞지 않는 유난스러운 학부모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지역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었다.
“낮에 학교가 뒤집어졌어요. 교육청에서 감사도 나오고, 하민이 선생님 울고불고 난리 났었나 봐요.”
“그래? 근데 어떻게 알았어? 내가 갔다는 건?”
“어찌어찌하다가 들었어요. 걔 때문이죠? 머리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급식실에서도 엄청 까부는 애?”
여진은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걔가 엄청 까불어?”
“말도 마요. 여기 급식 선생님들도 걔 이름은 다 알아요. 걔 약간 애정결핍 같아 보이던데? 근데 하민이는 무슨 일이에요? 하민이는 학교생활 잘하는 것 같던데?”
여진이 의뭉스럽게 물었다.
“하민이는 잘 다녔지. 별일 없는 줄 알았는데, 보라 엄마가 애가 하도 선생님이 무섭다니까 녹음을 했더라고. 근데 녹음 내용이 가관이더라. 아차 싶어서 따라갔지.”
수영은 부당하게도 뭔가 자신이 변명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진짜? 충격이다. 김라미 선생님 진짜 천사신데? 완전 아기 같고?”
“여진이가 몰라서 그래, 애들한테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뭐라더라? 입 닫아? 1학년 애들한테 입을 닫으래, 가만히 있으라고!”
수영은 가장 충격적인 말을 전함으로써 여진의 입을 닫아버리고 싶었다.
“웬일이래요, 정말. 근데 언니 우리도 애들 키우면서 성질날 때 많잖아요. 솔직히 저도 애들한테 소리 지를 때 많은데요, 뭐. 저는 양쪽 얘기 다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은 하는데, 도를 넘었어. 더군다나 임신까지 하셨다며? 그런 선생님 밑에서 우리 하민이가 말도 못 하고 주눅 들어 있을 거 생각하면 끔찍해.”
“네, 언니가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일단 알았어요.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일단이라니, 수영은 전화를 끊고 내내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 전화는 할머니 교감이었다.
“오늘 마음고생 많이 하셨죠? 저희도 최대한 빨리 어머니들 요구 들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할머니 교감이 예의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네. 교감 선생님도 오늘 정말 놀라셨죠?”
수영은 이번 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할머니 교감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교직 생활 삼십 년인데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수영은 어딘가 모르게 할머니 교감과는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곰곰 생각해 보니까, 어머니가 우선 담임 선생님을 한번 만나봐야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제가 어머니 마음을 돌려보려고 이러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래도 담임 선생님의 변명, 아니 사과는 직접 들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저 혼자서요?”
“네, 보라 어머니는 지금 화가 너무 나셔서 시간을 조금 가져야 할 것 같고요. 우선 선생님이 어머니부터 만나 뵙겠다고 하시는데, 제가 자리를 주선해도 될까요?”
수영은 할머니 교감의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면서도, 담임이 어떤 사람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졌다. 만약 담임이 자신의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는 상식 이하의 괴물이라면, 수영 자신이 의식이 있는 학부모로서, 인생 선배로서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학교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이 흘렀다. 수영은 마치 소인국에 온 걸리버처럼 조심하며 미로처럼 이어진 복도를 걸었다. 하민이 반 교실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수영의 발소리를 들었을 담임이 마중을 나왔다. 꽃무늬 시폰 원피스 위에 큼지막한 청재킷을 걸쳐 입고, 벌써부터 임산부 티를 내고 있는 담임은 생각보다 더 작고 병약해 보였다. 그녀는 애써 웃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차 한 잔 드릴까요?”
담임이 물었다.
“아뇨, 집에서 마시고 왔어요. 몸도 무거우실 텐데……앉아서 얘기할까요?”
수영은 이야기의 주도권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멋쩍은 얼굴의 담임은 재킷으로 배를 가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책상 한쪽에는 루이뷔통 가방이 우아하게 놓여 있었다. 수영도 한 때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수영은 자기 부모가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을 믿고 스스로 공부에 더 집중했더라면, 자기도 반대의 자리에서 학부모를 오라 가라 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하며, 담임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수영은 담임의 얼굴을 오목조목 뜯어보았다. 핏기 없는 얼굴에 쌍꺼풀 없는 작은 눈과 오뚝한 콧날이 어찌 보면 귀엽게 보였고 한편으로는 날카롭게 보였다.
“혹시 하민이도 제가 무섭다고 그랬나요?”
하민이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최근 활동들에 대해서 칭찬 비슷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담임이 어렵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 솔직히 하민이는 선생님 예쁘다고 좋아했어요. 좀 무섭다고도 했었고요. 근데,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선생님.”
수영은 말끝을 늘어뜨리며 최대한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담임의 투명한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그런데요. 어머니.”
담임은 뜸을 들였다.
“어머니, 저 매일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정말 저 그 정도 아니에요. 하민이한테 물어보세요. 정확히 거기에 어떤 말이 녹음됐는지는 모르지만요. 보라 같은 경우에는 솔직히 말썽을 많이 부려서 제가 혼내기는 했어요. 근데 하민이는 제가 정말 예뻐하는 아이거든요.”
담임이 쏟아내듯 말했다. 수영은 내심 기쁘면서도, 성현과 자신을 이간질하려는 수작으로 보여 괘씸했다.
“물론 그러시겠죠. 근데 녹음 내용을 들은 이상 저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네……그렇지만 어머니, 보라는 처음부터 제가 계속 주시하던 아이예요. 하민이한테 물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장난이 좀 심한 편이라서 제가.”
수영이 담임의 말꼬리를 잘랐다.
“선생님, 저는 보라가 궁금한 게 아니에요. 오늘 저를 따로 부르셔서 이렇게 보라의 단점을 짚어내고 억울함을 호소하시기보다는 먼저 사과하셔야 맞는 게 아닐까요?”
“아, 네, 그렇죠.”
얼굴이 새빨개진 담임이 작게 말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어머? 학부모 상담? 내가 차라도 가져올까? 어머니 혹시 차 드시겠어요?”
교실 문을 연 여자가 거침없이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당황한 수영이 대답했다.
“아, 네에. 혹시 어머니, 제가 옆에 같이 있어도 될까요?”
여자가 말했고, 수영은 잘 모르는 선생까지 끼어든 상황에 불쾌해졌다.
“아뇨. 저는 저희 선생님하고만 얘기하고 싶은데요?”
“아, 그러세요?”
여자는 무례한 태도로 쭈뼛거리고 있었다.
“뭐죠? 왜 선생님까지 있는 상황에서 얘기해야 하는데요?”
수영이 반문했다.
“혹시 모르잖아요. 몸도 안 좋으신데?”
그때 교실 앞문으로 할머니 교감이 나타났다.
“홍 선생님 나가 주세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러시면 예의가 아니지요.”
“아, 예, 예, 예…….”
할머니 교감의 말에 홍 선생이라는 여자는 철딱서니 없는 아이처럼‘예’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문으로 향했다.
“근데요, 어머니. 녹음이 불법인 거는 아시죠?”
홍 선생은 문에 몸을 반쯤 걸친 채 수영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선생님!”
할머니 교감이 소리쳤다. 처음 보는 그녀의 신경질적인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근데요, 교감 선생님도 이러시는 거 아니에요. 교권이 무너졌다고요. 솔직히 화 안 내는 교사가 어디 있어요? 김 쌤이 이 정도면 저는 뭐 영창 가겠네요. 교실에도 희로애락이 있어야죠, 안 그래요? 다 필요한 거 아니냐고요?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홍 선생은 문밖에 나가서도 뭐라고 더 지껄이다가 제풀에 꺾여서 돌아갔다.
“하민이 어머니 제가 사과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바깥이 조용해지자 할머니 교감이 말했다. 수영은 혼자 학교를 찾아온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저는 선생님이 아무리 속상하셔도 저를 따로 불러서 보라의 문제점을 얘기하시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이러시면 보라와 보라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 되잖아요. 보라 엄마와 오해가 있으시면 보라 엄마와 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저는 평소에 선생님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해요.”
수영은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백번 옳은 말씀이고요. 어머니 마음 이해합니다.”
할머니 교감이 말했다. 담임은 곧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담임을 보자 수영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어떤 마음이실지 잘 알아요. 저를 부른 이유도 알겠고요. 힘드시겠지만 저를 만난 것처럼 보라 엄마도 만나서 사과부터 하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몸도 잘 챙기시고요.”
수영은 담임의 등을 한번 토닥여주고 교실을 나왔다. 그 정도면 학부모로서 위신도 지키면서 보라 엄마에게 문제 해결을 떠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담임의 얼굴은 새빨갛다 못해 곧 터질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분노 때문인지 안도감 때문인지 수영은 알지 못했다.
그날 저녁, 수영은 다시 할머니 교감의 전화를 받았다. 수영은 휴대전화 녹음 기능을 켜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할머니 교감이 어떤 제안을 할지, 대화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아까 홍 선생님 때문에 많이 당황스러우셨죠?”
“네, 솔직히 깜짝 놀랐어요. 학교에도 하영이 아버지 같은 분이 계시더라고요?”
수영이 비꼬듯 말했다. 홍 선생의 태도를 떠올리면 수영은 아무 데고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네. 사실 홍 선생님이 1학년 주임이세요. 평소 하민이 선생님하고 특별히 친하시기도 하고, 수업을 녹음했다는 것에 대해 충격이 크셨던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잘 알지도 못하시면서, 제 발로 학교에 찾아간 것도 아니고요.”
“맞아요. 저도 어머니 가시고 나서 그 부분을 엄하게 꾸짖었어요. 주임 선생님은 어머니가 찾아오신 걸로 오해하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미리 점검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담임 선생님을 어서 알아봐야 하는데, 어제 교육청에 보고 들어갔으니까 곧 방도가 생길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수영은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교감이 이어서 말했다.
“아무튼 제일 걱정되는 건 보라예요.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녹음하려고 신경 썼을 거고, 제 딴에는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아이가 그러기는 쉽지 않거든요. 선생님도 무섭고, 또 거기에 반응하는 엄마도 무섭고, 어머니도 보라와 자주 만나신다면 잘 살펴주세요.”
그 와중에도 아이의 마음을 챙기는 할머니 교감이 수영은 믿음직스러웠다.
“학교에 교감 선생님 같은 분만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수영은 할머니 교감을 추켜세워 주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저도 김라미 선생님 같은 시절 있었고, 주임 선생님 같은 시절 있었는걸요.”
“정말요? 저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요. 저도 솔직히 아이들에게 화도 내봤고, 젊었을 때는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바닥 때려보기도 했어요.”
수영은 여기까지 말하고 아차 싶었다. 아직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기억이었고, 하민이를 낳아 키우면서는 두고두고 후회하던 장면이었다.
수영은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 숙제를 해오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적당히 체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상식이 통하던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다음을 이어갈 방법을 몰랐다. 손바닥을 자로 때리거나 딱밤을 때리는 수준이었지만, 장난스럽게라도 한번 체벌을 당한 아이들과는 다시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체벌의 강도가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것, 믿고 따르던 선생으로부터의 비난과 미움을 받는 것, 그것은 좋아하던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후려 맞는 배신감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할머니 교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동안 김라미 선생님이 쌓아온 것들이 있잖아요. 작년에 5학년 담임을 맡으셨을 때 선생님이 아이들과 학부모님들한테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저는 잘 알아요. 어떤 이유이든 아이들에게 무섭게 화를 내서는 안 되는 일이죠.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선생님 경력이 이렇게 무너져 내린다는 게 저는 안타까워요.”
“그렇겠네요.”
수영은 힘없이 대답했다.
“하민이 어머니, 많이 힘드시겠지만 이번 일은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저희도 신경 쓰겠습니다.”
결국 일은 그렇게 되기로 한 것처럼 흘러갔다. 수영은 어쩐 일인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네, 그게 최선일 것 같네요. 다시 이런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저는 여기서 그만할게요. 근데 선생님이 진짜 바뀔 수 있을까요? 몸은 더 무거워지시고 점점 더 어려워지실 텐데요?”
“선생님도 이번 일로 경각심을 크게 느끼셨을 겁니다.”
“보라 어머니는 어떻게 설득하실 생각이세요? 제가 보라 엄마까지 설득하지는 못해요.”
수영은 선을 그었다. 전의를 상실한 이상 더는 귀찮아지고 싶지 않았다.
“보라 어머니는 저희가 다시 만나서 이야기해 볼게요. 어머니, 정말 선생님 한 분 살리신 거예요. 어머니가 마음 돌려주신 것만으로도 아마 더 큰 마음을 지닌 교사로 거듭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에요.”
그 이후로 수영은 딱 한 번 성현과 통화했다. 학교를 찾아가고 두 주가 지나고도 성현에게 연락이 없자 예의상 수영이 먼저 전화를 건 거였다. 수영이 시치미를 떼고 정황을 묻자 성현이 대답했다.
“담임이 직접 찾아와서 사과하시더라고요. 몸도 아프시다는 데 괜히 저 때문인 것 같고……. 근데 언니 저 잘한 거 맞겠죠?”
성현의 말에 수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후로 하민이의 담임은 꼬박꼬박 알림장을 썼고, 아이들의 활동사진도 자주 올리며 부모들과 소통하려고 애를 썼다. 덕분에 하민이는 별 탈 없이 학교에 다녔고, 반대로 보라와 하영이는 더욱 비뚤어지기로 작정한 것처럼 학교 안팎에서 자주 이름이 거론됐다. 소문에 의하면 성현은 여전히 녹음 파일을 가지고 다니며 아는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다녔다. 성현의 가슴속에 어떤 앙금이 남아 있는지 수영은 묻고 싶지 않았다.
하민이의 담임은 그해 추석이 지나서야 바뀌었다. 그것도 이미 한참 전에 정년퇴직한 할머니 선생이었다. 항간에는 만삭의 담임이 추석 보너스까지 타먹고 휴직하느라 간신히 버텼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영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하민이만 괜찮다면 이번만큼은 가만히 있을 작정이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진이 수영에게 소곤거렸다.
“언니 그거 알아요? 보라랑 하영이라는 애 있잖아요. 걔들 엄마들이 다 학교에 불려 왔다더라고요. 바뀐 담임이 글쎄 본인 자식들이 수업 시간에 어떻게 하는지 직관하라고 부른 거래요. 그 얘기 듣자마자 언니 생각났어요. 언니 하마터면 그 엄마들하고 엮여서 큰일 날 뻔했어요.”
여진의 말에 수영은 웃으며 맞장구를 쳤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중간에서 변심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엇나간 건 물론이고 성현이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자책이었다.
그날 저녁, 수영은 휴대전화를 들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우연히 김라미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프로필 사진이 업데이트됐다는 알림이었다. 수영은 사진을 클릭해 봤다. 제 엄마를 쏙 빼닮은, 이목구비가 아기자기한 아기가 새빨간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었다. 프로필 이력에는 아기의 사진이 많았고, 하나같이 찍는 이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졌다. 자칫 자신이 신변에 관여했을지도 모를 아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배속의 것들이 똬리를 틀고 폭발했다. 수영은 설사하는 내내 아기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