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보내는 이야기

사실 가장 먼저 쓴 가장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by 내J

해변에서 책을 읽다 문득 미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백을 거절한 그 사람에게, "아직도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라고 연애 상담을 해버릴까?'라는 생각을 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의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여주인공도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일단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저'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해파리 마냥 둥둥 떠다닐 때, 뜰채로 퍼내는 거 마냥 글을 씁니다. 사실 일할 때는 그렇지는 않고, 좀처럼 짝사랑의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을 때 마치 쌓이고 쌓여서 터질 것만 같은 감정들을 편지 속에 마구 뱉어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만의 '완벽한 거절'을 당한 입장에서 편지를 줄 수는 없었기에, 수신자 없는 연애편지들이 마치 구조를 바라고 띄우는 종이 돛단배들처럼 이렇게 온라인을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img.jpg 감정을 마구 쏟아냈습니다.

사실 집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저' 였기에, 집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해변에 이렇게 있게 된 까닭은 업무에 지쳐서 조금은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고 싶은 그 사람의 워케이션에 이런저런 핑계를 모으고 모아서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름의 마음을 정리할 절호의 기회로, 이별을 준비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미련을 가지고 있다한들, 상대방이 영원이 받아줄 리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 평행선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를 밀어냄에 저항하며 평행을 유지하려는 나의 일방적인 마음을 멈추는 것이 나에게도 결국은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을 생각하며 "내가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자. 그리고 오래도록 나를 기억하게 하자."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각각의 숙소에서 헤어진 이른 초저녁, 나와의 시간이 그렇게 소중하기 않다고 느껴졌기에, 그 사람과의 시간이 소중한 '저'는 홀로 숙소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한없이 어두워졌습니다. 이런 분위기 좋은 외지에서 홀라당 나타난 사람이 어쩌면 그 사람과 만나게 된다면 산산조각 난 나의 마음은 다시 붙일 수는 있을까? 생각하며 온갖 생각을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아직도 많이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직은 그 사람을 보내지 못하는 나였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달려가서 너를 좋아하노라라고 외치기엔 이전의 실수와 똑같은 결과만 예상되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없이 그저 기다리거나, 스스로를 바꾸는 것뿐이었습니다. 사실 기다림은 꽤 길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노라 깨닫고, 기다림을 거쳐 고백할 때까지 기간 이상을 '완벽한 거절' 이후로도 맴돌고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제 안 해본 것은 '저'를 바꾸는 것이고 그에 대해 제가 선택한 해답은 하루키 루틴이었습니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걸 반복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면과 외면 모두를 가꾸면서, 제대로만 한다면 눈앞에 있는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신청 일정도 맞출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1석 3조의 욕심을 부려보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운동은 너무 싫으니깐 N사의 게임기가 있는 집에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다만 지금 가장 술술 써지는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라는 것은 심각한 오판일 수도 있기에 필명 뒤에 숨어서, 브런치라는 대나무 숲에 뛰어들었습니다. 대나무 숲 속의 제 외로운 외침에 호응하는 메아리처럼 하루 만에 쓴 글들로 신청한 작가 신청이 통과하여 선정된 것은 운명 같지만 철저한 계산이었던 것입니다. ('저'의 의도를 간파하신 선정 담당자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지난 며칠 동안 앞으로도 그 사람을 계속 좋아하는 '저'의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써왔습니다. 수신자 없는 연애편지를 말입니다. '저'도 이게 바보 같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고의 만남이 "도서관의 서고에서 책을 꺼내다 맞은 편의 사람과 눈이 맞게 되는 것"인 '저'는 좋아하는 마음을 단칼에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사랑의 바보, 좋은 사람, 그녀가 웃잖아 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3대 호구송을 좋아하는 분께 추천드립니다. 실제로 대부분 글의 노동요로 쓰인 노래들의 감정에 극공감한 혼자만의 사랑 이야기이니깐요. 아이러니하게도 연인과의 관계에 지쳐 다시는 연애하지 않겠노라, 결혼은 하지 않겠노라 홀로 다짐했던 '저'로서는 어쩌면 한없이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 담긴 이야기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가 평생 J에게 전해지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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