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빨

당신은 누구신가요

앤크작 단편소설

by YJ Anne

자, 그럼 이제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해주세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요?


네.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조금씩 친구에게 얘기한다 생각하고 풀어내시면 됩니다.


친구에게 얘기한다고 생각하라고요? 안될 것 같은데요? 당신은 친구가 아니고 상담사잖아요.


네. 맞아요. 하지만 친구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편하게 말씀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죠?


하지만 사실 전 친구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친구들에게 제 속 깊은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없고요.


아, 그럼 이건 어떤가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이라고 생각해보면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네……노력은 해볼게요. 제가 이런 상담은 처음이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괜찮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니까요. 이야기 시작이 힘드시면 제가 질문을 드리는 방식으로도 할 수 있어요. 이건 괜찮으세요?


질문이요. 제게 질문을 해주신다는 거죠? 음……그렇게 한다면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요. 그럼 제가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조금씩 더해서 질문을 하는 걸로 하죠. 최근에 가장 마음에 남았던 일이 있으셨나요?


마음에 남았던 일이요? 음……아, 남편하고 얼마 전에 심하게 다퉜어요.


무슨 일로 다투셨어요?


제가 최근에 한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 가져온 짐 가방을 아직도 풀지 못하고 침대 방구석에 놔두었는데 남편이 왜 빨리 정리하지 않는 거냐며 짜증을 냈거든요. 제게는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데 남편은 그 이유를 몰라요.


여행을 다녀오셨군요. 어떤 여행이었어요? 얘기해 줄 수 있어요?


여행이요. 하……긴 스토리에요. 오늘 얘기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예약된 시간은 신경쓰지 마시고 하시고 싶은 얘기를 다 하셔도 돼요. 남편분과 다녀오신 여행인가요?


아니에요. 저 혼자 다녀왔어요. 얼마 전에 한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어느 요양원이었는데 저를 꼭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고, 이름을 알려주셨는데 저는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모르는 분이라고 하니,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지만 저를 낳아 주신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나를 낳아 주신 분이 왜 이제 와서, 왜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사실 의아했어요. 저는 아주 어릴 때 입양되었거든요. 제가 듣기로는 백일도 채 되지 않았었어요. 한국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고 온 가족이 호주로 이민을 왔어요. 내 부모님도 나의 생물학적 부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신다고 그러셨는데 이제와서 누군가가 내 생모라고 하며 만나고 싶다고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내 대답이 너무 무뚝뚝했는지 전화하신 분이 연신 사과하시며 다시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꼭 와주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요. 전화를 빨리 끊고 싶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말씀하시는 분의 목소리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져서 어쩔 수 없이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작은 안도의 한숨이 들렸어요.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연락했어요. 한국에 다녀와야겠다고.


남편분은 뭐라 하던가요? 바로 승낙하셨어요?


네. 얘기를 들어보더니 내가 원하면 다녀오라고 했어요.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그분의 말씀이 계속 귓가를 맴돌면서 나에게 어서 항공권을 알아보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티켓을 알아보니 그날 밤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었어요. 저는 무겁지 않은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했죠. 공항에 내려서는 알려주신 주소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고요. 요양원 이름이 ‘보림 요양원’이었어요. 높지 않은 상가건물에 있었는데 안에는 아주 깔끔하고 정갈했어요. 마침 응접실 같은 곳에서 나오시는 직원분이 있으셔서 제 이름을 얘기하니까 눈이 동그래지시더니 실장님을 호출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나보고 어서 1호실로 들어가라며 복도 끝에 있는 방을 손으로 가리켰어요. 나는 작은 짐가방을 입구에 놓아둔 채로 복도를 따라 걸어갔어요. 1호실이라고 적힌 문은 아주 살짝 열려있었어요. 열린 문 사이로 기계음이 ‘뚜 뚜 뚜 뚜’하며 들려오고 있었고 세 사람이 침대를 둘러싸고 누워계신 분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분이셨나요?


네. 조금 열려있는 문을 살짝 밀었더니 안에 있는 사람 모두 동시에 저를 바라봤어요. 저는 멋쩍어서 살짝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내 이름을 이야기하려는데 아까 입구에서 만난 직원분이 들어오시면서 제가 누군지 그분들에게 알려줬어요. 키가 작고 푸근하게 생기신 여자분이 자기가 전화한 사람이라며 내 앞으로 와서 내 양손을 잡았어요. 그리고 정확히 그때 기계가 마치 고장난 것처럼 한 음으로 ‘띠——‘ 소리를 냈어요.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어요. 이건 심장 박동이 멈춘 소리라는 걸. 나는 고개를 들어 침대에 누워 계신 분을 봤어요. 침대에 누군가 누워있는지 긴가민가 싶을 정도로 야윈 여자분이었어요. 산소 호흡기를 끼고 계셨는데 검은 사제복을 입으신 분께서 떼어 주셨어요. 죽음의 기운이 방 안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슬퍼 보이는 분이 아무도 없었어요. 어쩜 얼굴들이 그렇게 평온해 보였는지 죽음이 아니라 탄생을 앞두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낯설었어요. 사람이 죽으면 이내 슬픔을 느끼기 마련이라 생각했는데 그곳에 계신 분들은 아니었어요. 모두 얼굴이 편안해 보였어요. 나만 당황한 채로 얼굴이 굳어버렸죠.


그분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셨나요?


슬픔이요? 제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요? 저는 그렇게 인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평소에도 눈물이 많지 않기도 하고요. 울지 않았어요. 아니, 슬픈 감정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되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나 싶은 마음에 후회만 되더군요. 그래서 몸을 돌려 다시 입구로 나가려고 했어요. 그때 아까 내 손을 잡으셨던 그 키 작은 분이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드릴 게 있어요.’라며 나를 붙잡으셨어요. 그녀는 1호실 안에 있던 서랍장을 열어서 작은 상자를 내게 내밀었어요. 한 손에 잡히는 정사각형의 하얀색 박스였어요. 나는 그분을 ‘이게 뭐죠?’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어요. 침대에 누워계신 분이 입소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탁하신 거라고 했어요. 언젠가 제가 오면 전해달라고요. 나는 뭐 이제 와 유산이라도 남겨주시는 건가? 하는 아니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박스를 받아들고 1호실을 나왔어요. 빨리 나오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을 나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왔어요. 다행히 몇 시간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 좌석이 남아 있어서 두 시간 후에는 이미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어요.


박스 안에는 뭐가 들어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박스요. 그건 제가 여기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에 발견했어요. 그동안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짐 정리를 못 했거든요. 남편이 화가 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고요. 대뜸 한국을 갔다 오더니 왜 얼마 되지 않은 짐도 정리를 못 하고 있냐고. 저도 모르겠어요. 왜 내가 정리를 못 하고 있는지. 그때 가져갔던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하나도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심지어 화장품 조차도요. 가방 안에 있는 것을 꺼내면 간단한 일인데도 새 걸 꺼내거나 새로 사 와서 쓰고 있었거든요.


아마도 현실을 마주하기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현실이요? 뭐가 제 현실인데요? 선생님이 제 현실에 대해서 뭘 아시는데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이것만 현실인가요? 내게는 존재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없는 것들은 현실이 아닌가요? 그럼 저는 제 현실을 어디까지 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나를 낳아준 부모의 존재를 모르고 자랐지만, 떡하니 한국에서 잘 살아 있었던 것은 어떤 게 현실일까요? 그분들이 계신 거요? 아니면 안 계신 거요? 제게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버젓이 숨을 쉬며 살고 있었잖아요. 그럼 그분들은 제게 현실인가요? 아니면 현실로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제게는 뭐가 현실인가요? 그걸 선생님이 어떤 방식으로 정의하실 건데요? 제게 어떤 현실을 인정하라고 부추길 거냐고요!


......


왜 말이 없으신 거예요? 왜 가만히 저를 쳐다만 보고 있는 거예요? 왜 제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보시냐고요. 마치 내가 그 잘못을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것처럼요!! 왜!!! 왜 내가 모르는 현실을 마주하기 힘들어한다고 마치 나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정의하냐고요! 왜! 당신이 뭔데!!


......


궁금하세요? 그 박스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핸드폰이었어요. 단 하나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핸드폰이요. 혹시나 해서 찍은 사진이 들어있는 갤러리를 열어보니 사진은 달랑 9장 있더군요. 핸드폰 바탕화면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어요. ‘제 이름은 안영자입니다. 저는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저를 발견하신 분은 통화 버튼을 눌러 [보림 요양원] 김 실장님에게 전화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화번호는 단 하나만 저장되어 있었어요. ‘김 실장님’이요. 9장의 사진은 제가 전혀 모르는 장소였어요. 당연히 알 수가 없죠. 그곳에 살지 않았으니까.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요양원이 있는 건물 사진이었어요.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 아파트 산책길처럼 보이는 여러 장의 사진들, 만세 운동을 했던 분들을 기리는 ‘머니만세운동 표지석’ 그리고 꽃이었는데 한국에서 유명한 꽃 있잖아요. 뭐라고 하더라? 국화? 이름은 생각이 안나는데, 그 꽃이 찍혀 있는 사진도 있었고요.

아, 무궁화 말씀하시는 군요. 혹시 알아볼 수 있는 장소나 사람은 있었나요?


사람이요? 그랬다면 좋았을까요? 상가 사진에 겨우 지나가는 행인 정도만 찍혀있고, 그 외에 사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람은 없어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제게 보여 줄 수 있나요?


제 말을 못 믿으시는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가져올게요. 여기 있어요.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 진짜 이 사진들밖에 없어요. 문자를 주고받은 내역도 없고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이걸 왜 제게 주셨을까요? 저는 그게 아직도 이상해요. 제게 주고 싶었던 것이 이게 맞을까요? 혹시 통장 같은 거였는데 그 김 실장님이라는 분이 가로채고 이걸 대신 넣은 것은 아닐까요? 저는 도무지 모르겠어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제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마치 그분을 만나보겠다고 한국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저를 조롱하는 것 같아서 너무 기분이 나빠요. 이걸 확인한 이후로 계속 악몽도 꾸고요. 잠을 못 자겠어요.


저런……제가 수면제 처방해드릴 수 있는데 필요하신가요?


정말요? 네, 처방해 주세요. 잠을 좀 자고 싶어요. 잠을 자고 나야 뭔가 마음에서 정리가 될 것 같은데 잠도 못 자니까 일상이 무너지고 있어요. 남편도 자꾸 제가 잠을 못 자니까 더 예민해졌다고 계속 쏘아붙여서 시끄러워요. 제발 좀 그 사람 입을 닥치게 하고 싶어요. 미치고 환장하겠다니까요.




살짝 열린 방문으로 두 사람이 한 여자를 지켜보고 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와 청바지와 셔츠 차림의 남자. 두 사람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보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고 있다.

여자는 거울을 쳐다보며 입을 달싹인다. 크게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소리로 마치 주문을 외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처럼 들린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청바지 남자에게 말한다.


“요청하신 요양원 입실 요건이 승인되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환각증이 맞습니다. 저희가 오늘 바로 Mrs. Kyoung을 인솔해 가겠습니다. 면회는 환자가 안정되기 전까지 불허합니다. 여기 문서에 서명하시면 더는 Mr. Kyoung이 하실 일은 없습니다. 저희 희망 클리닉에서 치료에 관련된 의논 사항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제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남자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제 아내를 잘 부탁합니다. 저는 당분간 해외 출장이라서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이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여 검은색 정장 여자에게 인사를 하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문을 나섰다.

등 뒤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입가에는 연하디연한 미소가 피었다.


남자가 떠나간 뒤 집 안은 분주했다. 이리저리 분주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이때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화장대에 앉은 여자는 연신 화장대 위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사진이 뭔데, 무슨 의미인데? 도대체 당신과 나에게 이 사진이 어떤 의미인데 나에게 주었냐고! 당신 대체 누구야. 누군데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거야. 이게 뭔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는 남자 직원들과 함께 여자의 등 뒤로 조용히 다가갔다. 중얼거리는 여자를 뒤에서 담요로 감싸며 안았다. 혹시라도 자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절차였다.

담요 속에 파묻혀서 밖으로 끌려 나가던 여자는 핸드폰을 손에 잡으려 몸부림을 쳐댔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절규에 가까웠다.

아무도 그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흐느끼는 울음을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도.


#나크작 #앤크작 #작가앤 #나크작매거진 #글빨

#단편소설 #앤크작단편소설 #앤크작림크작프로젝트 #단편소설쓰기

#습작 #글쓰기 #소설쓰기 #창작 #창작자 #크리에이터


Photo by 림크작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