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야구장에 갈 수 있는 걸까
코로나가 시작되고 꿈에서 깰 시간이다.
생각지 못한 재난으로 쫓겨나듯이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다시 현실이다. 대만에서 잔뜩 들었던 수업과 학점들이 아까워 4학년에 새로운 전공을 시작했고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 내 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더라.
여느 기업들처럼 취업 바이블이 나와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해야 그 노선에 합류할 수 있을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지방에 있어서 그런 걸까 하는 작은 피해의식들이 내 안에 떠오르고 비전공자라서 스포츠 구단이 없는 도시에서 학교를 다녀서 하는. 나는 안 되는 이유들만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꽤나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했었는데 4학년이 된 내 대학생활을 열어보니 있는 거라곤 학점과 남들 다 있는 영어 점수 그리고 야구장에 살았던 증빙할 수 없는 시간들뿐이었다. 코로나가 강제로 쥐어준 여유의 시간에 나는 대부분 후회하고 살았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대외활동이라도 할걸 뭐라도 해볼걸. 아쉬운 마음에 넣었던 비교적 경쟁률이 낮아 보이는 스포츠 대외활동에도 번번이 떨어졌다. 그 이유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 거 같아서 더 울적했다. 나는 또 안 되겠구나. 내 첫 번째 꿈처럼.
그래서 여느 때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신입생 때부터 해왔던 교육봉사를 우리 지역에 있는 공기업의 기자단을,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했고 동생의 야구를 봤다. 교육 봉사단도 꽤나 열심히 했다. 나는 의외로 가르치는데 적성이 맞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던 거 같다.
코로나의 시간은 느린 듯하면서 빨라서 또 다른 한 해가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야구장에 갔다. 내 첫 번째 그라운드는 대학교 5학년에 찾아왔다. 나는 늦었고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은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많은 활동들을 하고 온 동기들을 옆에 두고 왜인지 모르게 주눅 들어서 있었던 나에게 매니저님이 해주신 말은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00 씨가 했던 그 많은 일들과 경험이 우리는 필요했어요. 서로 다른 삶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우리는 야구로 함께 행복해야 하잖아요.
아, 그래 나는 그랬지. 나는 그런 걸 할 수 있었지. 세상에는 내가 가지고 있지만 남들이 발견해주지 않으면 나는 모르는 것이 있다. 나한테는 이게 그랬다. 내가 일평생 가지고 있었지만 단점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가치를 알지 못했던.
정해진 길, 그 목적지에 다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일반적인 길은 포기했다. 나는 안되는데 어떡해.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안 되는 것들을 벽에 걸어놓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싶지는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설령 이게 아닐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꾸준히의 이름으로 나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되었다. 대학교 내내 했던 교육 봉사에서는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안해서 아이들이 스포츠를 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했었고 외국인 친구들을 도왔던 일과 봉사단은 나의 새로운 시야가 되어 내가 보았던 것들을 바탕으로 한 새로움을 말하며 어느 기업의 장학생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산발적으로 보이는 내 발자국들이. 남들이 만든 고속도로와 같은 정석을 부러워했던 나에게도 강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정답은 아닐지언정 새로운 곳의 새로운 길.
과학에서는 검토를 행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을 해보는 것을 방법론이라고 한다. 남들과 다름을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 나만의 방법론이자 이게 내 야구다.
이제 드디어 내가 꿈꾸던 야구장의 다른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