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내가 크고 자란 곳이자 내 삶의 가장 긴 시간의 배경이 된 곳. 그래서 안일하게도 나는 어떠한 안정감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니깐 내가 잘 아는 곳이니깐 어쩌면 나는 잘할지도 모르겠다고. 언제나 혹시나의 끝은 역시나 여야 재미있기 때문일까, 나의 혹시나 하는 희망의 불씨는 역시나 까맣게 타 사라졌다.
시야가 변한다고 말해야 하나. 태도나 정보의 접근성이 주는 그런 것이 아닌 정말 물리적인.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그런 공간과 시야만이 내 것이었는데. 내게 펼쳐진 새로운 세상은 더 넓은 공간감과 시야가 필요한 곳이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낯선 것이지만 오래된 내 야구장은 자신했던 나에게도 차갑고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쩌면 마음속 깊이 꽁꽁 숨겨두었던 야구장에 대한 혼자만의 유대 때문에 더 혹독했을지도.
내가 가장 처음 배웠던 것은 생각의 전환이었다. 내게 당연했던 것들은 모두 계획과 의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자연스러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누군가의 노력의 산물임을. 그 당연함을 인지하고 생각하는 데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년 동안 알고 지냈던, 하지만 처음 보는 모습의 야구장은 어렵고 무섭기도 그리고 몰랐던 새로움에 설레고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자체가 나에게 주어진 초심자의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힘들지만 잘하고 싶은 그 마음이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하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었음을 알기 때문에.
빈 야구장의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내가 마주했던 또 다른 야구장의 문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몰랐던 빈 야구장이었을 것이다. 공백이 주는 또 다른 감정. 기시감과 낯섦. 나는 처음 보는 그 광경 속에서 그 감정이 내 삶에 주어진 또 다른 새로운 역할의 부담과 긴장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또다시 봄이다. 게이트가 열리고 들뜨고 설레는 표정의 관중들이 들어온다. 내가 전에는 알지 못했던 진정한 야구장의 순간. 내가 보았던 공백의 낯섦이 지워지고 내가 알던, 다시 내가 사랑하는 그곳이다. 이곳은 이 공간을 채우는 누군가가 있어야만이 완성되는 하나의 작품임을. 나는 그때야 어른들이 말하던 생각의 전환을 완성했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 풍경이 보고 싶어 나는 그렇게 그 여백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고민하고 애태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