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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Jun 25. 2024

감자의 한살이


텃밭에서 가장 먼저 심은 작물이 감자입니다. 3월 16일에 주말농장 관리실에서 설봉 씨감자를 1킬로에 5천 원을 사서 심었다고 제 텃밭 공책에 기록돼 있네요. 씨감자란 보통 감자입니다. 특별한 건 아니에요. 감자 중에서 적당한 걸 골라서 싹을 틔우는 거죠.


감자는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자라고 자라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개의 감자들을 키워냈어요.  

6월 22일


세 달하고 일주일이 걸렸네요. 아래 사진에 반쪽을 낸 씨감자가 보이시나요? 아직도 썩질 않았네요. 신기하죠? 채 자라지 못한 아주 작은 감자알들도 보입니다.


감자에게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감자가 솜털이 보송보송한 조그만 싹을 틔웠던 게 쌀쌀한 초봄이었는데요.

4월 11일


감자는 봄볕 아래서 잎을 열심히 냈습니다. 어떤 건 좀 더디게 어떤 건 좀 빠르게 자기 속도대로 컸습니다.

4월 22일


5월로 접어들며 기온이 따뜻해지고 일조량도 많아지자 연둣빛 감자 잎사귀는 점점 깊은 초록색으로 변해갔습니다. 어리고 귀여운 느낌은 없어지고 억세고 튼튼한 식물로 컸습니다.  

5월 2일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꽃을 피우더군요. 나는 흰 감자야,라고 선언하면서요. 꿀벌이 찾아옵니다. 감자가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수정이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반가운 손님입니다.

5월 16일


어느 시기부턴가 감자가 부쩍 기운이 없어졌어요. 전 뭐가 잘못됐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밭 감자들도 그렇더라고요. 감자가 수확할 시기가 되면 이렇게 시들면서 넘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작년에는 그걸 눈치 못 챘네요. 이렇게 작물이 수확을 앞두고 쓰러지는 걸 '도복한다'고 하더라고요. 전문용어를 쓰면 왠지 전문가가 되는 듯한 이 기분...^^

6월 11일


다른 밭을 기웃거리며 이제 '옆사람 따라하기'를 할 준비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감자를 캘 때 저도 따라서 캐는 거죠. 6월 22일 토요일이 바로 그날입니다. 한 이랑만 심었지만 전 야심 찬 착각을 했네요. 이마의 땀을 훔치며 감자를 하루종일 캘 줄 알았거든요. 종이상자를 하나만 가져와서 부족할까 걱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한 시간 만에 뚝딱 끝나버렸네요. 상자는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감자는 쑥쑥 뽑혔고, 땅속의 감자는 호미질 몇 번에 금방 다 나왔어요. 감자를 상자에 담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상자를 더 가져왔으면 괜히 짐만 됐을 뻔했어요. 어쨌거나 알이 들쭉날쭉, 보드랍고 촉촉한 미색의 예쁜 감자들이 옹기종기 상자에 모였습니다. 풍년이에요~ 풍년~ 하고 감자들이 노래를 부르네요^^

 

오전에 캔 감자를 오후에 냄비에 넣어서 쩠습니다. 관리실 아주머니께서 자부심 뿜뿜, 강원도에서 직접 사 왔다며 자랑하시던 감자답게, 껍질이 터지는 포슬포슬한 감자였어요. 소금에 찍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 알 감자는 수십 개 감자알이 됐다가 다시 한 알로 돌아갑니다. 감자 한 알은 영원한 감자 한 알입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드네요, 감자를 키워보니.


주말농장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감자를 캐느라 등을 돌린 채 쪼그리고 앉아서 호미질하던 모습, 짙은 고동색 흙 위에 감자가 동글동글하게 모여 있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이야기 같습니다. 땅속에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햇빛을 쬐는 감자들이 이야기 속에 그대로 담깁니다. 감자의 한살이는 참으로 알차고 성실했습니다!


전 마음이 조급해서 감자를 캐고 난 다음날 빈자리에 들깨 모종도 심고 서리태도 파종했는데요. 일주일만, 아니 단 며칠만이라도 그대로 둘 걸 그랬어요. 감자를 추억하며 잠시 그대로 둘 걸 말이죠... 내년에는 그러겠다고 결심합니다.  







이번주의 텃밭 기록을 합니다:

6월 23일: 감자 밭에 들깨 모종을 옮겨 심고 서리태를 파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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