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초등학교 근처에는 세 개의 고아원이 있었다. 마치 지역을 각각의 색으로 나누어 삼등분한 듯, 세 고아원은 서로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첫 번째 고아원은 마을 뒷산 언덕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산속에는 유격 훈련장이 있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위험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났고, 그들의 눈빛에는 경계와 단단함이 서려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는 어린아이들답지 않은 묵직한 고요함이 깃들어 있었고, 그 고요함은 그들이 처한 환경이 빚어낸 독특한 색이었다.
두 번째 고아원은 마을의 중심부, 공장이 즐비한 지역에 있었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와 기계 소리가 이곳의 배경음을 이루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빠르게 어른이 되어갔다. 이곳은 다소 삭막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동시에 삶의 활기가 넘쳤다. 굴뚝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조차 그들에게는 익숙한 삶의 일부였다.
세 번째 고아원은 바다 가까운 마을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부들이 매일 아침 출항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이곳의 아이들은 소금기 머금은 바람 속에서 자유롭고 강인하게 자라났다. 바다와 바람, 그리고 파도 소리가 그들의 일상을 감싸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바다의 일부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세 고아원은 각각 다른 배경 속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키워나갔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며 성장해 갔다.
첫 번째 고아원은 마을 언덕 위, 나무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학교 싸움 서열 1위인 병준이의 집이었고, 주로 꼬마들이 많았다. 고아원의 풍경은 평화롭고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삶의 무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무 그늘 속에서 낡은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고, 그들의 발걸음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가벼웠다.
두 번째 고아원은 마을 중심의 오래된 성당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공장 소음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거친 환경 속에서도 무언가에 적응해 가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종종 고아원의 벽돌을 쓰다듬으며, 그 벽돌이 자신들과 함께 자라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벽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묵직한 시간의 흐름이 뒤섞이며, 그곳의 분위기는 어딘가 고요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쳤다.
세 번째 고아원은 바다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 아이들은 언제나 먼바다를 바라보며 모험을 꿈꿨다. 파도 소리와 함께 자란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만의 자유를 찾아 나서기를 갈망했다. 고아원의 울타리 너머로 퍼지는 바람은 그들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았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나며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었다.
세 고아원은 각기 다른 색을 지닌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고요한 숲, 시간의 중력, 바다의 자유가 각각의 고아원에서 살아 숨 쉬었다. 그 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색을 찾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1980년 초반, 20년 넘게 대통령 자리를 지키던 군인이 죽고, 또 다른 군인이 대통령이 되었다. 대머리인 그는 아시아 순방을 다니며 경제개발을 강조했고, 매일 저녁 9시면 대통령의 동정을 전하는 뉴스가 어김없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다.
고아원 아이들은 어른들보다도 일찍 철이 들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그들의 하루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헤치며 시작되었다. 작은 손들로 감당해야 할 일은 그들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책임이었다. 아이들은 벽돌을 나르고, 잡초를 뽑고, 먼지로 뒤덮인 창문을 닦았다. 노동의 무게에 짓눌렸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이미 체념과 익숙함이 스며 있었다. 그들의 삶은 마치 세상으로부터 잊힌 것처럼, 바깥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오늘도 벽돌을 나르겠지?" 한 아이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어제보단 덜 하겠지, 아마도." 다른 아이가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말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담담한 한숨에 가까웠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낡고 먼지 묻은 옷을 털어내고, 밥그릇을 들고 조용히 줄을 섰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수제비 한 그릇이었다. 몇 조각의 감자가 떠다니는 맑은 국물 속에, 밀가루 반죽 덩어리들이 둥둥 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은 마치 찬바람을 막아줄 것 없는 얇은 옷처럼, 허기진 아이들의 속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다. 국물 한 숟갈을 떠먹을 때마다, 차가운 허기만이 그들 가슴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들의 식사는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나 볼 법한 장면 같았다. 희망을 갈구하지만, 마주하는 것은 고된 노동 뒤에 겨우 받아 드는 밋밋한 수제비 한 그릇뿐이었다.
"오늘도 수제비네..." 한 아이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매일이 수제비야. 변할 건 없잖아." 다른 아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에는 쓸쓸한 체념이 가득 배어 있었다. 누구도 큰 소리로 불평하지 않았고, 누구도 울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수저를 들어 올리며, 그들이 받은 그릇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이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국물을 후루룩 들이마셨지만, 얇은 수제비는 금세 허기 속으로 사라졌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얼어붙은 듯했다. 식사 시간은 그들에게 하루 중 유일한 휴식 시간일 터였지만, 그조차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들의 일상은 고된 노동과 빈약한 식사로 점철된 지루한 반복이었다.
"우린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몰라... 아마 이게 우리 몫인 거겠지." 다른 아이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이들 사이에는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는 차가운 현실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고된 삶 속에서 비애는 쌓여갔고, 그 비애는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 가슴속 깊이 자리 잡았다. 비애는 떠나지 못한 그림자처럼, 그들의 말 없는 표정에 드리워져 있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반장은 자주 고아원에 들렀다.
반장은 특별한 존재였지만, 특별함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과 어울려 그들의 일상을 함께했고, 아침이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고된 일을 나섰다. 작은 손으로 벽돌을 나르고 잡초를 뽑으며, 그가 하는 일에는 언제나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여유는 결코 거만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같이 하자, " 반장은 옆에 있던 아이에게 벽돌을 들며 말했다.
"반장까지 할 필요 없어, " 아이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나 반장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같이 해야 더 빨리 끝나지."
그의 한마디는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학교에서 반장이 보여주는 권위와는 달리,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의 짐을 함께 나누는 동료였다. 노역이 끝난 후의 식사 시간에도, 반장은 아이들과 함께 줄을 서서 수제비를 받았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얇은 국물 속 밀가루 반죽을 떠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아이들은 그 옆에 앉아 수저를 들며, 반장과의 식사 시간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수제비 맛있어?" 한 아이가 반장에게 물었다.
"뭐, 나쁘지 않아. 다음에는 좀 더 맛있을지도 몰라, " 반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아이들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반장의 긍정적인 태도는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작은 불씨처럼 자리 잡았다.
놀이는 반장도 가장 즐겨하던 시간이었다. 일과 식사 후 짧은 놀이 시간 동안, 반장은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고 술래잡기를 했다. 그의 웃음소리는 메마른 아이들의 마음에 촉촉한 단비 같았다. 아이들은 반장과 함께 뛰노는 순간만큼은 고된 현실을 잠시 잊고, 진정한 웃음을 되찾았다.
"넌 어떻게 이렇게 잘 뛰어?" 한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너희들이랑 뛰니까 더 재미있어서 그런가 봐, " 반장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반장은 특별했지만, 아이들처럼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뛰었다. 그래서 고아원 아이들은 반장을 따랐고, 그의 존재는 그들에게 작은 휴식과도 같았다. 반장은 그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 언제나 빛나는 친구였다.
반장이 고아원에 오는 날은 아이들에게 축제 같은 날이었다. 평소 지쳐있던 아이들도 반장이 온다는 소식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오늘 반장 온대!" 한 아이가 소리치면, 다른 아이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오면, 고아원의 무거운 공기는 가벼워지고,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작은 희망이 싹텄다.
"반장 왔어?" 한 아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곧 도착한대. 아주머니들도 수제비 더 많이 준비하고 있어!" 다른 아이가 답했다.
그 말에 아이들은 더욱 들떴다. 평소엔 얇은 국물에 몇 조각의 수제비로 허기를 달래야 했지만, 반장이 오는 날은 달랐다. 고아원의 식당 아주머니들도 반장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수제비 듬뿍 퍼줄게. 반장이 오는 날이니까 말이야, "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여 답했지만, 눈은 이미 주방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반장이 오는 날은 그들에게 축제의 날이었다. 그날만큼은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수제비 그릇이 한 번 더 채워질 때마다, 아이들은 허기와 함께 마음속 빈자리도 채워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모두 그와 함께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은 미소 지으며 아이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고 함께 뛰었다. 그의 웃음은 마치 어두운 구름을 걷어내는 따뜻한 햇살 같았다.
반장이 움직이면 학교 전체가, 아니 마을 전체가 움직였다.
강동초등학교의 부잣집 아이들마저도 반장을 따라 고아원에 놀러 오고 싶어 했다. 평소에 고아원에 관심이 없던 그들도 반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어 했다. 그들과 반장과의 시간은 그들에게도 특권처럼 느껴졌다.
"우리도 고아원에 갈 수 있을까?" 부잣집 아이들이 반장에게 물었다.
"물론이지. 언제든 와도 돼. 같이 놀면 더 재미있을 거야, " 반장은 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 부잣집 아이들은 안도했고, 고아원에 가는 일이 그들에게는 작은 모험처럼 느껴졌다.
가끔 부잣집 부모들은 아이들을 통해 간식을 보내왔다. 초코파이, 우유 같은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간식들이 고아원으로 들어오면, 아이들은 수제비로 채운 배 뒤에 또 한 번의 기쁨을 맛봤다.
"우와! 초코파이다!" 아이들이 환호했다.
작은 초코파이 하나가 그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한 기쁨이었다. 달콤한 초콜릿 맛은 그들의 고된 하루 속에 잠시나마 행복을 선사했다.
"반장 덕분이야. 이런 건 평소엔 먹기 힘들잖아, " 한 아이가 천천히 초코파이를 먹으며 말했다.
"같이 나눠 먹으면 더 맛있지 않겠어?" 반장은 초코파이를 나누며 말했다.
그날 고아원은 그 어느 날보다 따뜻했다. 반장이 오는 날이면 고아원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행복과 놀이의 공간이 되었다. 수제비도, 놀이도, 간식도 풍성했고, 아이들은 마음껏 웃으며 행복해 보였다. 반장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그의 존재는 그들의 어두운 일상에 잠시나마 밝은 빛을 비추어 주었다.
현주와 반장 3.
현주는 반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6학년 때, 익숙한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 어른이 된 그를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눈빛 속에서 그동안의 이야기가 말없이 오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 사이에 높게 쌓였던 벽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넌 정말 많이 변했어, " 현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예전엔 이런 말 절대 안 했었잖아."
반장은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은 변하는 거니까. 그리고 넌 어때? 훨씬 강해진 것 같아."
현주는 그의 말을 듣고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강해지려고 노력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버틸 수 없었을 거야."
둘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해운대의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그들의 마음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은 따뜻하게 길을 비추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그들의 침묵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서울에서 생활은 어때?" 현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반장은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 "바쁘게 지냈지.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다른 생각할 틈이 없었어. 근데 가끔 네 생각이 나더라. 국민학교 때 네 모습이 계속 떠오르곤 했어."
현주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그녀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안경테 공장이 부도났던 날, 그녀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울음을 터뜨렸고, 반장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봐 주었다.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깊이 남아 있었다.
"나도 그날 기억해.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어... 그냥 모든 게 끝날 것 같아서 무서웠던 것 같아, " 현주가 조용히 말했다.
"우린 다시 만났잖아, " 반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날이 끝이 아니었어."
현주는 그의 말을 듣고 작은 미소를 지었다. 반장의 말처럼, 그들은 이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래, 끝이 아니었어, " 현주가 힘주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전보다 더 단단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둘은 해안가로 내려가 파도가 닿는 곳에 섰다. 달빛이 은은하게 바다 위를 비추는 가운데, 현주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상상했다. 과거는 복잡하고 아팠지만, 이제 그들은 함께 과거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반장이 물었다.
현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선택할 거야. 더 이상 과거에 묶이지 않고."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결심을 이해했다. "응원할게. 언제든 네 곁에 있을 테니까."
그 순간, 현주는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천천히 열리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 곁에 반장이 있었고, 그들은 미래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마워, " 현주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처럼 부드럽고 평온했다.
그날 밤, 해운대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두 사람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따뜻함을 되찾았다. 과거의 아픔을 넘어, 새로운 시작을 함께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