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독서모임

함께 이야기하고 온기를 나누다.

by 연어사리

구례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하던 날, 첫 번째 결정한 것은 주기적으로 만남이 있는 모임 활동이었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꾸준히 나갈 수 있는 모임이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나고 보니 친목 모임을 진행해오다가 멈춘 이유가 앞으로 그 지역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목적이 사라졌을 때였다. 불안함은 모임을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예쁜 꽃나무를 사 왔는데 심은지 얼마 안 됐거나 뿌리가 깊지 않다면 꽃나무의 건강은 장담하기 어렵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가 삶의 안정성을 만들어 준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가 반대의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마치 꽃나무의 뿌리처럼, 튼튼하고 안정된 관계를 만들어 준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게 하거나 떠날 이유를 잊게 만든다.


이전에 살았던 창원은 그런 곳이었다.

떠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결혼 전에는 잘 몰랐지만 가족은 언제나 삶의 우선순위였던 것 같다.

나의 삶에 있어 뿌리 같은 취미가 독서였다.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이었지만 글과 종이가 좋아서 꾸준히 해왔다. 손에 닿는 표지의 딱딱함이나 낡은 종이에서 나는 냄새들, 새책의 냄새와 보관된 책의 냄새는 달랐지만 먼지 낀 그 냄새들은 늘 설레게 했다. 언제든 참여할 수 있는 꾸준함이 목적이라면 책과 관련된 것이 좋았다.

어떤 모임이든 정 붙일 것이 없다면 어떻게 정기적으로 참여하겠는가?


때마침, 구례에 대형 헌책방이 생겼다.

호기심에 방문했더니 정기적인 독서회가 진행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인원이 마감되었다고 했다.

아쉽지만 돌아서려 할 때,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후순위라도 넣어놔요."


startup-594090_1280.jpg StartupStockPhotos, 출처 Pixabay

후순위에 제일 마지막 참여자였던 나는, 현재까지도 열심히 출석 중이다. 심지어 모임을 이끄는 발제자로도 자주 참여하고 책방의 고객이자 1층부터 3층까지 책장 구석구석 변화도 꽤 잘 알아채는 한 명이 되었다.


어쩌다 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날이면, 사장님의 전화가 오기도 한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독서회 일이 아닌 다른 용무 일 때 사장님께선 굉장히 미안한 듯 말씀을 건네 온다.

"바빠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여기, 안 바쁠 때 좀 들러주세요."


헌책방 사장님 부부는 부모님과 비슷한 연령대다. 좀 편하게 말씀하셔도 될 거 같지만 항상 존칭으로 대해주신다. 가끔, 아주 다급해지면 사장님께서 의도치 않는 편한 말투가 나온다. 그 역시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 다급 함이라는 것이 대부분 스마트기기에 관련한 것이다. 노트북으로 하는 문서작성이나 프린터와 관련된 것이거나 QR코드 체크하는 스마트기기.

다른 것은 다 알아서 하실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것들은 손끝에 가시처럼 불편하게 하신단다.

그래서 다급 해지나 보다.


본인의 어려움을 해결해 드리고 나면 응당 꼭 사례를 해주신다. 예정에 없던 출장이다.

"이거 받으려고 한 게 아닌데요."

"받아요. 받아야 다음에도 부탁하지."

거절할라치면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주머니에 넣어 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맛있는 간식을 한 아름 안겨주신다. 서로 부담되지 않는 선이 좋다. 처음에는 받아야 하나? 받을까? 지금은 주시면 감사합니다. 대신 언제든 서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헌책방은 구례로 이사온지 3년 차, 동네분들은 거의 다 알아도 스마트기기 잘 다루는 젊은 친구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급해지면 멀리 있는 자녀분들보다 가까운 내게 전화하신단다.

물론 내가 스마트기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기에 믿고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시간이 남는 때, 작업실과 집 중간 어딘가에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서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섬진강 옆에 자리 잡은 책방으로 간다.

커피 한잔 마신다. 해 질 무렵이면 책방은 한가해진다.

한가해진 사장님과 사모님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한가했나 보네."

"네. 마침 시간이 났어요."

"별일은 없지?"


커피는 늘 맛있다.

커피보다 더 맛있는 것은 온기가 가득한 만남이다.

구례를 떠날 수 있을까?

섬진강을 떠날 수 있을까?

헌책방이 멀어지면 좋을까?

구례를 떠날 수도 있고 섬진강을 떠날 수도 있다. 헌책방과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온기 가득한 시간을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헌책방은 혼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책 좋아하는 친구가 오면 같이 가기도 하는 곳입니다.

헌책방은 참새 방앗간이 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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