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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by 송광용

첫째 앤은 치과에 트라우마가 있었다. 어릴 적에 넘어져서 앞니 하나가 반토막 난적 있었다. 어린이 전문 치과에 갔던 게 화근이었다. 그곳에 들어서니, 과연 어린이 전문이라고 홍보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놀이방이며,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아이 친화적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의료진은 전혀 아이 친화적이 아니었다. 자지러지는 아이를 붙잡고 억지로 치료를 했다. 그 후로 아이가 치과에 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 후에야,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로 아이를 안심시키는 결이 다른 의사와 간호사를 만난 후에야, 그 어린이 전문 치과는 하드웨어만 아이 친화적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첫 치과에 대한 무서운 기억 때문에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아이는 간단한 검진이나 치료를 받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래서 이가 아프다고 할 때까진 굳이 치과에 가지 말자고 맘먹었다.


최근에 학생검진 때문에 동네의 한 치과를 찾았다. 단순한 검진이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두려움이 깃든 눈빛으로 진짜 검사만 하는 거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았다. 오랜만의 치과 방문이라 그런지 치료할 게 좀 있었다. 유치 뿌리가 남아서 영구치가 자리 잡는 걸 방해하는 상황 때문에 세 개쯤 뽑아야 했다. 나는 온 김에 치료하고 가자고 했지만, 아이는 치료대에서 글썽이며, 안 할래, 하며 고개를 저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간호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왜 치료를 해야 하는지 같이 한번 볼까? 하며, 아이에게 거울을 주고, 작은 반사경으로 유치의 뿌리를 비춰주었다. "저거 보이지? 저거 때문에 새 이가 나올 때 모양이 이상하게 날 수 있어. 치료해야겠지?"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냥 밀어붙이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차근차근 아이를 설득하시는 간호사 선생님의 노력 덕에 아이는 치료를 받아들였고, 무사히 치료를 끝냈다.


한 번 느꼈다.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자라왔고, 많은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이다. 치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담담하게 치료를 받은 아이는, 인형 뽑기를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기쁜 마음으로 2천 원어치 인형 뽑기를 시켜줬고, 인형까지 하나 뽑아서 꽤 기분 좋은 날이 되었다.


동네에 치과가 여러 개라, 어딜 가야 할지 고민스러웠는데, 오늘로 단골(이 될지 모르는) 치과가 생겼다. 단골 미용실을 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치과 찾기가 이루어져서 속이 시원하다. 좋은 치과를 찾는 일이 단골 미용실을 정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했지만, 사실 더 어려운 건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최근에 읽은, 미야모토 테루의 에세이 <그냥 믿어주는 일>에는 테루가 정신과 의사와 한 대화가 나온다.


"어떻게 하면 점점 늘어나는 마음의 병을 없앨 수 있을까요?"
다카야마 씨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다정해지면 돼요."


많은 치유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아이의 일을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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