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드디어 결실을 맺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자. '
애경이는 곧 있을 지바세계선수권대회 선발전에 온 기운을 모은다.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 대회 전부터 북한과 같이한다 아니다 소문이 무성하지만, 애경이에게는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선발전에서 발탁이 되는 것이다. 실업팀에 들어오니 새삼 엄청난 선수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수들도 결정적인 한두 점에 따라 승패를 가르는 게 탁구이고 스포츠이다.
앗차하는 순간, 작은 공에 호흡만 잘못 실어도 대표단 선발에서 떨어질 수 있다. 고작 한 점으로 공 들인 댐을 무너뜨리면 안된다. 작은 실수도 해서는 안된다. 뻔한 소리지만, 결국 이기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연습으로 기계처럼 반사적으로 정확한 스윙이 나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 더, 경기 중에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한땀 한땀 정성껏 점수를 채워야 한다.
그렇게 한땀 한땀 한 점씩 땋아 낙타를 홀쭉하게 만들어 그 힘들다는 3차 선발전까지 치르고 드디어 통과, 최종 선발이 되었다. 분명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성인이 되자마자 국가대표에 그것도 세계 선수권대회 대표로 선발이 되다니, 기분이 째졌다.
내친김에 선발 출전에도 욕심을 품고 대표단 합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남북 단일팀의 소문을 설마 했는데 스물두 번이나 남북 회담을 하더니 결국 단일팀으로 확정되어 버렸다. 실향민들은 눈물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선발 출전은 실업 4년 차 한국을 대표하는 선배 선수 둘은 이미 확정이었기에 애경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47일간 합숙훈련에 돌입했다.
살갑게 대해주는 북한 선수들과 친분을 쌓으며 다시없을 추억을 남겼다. 혼복 파트너는 애경이처럼 수다스럽진 않았지만 같이하는 복식호흡도 센스 있게 잘 맞춰 주었다.
국민학교 4학년때였던가, 지대범 외할머니가 티브이에서 '이산가족 찾기' 프로만 보면 실신을 할 정도로 우신다며 평안도 어디에서 넘어오신 외할머니는 동네에서 소문난 수재였다고 했다. 어른들은 뭐 하나만 더 달고 나왔으면 큰 인물이 되었을 거라고 했다던 할머니의 성씨가 특이하게 계씨라고 했던가, 당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남의 집 살이하던 할아버지를 만나, 약쟁이 동네 최고의 약재상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셨다.
빚진 홍삼을 대신해서 소고기를 실컷 먹여주고 싶은데, 지대범은 두 번째 고백이 후 연락이 없다. 그냥 문득 지대범이 생각이 났었다.
" 어땠노? 진짜 같이 훈련하고 같이 밥도 묵고 그랬나? "
" 응, 그럴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다. "
오래간만에 보는 이진이는 옆에 딱 달라붙어 궁금한 게 뭐가 그리도 많은지 계속 조잘댄다.
" 혼복 했던 선수는 어땠는데? 잘해주더나? 뭐라고 서로 불렀는데? 동무? 갔나이동무? 아주바이? 아님 애경 씨? "
" 웃기지 좀 마라. 그냥 이름 불렀다. 사람 다 똑같다. 별거 없었다. "
지바대회를 다녀온 애경은 장기간의 합숙으로 쌓인 짐을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에서는 뭔 로맨스 스토리라도 듣고 싶은 모양이다. 매스컴에서 떠들어댔던 남북의 사랑 어쩌고 저쩌고를 기대하는것 같은데, 연애세포가 태어날 때부터 형성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진이가 잠시 잊고 있었는 모양이다. 지대범이 애경이를 못 잊고 지대순으로 펜팔에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경주고등학교로 유학까지 왔을 때도 애경이는 좋다 싫다 말도 없이 절인 홍삼만 받아 씹었고, 그 긴 세월 지대범의 짝사랑은 중국 유학으로 끝이 났다. 애경이가 뭐라고 했길래 그 후 지대범의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애경이의 연애세포는 운동신경에게 모두 먹혀 버린 게 분명하다.
이진이는 장터에 나온 할매처럼 몇 개나 되는 가방에서 이것저것 뒤져본다. 그중 혼복 파트너가 줬다는 작은 선물도 있었다. 이진이는 뭔가 단서가 될만한 의미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저 흔한 기념품 같은 게 사랑의 필~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애경이는 생뚱맞게 야구선수들이 코와 눈 밑에 붙이는 까만색 테이프를 이진이 얼굴과 자기 얼굴에 하나씩 붙이고는 낄낄댔다.
" 선물 살만한 게 없더라. 사실 정신도 없었고, 여기 유니폼 중에 마음에 드는 거 한 개 골라 입어라. "
스몰 사이즈의 남북 단일팀 유니폼이 앙증맞은 게 애경이가 입고 결승전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 유니폼은 됐고! 목욕탕이나 가자. "
" 그래. "
.
애경은 지바 남북 단일팀 선수에 선발되는 엄청난 가문의 영광을 누렸지만 결국 벤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씁쓸한 이인자는 싫다. 스무 살 인생 이제부터 휠휠 날기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연희동 숙소에서 이진이와 목욕 가방 하나씩 들고 슬리퍼 질질 끌며 오래간만에 여유롭게 목욕탕 쪽으로 걸어간다.
조용한 부자동네에 스멀스멀 매캐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다시 마당에 잔디가 깔려있고 지상 이층에 지하 바까지 있는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저 멀리 대로변에서 대학생 시위대를 쫓는 체류탄 탱크족들이 구름 때처럼 몰려 가는 게 보인다. 익숙한 풍경이다. 숙소 근처에 전두환이 산다는데 사복 경찰만 2인 1조로 방범아저씨처럼 돌아다니고 이 동네 골목길에는 걸어 다니는 개도 없다.
박애경은 연말에 열리는 국내 마지막 경기인 탁구최강전에 유규남선배가 혼합복식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애경이의 빠르게 치고 빠지는 속사포 플레이를 유선배가 드디어 알아본 것이다. 애경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왼손잡이 기교꾼 유선배와 빠른 전진속공형 애경의 혼합복식은 환상적인 플레이로 당연히 94년 마지막 경이를 우승으로 마무리 지었다.
박애경은 일 년 중 이진이와 같이 팀에 머무르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감히 이진이가 따라잡을 수도 없을 만큼 저 높이 날아가는 친구에게 이진이는 여전히 죽을 것 같다고 징징댈 수가 없었다. 그날도 성남에 위치한 상무에서 연습 후 퇴근길 꽉 막힌 한강다리 위에 갇혀 누군가가 건네준 칼핀터스의 음악을 들으며 유혹에 빠졌다.
' 지금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면 한방에 죽지 않을까. ‘
비겁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라디오에서는 성수대교가 무너져 학생들이 탄 버스가 침몰했다는 비보를 하루종일 알리고 있었다.
박애경은 지바세계선수권대회 이후 4년 만에 다시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이번에는 주전 선수로 활약을 펼쳤다. 중국 텐진에서 열린 95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강국 홍콩을 3대 0으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는 세계랭킹 1위 덩야핑이 있는 중국과 만났다. 정말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3대 0으로 지고 말았다. 그래도 4년 전 다짐했던 꿈을 이루었다.
실업팀 창단이래 박애경 같은 선수를 영접해 본 적 없었던 회사는 흥분한 나머지 애경이를 특진을 시켜버렸다. 애경이는 드디어 날고 있는 자신이 대견했다. 이런 딸이 아빠는 고마워 그저 눈물만 흘렸고, 엄마는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사실 팀에는 박애경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서운 학교 후배 김미교도 같이 날고 있었다. 신이 난 회사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맞춰 유럽 몇 개국을 도는 오픈 대회에 팀 선수들을 보냈다.
입단하기 전부터 이진이를 러시아 3개월 단독 전지훈련을 보낼거라고 큰소리쳤던 감독의 습관적인 거짓말 이후 진짜 노랑머리 외국인 선수와 경기를 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살짝 설렜다. 하지만 감독이 경기장에만 나타나면 경기 집중력이 흩어지면서 예전의 고진순처럼 달달 떠는 이상한 트라우마가 생긴 이진이가 남자선수들만큼이나 파워가 센 유럽선수들 공을 수비로 받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런 이진이의 퇴보하는 경기력을 감독은 병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이진이의 트라우마 증세를 가증 시키고 있었다.
12월 드디어 올림픽 선수단처럼 단체로 양장으로 된 정장을 입고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상제리제 밤거리는 촌년 이진이를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파리에서 헬싱키로 날아가는 에어아프리카 기내 좌석에는 담배 구멍자국이 군데군데 있었고, 승무원들은 콜라병을 들고 있었던 영화 부시맨을 닮았었다. 도착한 겨울 스웨덴은 스산한 날씨에 어울리게 군데군데 십자가 묘지들이 묘하게 어울렸다. 애경이는 국가대표단에서 출전하는 잦은 해외경기로 유럽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이진이는 고교시절 한일교류로 갔었던 이웃나라가 일본이 해외경험의 전부인지라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기했다. 경기장에 공짜로 주는 스파클링 워터를 겁 없이 들이켰다가 경기 도중 켁켁대며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난리를 치기도 했다.
헬싱키에서 열린 오픈대회는 유럽에서 랭킹이 높은 선수들이 많이 참가했다. 이진이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분위기에 취해 남자선수처럼 파워풀하게 걸어 제끼는 유럽선수의 드라이브를 사정없이 깎아대고 보니 세계랭킹 12위를 이긴 것이었다. 얼떨결에 개인전 8강에 오른 이진이는 애경이와 맞닥뜨리는 불운으로 더는 올라가지 못했고, 복식 또한 16강에서 또 박애경, 김미교 조를 만나 그 둘의 몸풀기 연습용으로 가볍게 끝이 났다. 그래도 생에 첫 국제무대에서 랭킹이 높은 선수를 이긴 덕분에 이진이는 세계랭킹이 56위까지 한방에 올라가 봤다. 그걸로 만족한다. 여전히 언제 이 지긋지긋한 탁구를 관둘지 기회만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박애경은 여전히 바빴다. 다음 해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으로 합숙에 출전에 또다시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어릴 때부터 목표로 삼았던 꿈이 하나씩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마를 새 없이 대바늘로 뚫어 실을 끼워 넣고 운동하면서 굳어진 살이 증명한다. 애경이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괜찮던 손목이 다시 말썽이다.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손목을 너무 많이 활용해 온 것이 자꾸 탈이 나고 있다. 비가 오려나 또 손목이 시큰거린다.
이진이에게 힘내라고 칼핀더스의 CD를 사줬던 국군 상무소속의 선수는 며칠 뒤 휴가를 나오 던 날 부대 앞 뺑소니에 치여 칼핀터스처럼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