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공간이야기
오늘 소개드릴 장소는 '더 현대 서울'입니다.
현대백화점이 코로나19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이때, 그 지점은 아니지만 관련된 글을 쓴다는 게 좀... 그렇지만, 5월부터 임시 저장 중인 가장 최근 글이라, 순서대로 완결 짓겠다는 일념으로 써 내려갑니다.
이곳엔 <앤디 워홀> 전시를 보러 갔었는데, 전시 대신 신박한 공간 건축과 내부 구성에 반했었죠. 올해 2월 오픈 당시, 코로나로 사회 전체가 엄중한 상황이었음에도 이곳만은 엄청 붐볐었단 보도가 있었는데, 보고 오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갑니다. 단순한 쇼핑센터가 아닌, 동시대인들이 원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적절하게 조합해 둔 곳으로, 워낙 크고 넓어서 꼼꼼하게 다 돌아보진 못했어요.
지하철역을 나와 아파트 사이 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유독 한 건물이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딱 떨어진 독립 개체로서의 건축물이 아니라서, 사전 정보가 없다면 '설마, 저게 백화점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요. 워낙 규모가 커서 카메라나 눈으로는 한 번에 다 담아내기 어려울뿐더러 한 바퀴 둘러봐야지 싶다가도 몇 걸음 가다 금세 포기하게 되는 크기랄까. 형태가 일률적인 건축물들 사이에 있어 더 눈에 띄기도 하지만, 외관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젊고 모던하고 거칠어서 더 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찬찬히 보다 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 한두 개가 겹쳐 보이는데, 바로 '더 현대 서울'의 건축가가 프랑스 대표 아이콘인 '퐁피두 센터' 설계에 참여한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1933-)이기 때문이죠. ( 반전은 리처드가 초기 단계에만 참여하고 손을 떼서 현재 완공된 건물 디자인과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 참고로 더 현대 서울은 영국의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모노클』 선정한 ‘2020~2021년 디자인 어워드 톱 50’에서 '최고의 리테일 디자인' 상을 수상했어요.
리처드 로저스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생의 영국 건축가입니다. 리처드 출생 당시 그의 아버지는 의대생으로, 영국인 치과 의사인 할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로 옮겨왔어요. 그의 어머니는 이탈리아 항구도시인 트리에스테 Trieste 출신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보험회사 임원직을 맡기 위해 공부하던 건축과 공학을 포기한 이력이 있죠. 리처드 아버지의 사촌인 에르네스토 로저스 Ernesto N. Rogers(1900-1969)는 저명한 이탈리안 건축가로 주요 건축 잡지인 『 Domus 』 와 『 Casabella 』의 객원 편집자 contributing editor를 역임했고요. 그런 영향 때문인지 리처드의 엄마 역시 모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아들에게 시각 예술에 대한 관심을 많이 심어 주었다고 합니다. 유전자가 주는 힘이 있는 거겠죠? 아티스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리처드는 이후 영국 AA 스쿨과 미국 예일대학, 영국 왕립 건축연구소에서 수련했고, 1971년 렌초 피아노 Renzo Piano(1937-) 등과 함께 퐁피두센터 현상설계에 당선, 이를 완성시킴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2007년엔 프리츠커 아키텍처 Pritzker Architecture로도 선정되었고요.
1998년 그는 영국 정부 초청으로 쇠락해가는 도시 부흥과 안전, 활동, 미관 문제 해결을 주된 목표로 한 도시 설계 태스크포스를 설립했고, 결과물로 도시설계 백서 《도시 르네상스를 향하여》(Towards an Urban Renaissance)를 출판합니다. 이 책에는 미래의 도시 설계가를 위한 100가지 제안도 실려있어, 도시 설계나 디자인 계획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됩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진 런던 시 정부 수석 도시건축가를, 바르셀로나에서도 두 차례나 수석 도시건축 자문 위원으로 일했어요. 제가 언급한 것 외에도 이력과 수상 경력은 정말 화려합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퐁피두센터 Centre Pompidou( Paris, 1971), 로이즈 오브 런던 Lloyd's of London( London, 1978), 인모스 마이크로 프로세서 공장 Inmos Microprocessor Factory(Newport, 1982), 유럽 인권 법원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Strasbourg, 1989), 밀레니엄 돔 New Millennium Experience( London, 1996) 그리고 파크원 Parc1 (Seoul, 2020) 등이 있어요. 모두 당시에는 생소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디자인이었으나 지금은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건축들이죠. 2020년 완공된 서울 여의도의 파크원도 파격적 색상으로 온라인상에서 많은 화제와 논란을 낳았는데, 모두 서양의 요소를 가져와 구현된 것처럼 보여도 건물 하중을 견디는 모서리의 철제 구조물을 외부에 그대로 노출시킨 것은 한옥의 기둥을 형상화했고, 외부로 드러난 붉은 골조는 단청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천루가 즐비한 여의도에서도 단연 눈에 쏙 들어오는 건축물입니다.
'더 현대 서울'은 'Parc1(파크원)'이라는 전체 건축군의 일부입니다. 파크원은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 및 한국 최초 개관한 Fairmont Ambassador Seoul Hotel, 오피스로 사용하는 2개의 타워가 어우러진 복합 문화시설이죠. 그중 백화점은 193.935㎥(58.666평)으로 약 600여 개의 매장이 차지하고 있는 영업면적이 89.100㎡입니다. 서울에서 규모가 가장 크지만 실제 영업 가능한 면적은 49%로 현대백화점 15개 점포의 평균 영업면적(65%)보다도 30%가량 작아요. 서울에 있는 백화점 1평 매출이 연간 1억 원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백화점 업계에선 '공간=매출'이란 공식이 있다는데, 이 공식을 깨고 6,611m²(2,000평)을 매장이 아닌 고객 휴게 공간으로 제시했죠. 수도권 최대 규모인 현대백화점 판교점보다 넓지만 매장 수도 300개 이상 적고요. 또 백화점 공간의 불문율, ‘창문과 시계가 없다’는 공식도 과감히 깨버린 곳입니다.
리처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외에도 사회적 맥락을 설계에 투영한 여러 건축가들의 작품을 모본 삼아 자신만의 특징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건축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을 꼽자면, 밖으로 드러난 내장 설비(수도, 단열, 환기 설비 및 에스컬레이터 계단 등)인데요, 불필요한 설비를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비워진 내부는 방문객들에게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하는 효과를 가져오죠. 퐁피두 센터가 그 특징을 잘 구현한 첫 작품이고요. 예술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자기 복제는 필연이기에, 리처드가 설계한 주요 건축들 역시 닮음과 다름이 오묘하게 공존하고 있어요. 자기 복제... 란 말보다는 자신만의 브랜드나 시그니처를 확립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네요. 위에 첨부된 건축물 사진을 보고 파크원을 보면 그의 특징들이 두루두루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설계한 건물들의 건축적 특징을 잘 압축했다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여요.
더 현대 서울의 내부는 더 화려합니다. 12m 높이의 인공 폭포가 있는 740㎡의 '워터풀 가든 Waterfall Garden'과 30여 그루의 나무숲 사이로 걸을 수 있는 3300㎡의 실내 녹색 공원 '사운즈 포레스트 Sounds Forest'가 있고, 유리 천장을 통해 전 층에 자연 채광이 들어옵니다. 5~6층의 작은 숲 '사운즈 포레스트'는 유럽의 큰 광장 옆 온실, 그 주위 카페에서 시민들이 식물을 보며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해 만든 공간으로, 새소리, 낮은 음악소리, 초록 식물들을 맘껏 즐기며 쉬어갈 수 있어 아주 좋아요. 게다가 1층부터 천장까지 건물 전체를 개방하는 ‘보이드 void’ 건축 기법으로, 수평이나 수직적인 구조물에 가려지지 않은 오픈 스페이스가 완성되었어요. 치밀하게 계산된 '보이드(빈) 공간'인 거죠. 원래의 건축 면적도 넓긴 하지만 그렇게 매장 면적을 줄이고 고객 (휴식) 공간을 늘린 결과, '더 현대 서울'은 가장 현대적인 공원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자연친화적인. 어디서든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녹색의 자연을 만나게 되거든요.
더 현대 서울의 설계에는 리처드 로저스 외에도 캐나다 인테리어 전문 회사 버디필렉과 영국 글로벌 설계사 CMK 등 9곳이 참여했어요. 그래서 색다른 아이디어들이 층마다 뒤섞여있죠. 1층 디자인은 전 세계 셀린느 매장 디자인을 담당한 런던 건축사무소 CMK의 디렉터 마리안느 뮐러 Marianne Mueller & 올라프 니어 Olaf Kneer가, 전 층 아우터 존은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 디자인에 참여한 미국 건축사무소 CALLISON RTKL의 바이스 프레지던트 케빈 혼 Kevin Horn이, 6층 다이닝 존&지하 1층 테이스티 서울의 인테리어는 일본 신주쿠 역사 인테리어를 담당한 건축사무소 사나토 SINATO의 치카라 오노 Chikara Ohno가 맡았어요. 1층 워터폴 가든 Waterfall Garden은 고급 백화점의 인테리어를 수차례 맡은 캐나다의 세계적 디자인 회사 버디필렉 Burdifilek의 솜씨입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그들은 건축물을 그림이나 조각같이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그러면서 휴식과 동시에 문화가 향유되는 공간으로요.
이곳은 여러모로 첫인상이 참 특별합니다. 제가 그 주변에 산다면 아마 매일 갔을 거예요. 그만큼 참 머무르기 최적의 장소입니다. 게다가 ' 무엇을 사야 한다'라는 부담감이 전혀 없는 곳이라, 오히려 '뭐 좀 사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니까요. 곧 이곳 ALT.1 전시장에서 <Beyond the road>라는 이머시브(immersive) 전시가 선보일 예정이라 저는 또 가겠지만, 근처에 살지 않더라도 한 번 정도는 가볼 만합니다.
특히, MZ 세대를 위한 취향 커뮤니티 CH 1985가 있으니 이 세대분들은 꼭 관련 홈페이지를 검색해보세요. 아시나요? 현대백화점은 업계 최초로 압구정 본점에서 문화센터를 시작했다는 사실. 그 해가 1985년입니다. MZ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리뉴얼한 디지털 클래스, 웰니스, 미디어, 쿠킹 등 개방적이면서 소셜라이징이 가능한 일곱 개의 스튜디오 공간과 웰커밍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니 평소 취향과 맞는 게 있다면 ~ 참여해봐도 좋겠죠. 또, 현대백화점의 키즈 브랜드 쁘띠 플래닛 Petit Planet의 콘텐츠 토털 숍인 스튜디오 쁘띠도 있다 하니 아이와 엄마가 함께 찾아도 좋고요.
이외에도 먹거리, 볼거리 등 힙한 요소를 곳곳에 배치되어 보는 즐거움이 아주 많으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가볍게 다녀오세요. 가기 전에 홈페이지 통해서 관람 계획 먼저 세워보시고요~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6/82173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6/82174
https://www.thehyundaiseoul.com/curation/
https://cmk-architects.com/news/marianne-mueller-is-professor-at-stuttgart-state-academy/
https://www.callisonrtkl.com/projects/
http://www.burdifilek.com/what-matters
https://www.centrepompidou.fr/fr/
https://ch1985.co.kr/mobile/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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