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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크기를 키우는 영화《빅》+ 안녕달『눈아이』

예술 이야기

오늘은 2023년 새해 첫날에 본 첫 영화와 책을 소개합니다. 

그냥 다시 보고 싶더라고요. 왜, 시간이 지나도 문득문득 생각나고 보고 싶은 영화나 책이 있잖아요. 요즘은 '인생-'을 붙이는데, 그 말은 너무 끝판왕 같아서 저는 좀 아껴 쓰고 있어요. 대신 '상당히 좋아하는'이라고 말하죠. 오늘 소개할 두 작품이 그래요. 보는 내내 미소 지었고, 흰 종이 위에 새로 쓴 때 묻지 않은 '결심'과 투명한 '동심'을 깨닫게 해 준,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작품들입니다. 

영화 《빅》, 안녕달 『눈아이』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알라딘

톰 행크스(1956~) 주연의 영화 《빅 BIG 》은 1989년 국내 개봉으로, 현재 70을 바라보고 있는 톰 행크스의 파릇파릇한 30대 초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파릇파릇'이란 단어가 식상하긴 하나, 영화를 보면 정말 '젊음이 좋구나~'란 생각과 함께 저 단어가 바로 연상됩니다. 최근에 《타이타닉》 도 재개봉했는데, 지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1974~)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분이 이 영화를 본다면, 정말 깜~짝 놀랄 겁니다. 


톰 행크스의 영화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죠. 히트작이 많지만, 제겐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포레스트 검프>(1994) 그리고 <빅>(1989)이 삼대장입니다. 특히 <포레스트 검프>는 잊을만하면 텔레비전에서 한 번씩 방영하다 보니, 장면들이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나요.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란 대사는, 마음에 새기고 있는 명언 중 하나랍니다.

이미지 출처: https://movie.daum.net/moviedb/main? movieId=2768#photoId=177919

영화《빅》은, 13세 소년 조쉬의 반짝 어른기(記)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예언자 졸타'기계에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빈 소원이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죠. 정신연령은 13세이지만 몸이 30대로 성장한 조쉬에겐 현실적인 문제들이 닥치게 되는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엄마에게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는 신세가 된 게 첫 시련이었죠. 절친 빌리도 처음엔 친구의 변화를 믿지 못했지만 그들만의 정보 확인 방식을 통해 서로를 알아보고, 조력자가 됩니다. 어른의 몸에 적응하기도 전에 생계의 어려움에 빠진 조쉬는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운이 좋게 완구 회사에 들어갑니다. 여기부터 어른이 된 어린이 조쉬의 진가가 발휘되는데, 어른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아이 감성에 초점을 맞춰 기획한 상품들은 대박이 나고, 회사 내에서도 탄탄대로를 걷게 되며 정적도 만들고 여자친구(수잔)도 사귀는 등 성공한 어른의 삶을 살게 되죠. 연인은 함께 할 미래를 꿈꿨지만, 보통 어른의 삶 대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 조쉬. 결국 사실을 털어놓고 처음 어른이 되었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소원을 빌고 어린이 조쉬로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집에 돌아갈 이유는 백만 가지이지만, 이곳에 머무를 이유는 당신 하나"라는 말과 함께. 


"I've been thinking about it, and there's a million reasons for me to go home...

but there's only one reason for me to stay."

"What-What reason is that?"

"Well, you."      

이미지 출처: https://movie.daum.net/moviedb/main? movieId=2768#photoId=177919

청년 조쉬보다 나이가 든 후에 본 이 영화는, 10대의 '저'를 돌아보게 하더라고요. 실수도 많고 어리숙하고 '처음'인 게 많았던 그때, '나도 저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여러 장면에서 생겼고요. 그때의 마음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동경했던 어른이 된 기쁨은 잠시였을 테고, 삶의 고단함은 조금씩 묵직하게 오래 지속된다는 걸, 그때의 조쉬도 알았을 거예요. 

어린 조쉬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놀이 기구를 탈 수 있는 키에 닿지를 못해 결국 관심 있는 소녀와 같이 놀이 기구를 타지 못한 좌절감이었는데, 어른이 되면 또 다른 고민이 첩첩산중이니 그럴 바엔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단단해지는 삶을 택하는 게 현명한 거겠죠, 굳이 건너뛰기하지 말고. 성인이 되면 여러 관계를 경험하게 되면서 말과 행동으로 인한 오해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의도하지 않은. 아이처럼 명확하게 말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면 될 것을, 이런저런 복잡함이 덧붙여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요. 바라보는 방향이 같지만, 어떻게 표현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정말 달라질 수 있는 걸 아는 나이가 되어도 실수는 여전히 반복되고요. 

만약에, 이룰 수 있는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졸타 기계 말고 램프의 지니한테 빌고 싶네요, 소원 개수가 두 개는 더 많으니까.ㅎ

이미지 출처: https://movie.daum.net/moviedb/main? movieId=2768#photoId=177919, 네이버 영화

영화 속엔 인상 깊은 장면도 많습니다. 피아노 건반 위를 뛰어다니며 자신의 보스와 함께 연주하는 장면이 가장 유명하지만, 저는 조쉬와 빌리의 놀이 장면이 좋더라고요. '저렇게 놀아보고 싶다'라는 부러움과 함께, 첫 월급을 탄 후 소소하지만 갖고 싶었던 것들을 잔뜩 사서 즐겼던 그때의 감흥도 살짝 떠올랐고요. 지금은 뭘 해도 마냥 즐겁지도 않고, 잘 노는 방법도 잊어버렸고, 빨리 현실로 돌아와 제자리를 찾아갈 뿐만 아니라, 물건이나 대상에 대한 흥미도 오래가지 못하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가 함께 있고, 나를 아껴주는 연인을 만났고, 어른의 삶에도 익숙해져 갔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되는 조쉬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가끔 그런 질문을 듣잖아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냐'라는.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해요,

"없어요. 지금이 좋습니다. 돌아간다고 더 행복하지도 고생이 줄어들 것 같지도 않거든요. 현재를 충실하게 살래요. " 

이미지 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 ItemId=283286886

『눈아이』(2021)는 이미 베스트셀러라 본 분들이 많으시죠. 작가 안녕달의 최근작인 『겨울이불』, 『눈, 물』과 함께 『수박 수영장』, 『할머니의 여름휴가』, 『왜냐면…』, 『메리』, 『안녕』, 『쓰레기통 요정』, 『당근 유치원』 등도 아는 분들이 많을 테고요. 『눈아이』(2021)는 제가 '상당히 좋아해'서 가까운 곳에 두고 가끔 꺼내봅니다, 겨울이 아니더라도 온기가 필요할 때요. 안녕달의 작품은, 누가 봐도 그 속에 담긴 따뜻함을 느낄 수 있거든요. 또 읽는 동안 책 안에 담긴 비밀을 공유하며 독자와 작가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도 생깁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작가가 된 이유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디자인을 잘 못했어요. 전문 서적을 보러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그림책에 빠졌죠. 졸업 후 일러스트레이터로 근근이 살았지만, 돈을 잘 못 벌어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어요. 그때 한 가정집에서 아이 돌보는 일을 하며 그린 책이 『수박 수영장』이에요”라고 말했는데, 결과적으로 뮤지컬로도 제작된 『수박 수영장』은 26만 5000부, 『할머니의 여름휴가』와 『당근 유치원』은 각각 11만 부가량 판매되어, 작가의 대표작이 되었죠. 호주에서의 경험은 그의 책 곳곳에 녹아들었는데, 『당근 유치원』 속 화가 많은 빨간 토끼는 자신이 돌본 아이가 모델이었고, 버려진 존재들이 모인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 『안녕』에선 일회용 자판기 컵에 자신의 경험을 이입했다고 해요. 『당근 유치원』 은 " '그때 (책 속) 곰 선생님처럼 아이를 대해줄걸’ 하는 후회로 책을 썼고”, 호주의 큰 호텔에서 객실 청소를 했던 당시 들었던 ‘너희를 대체할 사람은 많다’는 매니저의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와 『안녕』에선 컵끼리라도 서로 연대하면서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렸다고 해요. 참고로, '안녕달'이라는 필명은 작가가 좋아하는 단어들로 지은 이름입니다. 


『눈아이』(2021)의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지만, 여운이 깊습니다. 눈사람과 아이의 비밀스러운 우정과 사랑을 다룬 작품이 이전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필체와 그림체가 다 작품에 스며들었달까? 정서적으로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제겐. 배경은 추운 겨울이지만, 연필과 색연필이 주는 따뜻함이 기본이 되고, 그 위에 아침달 작가의 순수한 말들이 아이와 눈아이의 대화로 밀도 깊게 쌓이면서 같이 봐도, 글과 그림을 따로 떼어봐도 좋더라고요 참. 


모든 게 다 좋았지만 특히 좋아하는 몇 장면이 있습니다. 그중 첫 장면은 눈아이가 말문을 트는 대목입니다. 자신을 따라오던 눈덩이에 눈 뭉치로 팔과 다리를 만들어주고 눈 코 입을 파내 준 순간, 교감을 할 수 있게 되거든요. '우아'라는 감탄사가 반복되는데, 같은 단어지만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다른 하모니가 어우러져, 눈아이가 그 순간에 얼마나 흥분하고 감격스러워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요. 

『눈아이』(2021) 이미지 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 ItemId=283286886 ©네버레스홀리다

그렇게 친구가 된 눈아이와 아이는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추억을 쌓습니다. 겨울이 깊어지며 눈아이의 크기가 자란 만큼 서로를 대하는 감정의 크기도 더 커지죠. 그때의 대화가 정말 감동적이에요. 아이와 눈아이 모두 자기 방식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거든요. 하지만 아이가 주는 사랑은 어떤 땐 눈아이를 상하게 하기도 하는데, 행위보다는 그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은 눈아이는 자신이 녹더라도 이 아이 곁에 친구로 머물고 싶어 합니다.

『눈아이』(2021) 이미지 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 ItemId=283286886 ©네버레스홀리다
『눈아이』(2021) ©네버레스홀리다

추위를 피하라고 자신이 불어준 입김에 눈아이가 녹는 줄 모르는 아이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아이의 말에 울컥한 눈아이가 "따뜻해서"라고 뱉은 말과 "더러운 물이 되어도 우린 친구야"라고 묻는 눈아이의 말을 이해하긴 어려웠죠. 하지만 머뭇거림 없이 던진 "응"이란 말 한마디에 둘은 영원한 친구가 됩니다. “어떤 관계든 상대가 반짝이고 커 보이는 시기가 있고 볼품 없어지는 시기도 있지요. 그런 모습들을 그림책에 담았습니다”라고 말한 작가의 의도가 잘 느껴진 장면이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제 친구에게 이 장면만 따로 보낸 적이 있는데, 생뚱맞아서였는지, 맥락을 잘 몰라서였는지 몇 번의 질문을 거듭하고서야 "당연히 친구지 뭘 물어"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응"이란 간단한 말이 주는 감동이 있는데, 그 맛을 느껴보진 못해 아쉬웠지만요. ㅎ

『눈아이』(2021) © 네버레스홀리다

계절은 바뀌어 봄이 찾아오고, 숨바꼭질을 하던 눈아이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긴 여름과 가을을 건너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헤어졌던 눈아이와 소년은 서로를 다시 발견하게 되죠. 혼자 끼고 있던 벙어리장갑을 나눠 끼고 있는 장면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너무 흐뭇하더라고요.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나누고 싶고, 배려하게 되잖아요. 그런 마음들이 아이와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겠지만, 어떻게 보면, 목적 없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어른이 된 후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문제가 되기도 하니까요. 작가는 원래 같은 제목의 어두운 이야기를 작업하고 있었다고 해요. 근데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아 같은 소재로 밝은 버전의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눈아이』(2021)입니다. 이야기의 모티브는 작가가 예전에 그렸던, 한 아이가 녹는 눈사람더러 울지 말라며 안아주는 그림 <Don't cry>에서 가져왔고요. 

이미지 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 ItemId=3126067

눈사람과 아이의 우정을 다룬 그림책 중 가장 유명한 건, 레이먼드 브릭스 Raymond Briggs (1934-2022, 영국)의 1978년도 작품 『 The snowman 』입니다. 우리나라 출판 제목은 『눈사람 아저씨』입니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눈사람 아저씨』는 전 세계에 550만 부 이상 팔렸고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OTT나 youtube를 통해서도 이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습니다. 20분 정도 상영되는데, 그림책처럼 대사는 없고 이미지로만 구성되었어요. 그는 2012년 한 인터뷰에서 “내게 해피엔딩은 없다. 눈사람은 녹을 것이고, 내 부모는 돌아가셨고, 동물은 죽으며 꽃은 시든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특별히 우울해할 것도 없다. 그게 인생의 진실이니까”라고 말했는데,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동심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른의 시선도 양념처럼 배어있긴 해요. 『눈아이』와는 비슷한 듯 다른데, 레이먼드의 『눈사람 아저씨』는 다양한 시리즈 작품이 있으니, 날 잡고 하루에 쭉 보아도 좋겠죠. 

이미지 출처: https://www.insight.co.kr/news/407546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눈아이를 만들어 볼 기회가 한 번쯤은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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