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김장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절임배추 20kg을 한살림에 신청을 한 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사이 갑자기 아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 아이를 케어하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한살림에 주문하신 절임배추 20kg이 도착했습니다. 매장으로 방문해 주세요.’
아이가 아파서 입원해 있는데 김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한 해 먹을 김치를 망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남편에게 배추를 한번 씻어서 채에 물기를 빼달라고 했다. 갓, 대파, 쪽파도 손질을 부탁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남편과 교대를 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고춧가루, 생새우, 마늘, 생강, 찹쌀풀, 육수(명태, 무, 양파, 멸치, 다시마)를 넣고 김장소를 만들었다. 색깔이 곱다. 드디어 절임배추에 양념을 버무렸다.
이럴 수가.
김장소가 부족하다. 다시 처음부터 육수를 끓였다. 이번에는 넉넉히 김장소를 만들었다. 나의 넉넉함의 계량은 자꾸만 실패했다. 이렇게 세 번에 김장소를 만든 후, 모든 배추를 버무릴 수 있었다. 절임배추 20kg를 밤새워 김장을 했으니 절대 잊을 수 없다. 나의 첫 김장 이야기다.
2022년 엄마가 오랜 병원생활 후 퇴원하셨다. 60 포기를 절이는 것부터 했다가 몸살이 났었다. 올해는 혼자서 어떻게 해보기로 했다. 다시 한살림에 절임배추 20kg를 예약했다. 도착 날짜는 11월 17일. 토요일 김장을 해야 하는 데 하필 남편이 생일 여행을 가는 날짜와 겹쳤다.
금요일 절임배추를 받았다. 한번 씻은 후, 물기가 빠지도록 채에 담았다. 김장소를 적게 하면 힘든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미리 육수를 넉넉히 만들어 준비해 두었다. 다음날 아침 김장소를 만드는 사이, 아이는 김장매트에 절임배추를 옮겼다. 한번 씻었는데도 배추가 짜다. 김장소에는 소금을 넣지 않았다. 드디어 아이가 능력을 발휘할 차례다.
아이가 김장하는 모습
절임배추에 김장소를 꼼꼼하게 무친다. 묵김치를 좋아하는 아이가 갑자기 기도를 한다.
"제발 저희 엄마 김치가 맛있게 되도록 해주세요!"
"당연히 맛있을 거야."
아이가 진짜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이번에는 성공할 자신 있다. 벌써 빛깔이 다르지 않은가.
아이와 함께 무치다 보니 금세 두통이 만들어졌다. 엄마가 하는 말을 흉내 내본다.
"내년에도 든든하겠다."
아이가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엄마 없이 김장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로 산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만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뜻이다. 소중한 가족을 위해 나는 또 어떤 일들을 해낼까.
처음 신혼집에 왔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떻게 먹고사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잘 해내고 있을지 몰랐네. 엄마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우리 딸 장하다."
나는 안다. 엄마도 처음 결혼할 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엄마로 살면서 엄마도 진짜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딸도 그 과정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