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다다르다]
일요일 오후였다.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대전은 평온했다. 딱히 분주하지도, 그렇다고 심각하게 번잡하지도 않은 도시. 성심당에 들러 빵을 몇 개 사고, 책방에 가보자 계획을 세웠다. 적어도 그 광경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S자가 4개쯤 이어진 형태로 대기자가 줄을 선 성심당 앞은 인산인해였다. 한 시간쯤 대기해야 입장 가능하단다. 타고난 빵순이는 아닌 터라, 미련 없이 책방으로 걸음을 돌렸다.
성심당 복잡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저 멀리 S닷 문고와 한국문고의 간판이 보인다. 그즈음에 서점이 있으면 가장 자연스럽겠다 싶었다. 오! 두 문고의 중간쯤에 '다다르다'가 있다. 현란한 간판은 없었다. 다소곳한 느낌의 포스터만이 책방의 존재감을 알릴 뿐.
[삶의 다양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 서점. 다다르다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포스터 문구를 보니 이곳의 상호가 왜 '다다르다'인지 알겠다. 그렇다면 이곳만의 다른 점이 뭘까. 물음을 가지고 문을 열었다.
공간이 달랐다.
출입문부터 남달랐다. 가게에 다다랐을 때, 출입문이 어디지? 의문이었다. 살짝 옆으로 돌아가니 건물의 옆구리에 문이 나 있다. 재밌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또 1초쯤 당황했다. 1층의 전면 책장이 반 이상 비어있고, 커피를 주문하는 카운터와 난로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기에. '영업 중이겠지? 내가 잘 찾아온 거겠지?' 의아했지만 고개를 돌리니 위로 꺾여 뻗은 철제 계단이 보인다. 마치 마법의 공간처럼. 이곳은 마치 위로 뻗은 동굴 같다.
어떤 공간이 펼쳐질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공간. 2층에 올라 고개를 돌리니, 1층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내추럴한 우드 색상의 커다란 책장들이 수호신처럼 벽마다 둘러 있고, 그 앞에 5개의 진열대에 다양한 책들이 빼곡했다. 창가 앞에는 일자형의 벤치의자를 두어 앉을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특이했던 건, 기둥 뒤의 구석진 자리에도 앉을자리를 마련해 두었다는 점이다. 내향인에 대한 배려인가? 귀엽다 생각했다.
책이 달랐다.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서점의 큐레이션에는 주인장의 철학과 마인드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사장님께 여쭤보고 싶었다. 젠더이슈, 소외계층의 이야기, 정치, 경제, 철학과 같은 묵직한 이야기부터 요리나 유머에 관한 책까지 책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서 책 배열에도 기준이 있으실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다 딱! 눈이 마주쳤다!
3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가지런한 머리에, 가는 테의 안경을 끼고 앞치마를 입은 남자분. 마스크를 끼고 계셨지만 말간 인상이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분이 사장님이시구나. 사진 찍는 것에 양해를 구하고, 살짝 큐레이션에 대해 여쭤봤다.
"저는 딱히 의도를 가지고 큐레이션을 하지는 않아요. 어차피 책을 고르고, 선택하는 것도 독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책을 더 강조해서 보이려고 노력하지는 않죠.
다만 신경을 쓰는 점이라면, 눕혀 놓은 책과 꽂아놓은 책의 차이점 정도입니다. 눕혀둔다는 건 표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공간을 할애하는 거죠. 좀 더 함께 읽었으면 하는 것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 우리 지역에 관한 책도 빠뜨리지 않는 편이에요."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놓인 책들도 남달랐다. 가지런히 배열된 책이 있는 반면 무심히 쌓아놓은 것들도 꽤 눈에 띄었다. 구석진 자리에 턱! 놓인 그 책들은 되려 책장 속에 있는 것들보다 더 눈이 갔다. 이것도 의도하신 걸까. 내버려 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놓인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 역시 저절로 생긴 효과가 아닐까 짐작했다. 많은 책들이 있음에도 답답하지 않았다.
사람이 달랐다.
다다르다의 사장님은 조금 달랐다. 2층에 올라서서 가장 먼저 접했던 서점일기에서부터 느꼈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잠깐이지만 대화를 나누었을 때도, 사람을 가장 중심에 둔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사장님과 점원분이 친절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생각 이상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책방에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분위기에 방해될까, 시끄러울까 언제나 낑낑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동안 책방에 가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아이와 사장님은 친해져 있었다. 카메라를 들어 꼬맹이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기까지. 덕분에 신랑과 나는 책을 조금 구경할 수 있었고, 반겨주는 느낌이라 감사했다.
어떤 손님들이 이곳에 올까.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이 역시 참 다르네. 젊은 층만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별이 쏠리지도 않은. 우리가 갔을 때는 친구와 함께 온 젊은 여성들. 딸과 엄마로 보이는 두 사람. 혼자 와서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 책의 스펙트럼만큼이나 고객층도 다양한 것 같다. 어떤 장소에 가면, 왠지 그곳에 있는 나 자신이 물속의 기름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그런데, 이곳은 누가 와도 그런 마음은 들지는 않을 것 같다. 심지어 3살짜리 우리 도동이도 이곳에 함께이지 않은가. 혼자 키득 웃었다.
그때, 2층으로 저벅저벅 올라오는 걸음이 들린다. 180센티는 가볍게 넘을 것 같은 키에, 체구가 상당히 좋은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플리스 상의의 지퍼를 양껏 올린 용모였다. 손이 상당히 크고, 단단해 보였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선입견이 묻은 옹졸함일까. 서점보다는 야외 액티비티를 즐길 것 같은 인상이었다. 2층에 올라와 곧장 카운터로 향한 그분은 부드러운 라떼를 주문했다. 미리 주문해 둔 책을 구매한 건지, 얇은 책 한 권을 받아 들고 우리 아이들이 앉아 있는 쪽으로 간다. 아이들이 독서에 방해를 줄까 살짝 긴장하며 바라봤다. 웬걸 그 손님은 아이들에게 찡긋 인사까지 하며 앉더니 함께 독서를 해 나갔다. 첫인상이란 이렇게 못 믿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첫째 아이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뭐였나 물었다.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 내 근처에 앉은 그 아저씨! 처음엔 인상만 보고 살짝 무서웠는데 세상에 우리한테 인사를 건네잖아? 그리고 사장님과 점원분이 우리 사진도 찍어주시고. 그런 조용한 곳에 갔을 때 아이를 반겨주거나, 인사를 먼저 건네주는 어른은 많지 않거든! "
그렇구나. 아이도 느낀 것이다. 공간에게 환영받은 경험을. 공간과 사람과 책이 무언가 남다른 다다르다는 그렇게 삼박자가 닿아 있었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을 묻는다면, '삶의 의미'라고 답하고 싶다. 사장님은 본인이 사랑하는 일과 의미를 찾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책을 두 권 사고 받아온 영수증에는 그런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물론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책을 사랑한다. 모두 다른 모습과 의미로 함께이지만 우리는 다, 다름에 다다른 것이다.
이 글귀가 떠올랐다.
삶의 의미는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므로.
그리고 삶은 결국은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말할 줄 알게 되는 하나의 과정이므로. <삶의 발명> p.118, 정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