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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Feb 12. 2024

아픔의 날씨 : 암이면 어쩌지?

2023.10.21. 바보 같거나 위험한 날씨

한여름에도 별로 나대지 않았던 모기가 절기가 가을로 깊숙이 들어왔는데 성가시게 군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모기가 물었는지 오른쪽 가슴이 가려워서 긁는데 몽우리가 만져졌다. 앞섶을 열어 살펴보니 물린 자국은 아니었다. '이게 뭐지?'


잠자리에 들면서 박풀고갱에게 '가슴에 뭔가 만져지는데 유방암이면 어쩌지?'라고 무심히 내뱉었다. 

"병원 가 봐." 박풀고갱도 할 법한 반응을 한다.

"김수희라는 가수가 있었어. '멍에'라는 노래 불렀던 가수..."

"알아."

"어렸을 때 엄마 따라 미용실 갔을 때인가? 여성잡지에서 김수희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남편이 발견했대."

".....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어린 나이에... 뒤게 야하다고 생각했어."

"그러네...."


다음날 후배 부부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십 수년만에 연락이 와서 만난 것이었다. 

그날 밤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너무 좋은 부부였지만 다시 또 볼 일이 있겠나 싶어. 내 장례식에나 오겠지. 아니다. 내 장례식에도 안 오겠다.'라고 굳이 할 필요도 없는 말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나에 대해 새롭게 설명할 필요 없는 편한 만남을 추구하게 되어서 한 말이었는데 뱉고 보니 뭔가 복선이 느껴졌다. 


온라인 서점 사이트를 열어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라는 책을 주문했다.

'고맙습니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가 죽음을 앞두고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엮은 책이다. 김영하 소설가가 (지금은 폐쇄한) 자신의 팟캐스트 '책 읽는 시간'에서 소개해서 오래전에 알게 된 책인데 문득 생각이 났던 것이다.

책을 받아보고 좀 당황했다. 너무 얇고 작은 책이라서….

단숨에 읽기엔 좋았다.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였던 올리버 색스는 2014년 12월, 2005년에 진단받았던 안구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후 2015년 8월 사망했는데 그 기간 동안 쓴 4편의 에세이가 '고맙습니다'에 실려 있다. 여든을 갓 넘긴 올리버 색스가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우아한 글이었다. 대가가 죽음을 대하는 의연함에 존경심과 괴리감이 함께 느껴졌다.


유방암의 생존율이 높은데도 죽음에 대한 에세이까지 사다 읽다니 좀 과도한 거 아닌가.ㅎㅎㅎ 유방에 몽우리 좀 만져졌다고 너무 오두방정을 떠는 게 아닌가...

'라쇼몽'의 작가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인생을 성냥갑에 비유했다고 한다. '인생은 한통의 성냥갑과 닮았다. 중대하게 취급하면 바보 같고, 함부로 다루면 위험하다.' 

산다는 건… 너무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거나 혹은 이미 너무 위험한 상태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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