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곡> 작전명 청-춘! - 잔나비
*소설 속 모티브와 콘셉트 외의 인물, 단체, 장소,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일반인이 연예인과 사귄다는 것. 그것도 정상의 위치에 있는 스타와 사랑을 한다는 것.
나연희는 수없이 각오하고 선택한 만남이었다고 생각했다. 그와의 관계가 알려지면 당연히 부담이 따를 거라는 걸 예상했고, 세상의 관심이 그를 향할 때마다 자연스레 자신에게도 시선이 쏟아질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버거웠다.
열애 사실이 알려진 후, 나연희는 평소처럼 취재를 다니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을 받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동료 기자들의 시선이 따라붙었고, 유원우의 팬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던 몇몇 기자들은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거나 시기 어린 농담을 던졌다.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연예인 마음을 홀렸어요?" "우리 원우 씨 단독 인터뷰 한 번만 잡아주시면 안 돼요? 이제 인맥이 생기셨잖아요." "기자도 결국 스타 만나려고 하는 건가 보네.“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다. 하지만 같은 말이 반복되자 속이 조금씩 상하기 시작했다. 연예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그런 시선을 받으니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유원우는 어느 날 문득, 나연희를 보고 있는 자신을 자각했다.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크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
밤을 새워 기사를 쓰면서도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일에 집중하는 사람.
누군가는 “일에 미쳐 있다” “워커홀릭이다”라고 표현할지도 모르지만, 그 열정이야말로 그녀를 가장 빛나게 만드는 요소였다.
유원우는 그런 나연희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이 차는 그렇게 많진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보다 어렸다. 하지만 자신보다도 훨씬 똑똑했고, 기자임에도 유달리 감성적이었으며, 자신의 깊은 음악적 감성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면서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단순히 좋아하는 연애 감정을 넘어, 그는 그녀를 존경하고 있었다.
"기자님은… 참 멋있어요."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존댓말에 나연희가 눈을 깜빡이며 그를 쳐다봤다.
”응?“
”그냥, 네가 일하는 모습 보면… 멋있다고 생각해. 뭐랄까, 완전히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 같아서. 거기에 들어가면 함부로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나연희는 어딘가 어색한 듯 웃으며 머리를 넘겼다.
"그런 말 자주 들어본 적 없는데."
"그럼 내가 앞으로 많이 해줄게."
진심이었다.
유원우는 가수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때때로 연예계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
10년 넘게 주목받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다 보니, 당연한 것이 아닌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신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그 주목이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연희는 달랐다.
그녀는 주목을 받지 않아도,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매일 묵묵히 스스로를 증명해나가고 있었다.
어느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기사 한 줄도 허술하게 쓰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
그 치열함이 때론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유원우는 그런 그녀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켜보고 싶어."
유원우는 문득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스스로 놀랐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나연희는 살짝 놀란 듯했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켜보면 되지. 오래오래."
유원우는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오래도록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았다.
-
나연희는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생 시절, 숙제였던 일기 쓰기도 그녀에겐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즐거운 일과 중 하나였을 정도로.
감정이 넘치면 글로 풀었고, 생각이 복잡할 땐 활자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했다.
글 쓸 때면 살아있음을 느꼈고, 기쁠 때나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우울할 때나 모든 순간을 글로 기록하며 감정을 다스렸다. 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일이 적성에 맞았고, 기자가 된 후 그녀는 그저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주는 통로가 되고 싶었다. 멋진 기사 한 편을 완성하고 ‘좋은 글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었다.
멋쟁이 편집장 할머니가 되어, 오랫동안 글을 쓰며 늙어가는 것. 그리고, 이 분야에서 최대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금껏 달려왔는데, 사랑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어지럽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녀의 열정과 야망을 꺾으려는 듯, 세상의 관심과 시선이 가로막고 있었다.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과연 자신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스러웠다.
그날도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에게 유원우가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 ‘복잡함’이라는 두 글자가 그대로 적혀 있는 듯했다.
“무슨 일 있었어?”
나연희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지만, 힘들어 보였다.
“그냥… 가끔은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걸까, 생각이 들어.”
그 말을 듣자, 유원우는 망설임 없이 그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절대 포기하지 마. 너는 네 일을 정말 좋아하잖아. 하기 싫어서 하는 일이라면 그만두라고 하겠지만, 좋아서 하는 일을 포기하는 건… 싫어. 네 재능과 그동안의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네 기사 볼 때마다 나 진짜 감탄해. 글이 단단하고, 따뜻하고, 때로는 날카롭고. 그런 글 쓰는 사람 많지 않아.”
그는 나연희가 얼마나 일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있는지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나연희는 그 말을 듣고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수많은 칭찬을 들었어도, 이토록 진심으로 자신의 ‘일’을 응원해 주는 말은 오랜만이었다.
“그럼… 계속 써야겠네. 멋쟁이 편집장 할머니 되려면.”
그녀의 농담에 유원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때도 옆에서 보고 있을 거야. 은근히 까다로운 독자 1호로.”
그 순간, 나연희는 생각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사랑도 일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 기자님이 나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면… 난 아마 평생 죄책감에서 못 벗어날 거야. 그러니까… 계속해요. 누가 뭐라고 하든. 난 기자님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좋아."
그의 말은 다정했고, 단호했다.
나연희는 또다시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세상은 자신의 선택을 두고 이런저런 말을 던지겠지만, 그녀는 그 속에서도 현명하게 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도, 일도.
그렇게 그녀는 다시 펜을 들었다.
매일같이 흔들리고, 고민하고, 때론 후회도 하겠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며 스스로를 증명해 나가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녀 인생의 가장 뜨겁고 찬란한 계절임을 문득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쓰고 있는 청춘의 한 페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