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Mar 03. 2020

날씨가 춥죠?

공지영 장편소설 '먼바다'를 읽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 오랜만에 읽은 공지영 작가의 소설.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작가는 끊임없이 쓰는 존재여만 살 수 있는 것 같다. 글에 대한 재능은 저주이거나 축복이겠지. 엮이면 괴로워 침묵하고 지나치고 마는 일들을 작가는 꼭 끌어안고 파고들어 과녁도 되고 화살도 되더니. 나는 여전히 쉽게 피하고 지나치는 자로서 그가 '내 살아온 뼈를 조금씩 녹여 잉크를 만드는 것 같다'는 글을 거저 읽고, 반짝이는 조약돌을 줍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날씨가 춥죠? 하고 인사하고……. 살아보니 이 두 마디 외에 뭐가 더 필요할까 싶다.

    

“돌아보니까, 아픈 것도 인생이야. 사람이 상처를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것을 겪는다고 하고 그게 맞지만, 외상 후 성장도 있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가끔 성장한단다. 상처가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피하지 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다만 그 사이에 날이 가고 밤이 오고 침묵이 있고 수다가 있고 그런 거야. 젊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걸 깨닫지 못해. 하지만 이제 너도 오십이 훨씬 넘었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너무 많이는 아파하지 마. 그러면 상하고 늙어 살도 찐단다.”
어머니가 말했다. 뜻밖에도 세상을 많이 산 여자 선배 같은 침착한 말투였다. 그녀가 코를 훌쩍 들이켰다. 그리고 마지막 말에는 약간 웃었다. 
“많이도 미워하고 많이도 원망했었다. 그러나 이만큼 살고 죽음이 더는 두렵지 않은 나이가 되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날씨가 춥죠? 하고 인사하고……. 살아보니 이 두 마디 외에 뭐가 더 필요할까 싶다. 살아보니 이게 다인 것 같아. 미호야.”

공지영 장편소설, 먼바다, 246,7p





작가의 이전글 어른이 주는 거니까 무조건 무조건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