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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작가의 글을 읽고

by 나비고

깊어지는 가을이 되었고 우리의 맘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재즈의 선율이 귓가를 간지럽히고 찌뿌둥한 하늘이 울적하게 만든다.

몸은 개운하지 않고 시야는 또렷하지가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을 이맘때는 우울 상태로 돌입한다.

날씨는 사람의 마음을 좌우하게 만든다.

날씨에 끌려다니지 않으려 해도 흐린 날에는 기분도 흐려진다.

태양이 주는 기분 좋음이란 정말로 위대한 능력이다.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날의 태양은 온데간데없고 내복을 입어야 될 만큼 아랫도리는 추워졌다.

흐림보다 맑음이 좋다.

마음씨 예쁜 여자가 좋다.

아쉬운 것은 그만큼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아주아주 긴 겨울로 들어가기 전에 가을은 그래서 더 아쉽고 즐기지 못하면 금방 없어져 버린다.

해라도 들어야 기분 좋아지는 것은 비타민D가 만들어져서 그런 것일까.

약으로 만들어진 것보다는 태양이 만들어 주는 비타민D가 진짜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별로 많지 않다.

오랜만에 춘천에 다녀왔다.

역시나 차는 막혔고 의암호의 풍광은 예전 그대로였다.

케이블카가 생겼고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단풍은 절정에 이르렀고, 날씨가 좋아서 기분 전환하기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닭갈비를 먹었고 막국수도 먹었다.

그렇게 단풍놀이 하나를 해치웠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만끽하기 위한 숙제 같은 것이었다.

자유시간이 먼저 든 숙제가 먼저든 순서만 바뀔 뿐이지 큰 의미는 없다.

여기에서 큰 의미는 내가 자유시간을 쓰는데 별다른 제약이나 차이가 없다는 얘기이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주말에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책 속의 등장인물은 젊은 청춘들이고 사랑 이야기이다.

외모보다 마음씨 착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친구의 여자가 되었다.

사랑과 결혼은 일치하지 않는다.

예쁜 여자들도 많지만, 못생긴 여자도 많다.

어찌어찌해서 짝을 만나서 애 낳고 살고 있다.

미모는 남자가 여자를 선택할 때 최우선으로 보는 것이다.

많은 여자를 봤지만 그래도 눈이 가는 것은 예쁜 여자이다.

유혹을 하려면 일단은 예뻐야 하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쁘면 좋지 아니한가.

소설은 정사 장면 하나 없이 아주아주 담백하고 느린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몇 줌의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있는 자판들을 어루만지며, 나는 다시 그녀를 생각한다. 생각해 본다.”

이 대목을 왜 메모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었나 보다.

재미없는 하루가 오늘도 지나간다.

같이 있었던 시간은 추억으로 남아버렸다.

주인공 남녀는 백화점에 일하다가 만났다.

짐을 들어주었고 같이 걸었다.

천하의 추녀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모른다.

사랑이 온다는 것은 이유가 없다.

그냥 저절로 오게 마련이다.

주인공은 훌륭한 형을 만나게 된다.

둘이 죽이 맞아서 매일 맥줏집에서 술을 마신다.

한마디로 절친이다.

모든 인생 고민과 스트레스를 맥줏집에서 푼다.

그 절친이 나중에는 추녀와 결혼한다.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그래도 믿었던 절친과 살고 있으니까 괜찮다.

눈에 콩깍지가 끼면 아무리 못생긴 여자도 소설처럼 사랑하게 된다.

못생긴 여자가 잘생긴 남자랑 커플인 경우도 종종 본다.

사람의 인연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관계에서도 사랑이 싹트고 로맨스가 형성된다.

알 수 없는 남녀관계가 성립되는 조건은 그들만이 안다.

사랑은 좋아함에서 시작된다.

그냥 그 사람이 쿵 하고 내 마음에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이다.

돈이든 마음이든 모든 것을 그 사람을 위해서 산다.

편지가 오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사랑을 하기 위해서 애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이루어지는 사랑도 있다.

사랑은 주관적이다.

아무리 불륜이라고 해도 내가 하면 로맨스이다.



사랑 이야기로 심오한 인생 이야기로 만들어진 아주 재밌고 젊은 날의 사랑이 생각나는 좋은 책이다.

격렬하지 않아도 진한 사랑이 느껴지는 사랑의 춤곡이다.

하룻밤 욕정을 풀기 위한 해소의 행위도 아니다.

진득한 조청이 다려지듯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가 달짝지근하다.

사랑은 같이하는 시간과 공간을 줘야 사랑이 지속되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보이지 않고 떨어져 있으면 사랑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뭔가 저질스러운 사랑 이야기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아주아주 순수한 사랑 이야기였다.

추녀는 난생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혹시나 이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가 있을 수도 있다.

잠깐 떨어져 있는 동안 예쁜 여자랑 친구가 되어 보지만 이미 사랑은 추녀한테 있기 때문에 친구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한번 온 사랑은 헤어지기 전까지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정신적인 사랑만으로 사랑이 유지되리라 보지 않는다.

육체적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긴 해도 섹스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못생긴 여자였다.

아버지는 무명 배우에서 유명 배우가 된다.

지고지순한 어머니에게 성공하면서 등한시한다.

그래서였을까 주인공 남자는 가장 못생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소설을 쓰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된다.

사고를 당해서 죽게 된다.

그리고 친했던 형과 추녀는 결혼한다.

셋이 일이 끝나면 맥주도 마시고 영화도 보는 사이였다.

그렇게 인연은 따로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인연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중한 인연을 거부하지도 일부러 만들지도 말자.

될 인연은 어디서든 만나게 되고 어떻게 되든 된다.

인간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추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친한 형과 결혼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오늘도 매력 만점의 여성들은 나를 지나쳐 간다.



시대 상황이 나의 젊은 시절과 비슷해서 공감이 많이 가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다른 소설도 꼭 한번 읽어볼 것이다.

많이 읽고 써보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꾸준함은 아무도 이길 수 없다.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

가을은 깊어지고 겨울은 올 것이다.

오늘은 술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야근할 것인가 아직 알지 못한다.

술이든 야근이든 다 좋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인생은 재미가 없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했다고 한다.

지금은 외모의 수준이 높아졌고 개성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유일함과 편안함과 나만의 행복감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뚱보든 추녀든 상관없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

지금은 인공위성이 발사대를 떠났다가 다시 발사대로 오는 시대이다.

이 엄청난 시대에도 사랑은 갔다가 인공위성처럼 제자리로 온다.

그 사랑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랑이 여기저기서 도킹할 준비를 하고 있다.

수많은 우주에 그중에 그대를 만나 사랑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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