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을 남편과 같이 보고 있었다. 김장철이 다가와서인지 젓새우를 잡는 어선이 나오고, 젓갈공장이 나왔다. 여러 가지 젓갈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이 화면을 보고 소리쳤다.
저거지! 당신이 좋아하는 거! 요즘 안 먹더라?
화면에 황석어젓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평온했던 마음에 갑자기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파도는 폭풍이 되고 쓰나미를 만들었다.
안 먹어! 나 저거 안 좋아해.
곁에 있던 인형을 집어 남편에게 던졌다. 남편은 덤덤하게 인형을 맞았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각설이도 아니고 김장철만 되면 꼭 황석어젓이야기를 꺼냈다가 욕을 먹는데도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내가 첫째를 임신했을 때, 참 힘들었다. 속이 느글느글해서 밥 먹기가 몹시 힘들었다. 버스에서 두 번이나 쓰러지고 나서 회사도 그만두었는데 정말 뜬금없이 황석어젓에 물에 만 밥이 먹고 싶었다. 평소에 먹지도 않는 음식이지만 곰삭은 황석어를 청양고추랑 마늘이랑 다져 넣고 참깨를 뿌린 황석어젓을 꼭꼭 씹어 먹고 싶었다.
임신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므로 내가 시장에 가서 젓갈을 사 왔다. 생선 그대로의 모양으로 삭힌 황석어를 다지고 갖은양념을 해서 밥상에 올렸다. 남편은, 깜짝 놀랐다. 이게 뭐냐, 이 냄새는 뭐냐, 이런 걸 누가 먹냐, 진짜 먹을 거냐. 평소 밥 먹을 때 말도 잘 안 하는 사람이 내가 젓갈을 하나 집어서 밥이랑 한 숟갈 먹는 내내 신기해하고 우웩 우웩 비위 상해하면서 슬금슬금 나를 쳐다보는 거다. 그때까지 나는 남편한테 결코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화가 나고 서운하고 억울하고 슬퍼져서 눈물이 날 판이었다. 임신한 아내가 밥 한 숟갈 먹어보겠다고 평소 먹지도 않던 젓갈을 먹겠다는 게 너무하는 거 아닌가.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반찬접시에 담긴 젓갈을 개수대에 버렸다. 그리고 반찬통에 고이 담아 두었던 나머지 황석어젓도 개수대에 부어버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는 걸 먹게 해야지, 먹고 싶지도 않은 호떡은 자꾸 사 와서 애 얼굴 새까만 거 봐봐! 내가 속이 얼마나 느글거렸었는데!!!!
정작 28년 전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내자, 자신은 애를 안 가져봐서 전혀 몰랐다며 남편이 안방으로 피신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황석어젓을 먹지 않았다. 원래도 안 먹었다. 앞으로도 안 먹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