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그거 아니야

by 배추흰나비

적은 금액이지만 퇴직금이 나왔을 때 5만 원권 40장을 뽑아와서 남편에게 주며 큰소리로 말했다.


골프채 하나 사!


나, 멋지다.


남편이 당근에서 골프채-클럽이라나 뭐라나.. 잘 모르겠는 그걸 사기로 했단다. 판매자는 포장 껍질 3개까지 벗기고 휘둘러보니 허리가 아픈 것이 자신과 무게가 맞지 않는다며 내놨단다. 여차저차 남편이 가격을 흥정한 후 100만 원에 구입하기로 했단다. 저녁식사 중 맥주를 마신 남편은 나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우리 동네다.

가는 동안 기분 좋게 흥분한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백만 원 현금으로 들고 가는 거 그 사람은 알고 있는 거지? 큰일 났네. 골프채 구경하라고 하고 머리를 때리고 돈 뺏어가면 어떻게 할 거야. 왜 어두운 데서 만나자고 했어. 왜 사람 많이 안 다니는 곳에서 만나자고 했어. 왜 직접 돈 준다고 했어. 하며 불안감을 내뿜고 남편을 거래장소에 내려준 뒤 비상등을 켜고 창문을 살짝 내리고 예의 주시했다. 여차하면 신고하려고 핸폰을 손에 꼭 쥔 겁 많은 나

약속시간 5분쯤 지나서 어떤 아담한 아저씨가 불안한 눈빛을 하고 개 한 마리 끌고 골프채를 가져왔다. 개는 작은 녀석이었지만 처음 보자마자 짖기 시작해서 거래 성사 후 헤어질 때까지 짖어댔다. 음-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나 보다 그 사람도. 생각해 보면 물건 보자고 하고 새것인 것 확인한 후 골프채 휘둘러서 뒤통수 때리고 물건을 들도 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물건을 확인하고 돈을 건네고 돈을 세고 난 후 아담한 아저씨는 불안함이 가신 눈빛이 되었고 서로 환한 미소로 헤어졌다.



내가 서울에 다녀오는 동안 남편은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갔었다. 역에 마중 나온 남편에게 친구들과의 골프는 재미있었냐, 새로 구입한 골프채는 쓸만하냐고 물었다.

캐디 없이 치려니까 힘들었어

어?

캐디가 없으니까 골프채 가지러 왔다 갔다 하느라고... 다리가 아퍼

그게 무슨 말이야?

.

.

집에 오고, 씻고, 티비를 보다가- 결국 한마디 했다.

당신 친구가 와이프랑 한 달도 넘게 말을 안 했다며. 그러다 감정 골이 깊어져서 괴로워하다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짐작도 해보고 이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그랬다며. 결국에 알고 보니 별 이유 없이 시작된 일이었다고 했었잖아? 내가 지금 말을 하지 않으면 한달은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나는 당신이 새로 산 골프채를 가지고 친구들하고 골프 치러 간다고 해서 그 골프채 쓸만한지 어떤지, 친구들과는 재미있었는지, 마누라가 사준 거라고 자랑은 했는지 뭐 이런 이야기가 궁금했던 거였는데

내 질문이 어려웠어?

남편은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했고 나는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씁쓸했다. 아마도 남편은 다리가 아펐을 것이고 그것만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자기가 아픈 것을 말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그걸 묻는 게 아니었다.


교육의 끝은 어디인가.

표현에 야박한 남편덕에 사랑이 행방불명된 듯 느껴져 매일 밤 울던 신혼시절, 그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기로 했다. 소나무가 장미에게 사시사철 푸르지 않음을 묻지 않고 장미가 소나무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너는 왜 피우지 못하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고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표현 교육을 시작했다.


사랑은 표현하는 거라고. 예쁘면 예쁘다, 맛있으면 맛있다 말하는 거라고, 내가 무엇을 물으면 대답하는 거라고, 대답할 때는 나를 보고 하라고...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아니 아니, 말로 때우지 말고!

아주 그냥, 자꾸 이런 식이면 솜사탕에 확 물 부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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