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믿지 마세요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이다.
아래 아랫집에서 커피를 마시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마침 두통에 시달리며 누워있던 나는 '지금 두통이 있어서 누워있다'라고 하니 '그럼 상희 씨 두통이 낫게 어디 드라이브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오자'고 했다. 옴마야
나는 일로 만나는 사이가 아니면 몹시 낯을 가린다. 많이 가린다. 십여 년 이곳에 살면서 다른 집에 가 본 적도 없고 동네 주민과 길게 이야기한 적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크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 옆의 포도밭에 동네주민의 주거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대규모 정비공장이 생긴다고 하니 조용히 살던 사람들이 서로 뭉치게 되었다.
지킴위원회가 결성이 되고 가장 중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새로 지을 건물에 제일 많이 가려질 우리 집의 가장이 위원장이 되었다.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나고 아랫집과 아래아랫집 안주인이 위원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나는 낮도 가리지만 거절도 잘 못한다. 가면-잘 어울린다. 처음으로 가 본 아래아랫집은 잔디 위에 예쁜 테이블이 있고 향기로운 커피와 떡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쩌면 위원장님은 그렇게 다정하세요?
띠용-듣다 처음이다. 불과 며칠 전에 말하는 것 자체가 윽박인 남편에게 이번생은 다정한 남자랑 사는 건 포기해야 하는 거냐며 화를 냈었는데 다정은 무슨. 결혼하자마자 눈곱만큼도 다정하지 않은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밤새 울었던 그 많은 날들을 그녀들은 모르겠지. 도대체 당신은 무슨 복으로 나처럼 똑똑한 여자를 만난 거야? 하니 니가 똑똑해서 나를 고른 거지.라고 답해서 할 말도 없게 만드는 사람인데...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어서 자기를 만났다며-아이고 머리야.
지난번 대책위원회 모임 때 사람들에게 줄 매실차를 내오다 너무 무거워서 살짝 삐끗했는데 "야, 뭐 그런 걸 혼자 들고 오느라고 그러냐."라고 남편이 말했는데 나는 핀잔으로 들었고 남들은 따뜻한 위로로 들었나 보다.
아휴, 아저씨가 솜사탕 같더라고요. 어쩜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는지. 며칠 동안 우리 남편 갈궜잖아. 윗집 아저씨 좀 보고 배우라고.
이건 무슨 엿같은 마이쥬가 이빨에 붙어서 안 떨어지는 소리여. 솜사탕이라니! 넘들 눈에는 그렇게도 보이나 보다. 쓴 커피 얻어 마시고 집에 와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남편에게 어이, 솜사탕. 하니 어리둥절이다.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라며 당신이 솜사탕이래. 핸폰에 당신 이름 솜사탕으로 바꿔야것어. 했더니 몹시 좋아했다.
며칠 뒤 남편은 핸폰에 이름 바꿨냐고 물었다. 바꿨다. 이름이 바뀌면 이름값을 하것지.
남편에게 전화가 오면 <솜사탕>으로 뜨는 이름 때문에 경기를 몇 번 하다가 결국은 <서방님(솜사탕)>으로 다시 바꿨다. 요즘은 맘에 안 드는 일만 생기면 확 솜사탕에 물 부어버린다고 협박하는 솜 든 부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