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기록집
엄마는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농사를 짓는 지인의 소개로 하우스 밭일을 나가셨다. 젊고 솜씨 좋은 엄마의 등장은 그 일대에 입소문이 났고, 엄마를 찾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전라남도 장성군 한 시골 마을에 2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엄마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젊은 과부가 된 할머니의 손을 보태며 커야 했다. 빼어나게 고운 얼굴과는 달리 억척스럽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어린 명숙이는 알았을까?
손끝이 야무지다는 것은 곧 그 손으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볕을 피해 이르게 집을 나선 엄마는 늘 해가 질 때 즈음 집에 돌아왔다. 엄마의 손에는 보통 그날 수확한 상추와 가지, 부추가 들려 있었다. 엄마가 가지고 오는 채소들은 항상 여리고 싱싱하고 맛있는 흙냄새가 묻어났다. 이런 채소들은 저녁상에 오르거나, 윗집 아주머니에게 보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내게 50리터 정도 되어 보이는 파란 봉지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 상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들이 가득했다. 엄마는 그 봉지를 당시 내가 다니던 동네 교습소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말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이 따온 거야.” 볼멘소리를 내뱉고 파란 봉지를 들고 선생님집에 다 달았을 때 같이 수업을 받는 친구 명은이를 만났다. 명은이는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신이 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집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깨달았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란 것을.
나는 상자만 봐도 그 선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작아졌고 너무나 컸던 파란 봉지는 더욱 커 보였다. 그 당시 명은이의 부모님은 직접 수제화를 만들어서 납품하는 일을 하셨다. 명은이가 가져온 선물은 역시나 예쁜 수제화였다. 와인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엘칸토구두.
하필, 스승의 날이라니. 나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명은이는 구두를, 나는 상추를 가져가서 비교가 되었다는 말을 했지만, 엄마는 내 투정을 듣고도 시큰둥하게 넘겼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시든 상추처럼 명은이 앞에만 서면 초라하게 움츠려 들었다.
시간이 흘러 하우스가 가득했던 나의 고향에는 개발의 바람이 불었다. 그 많던 하우스들은 보상금을 받고 사라졌다. 소작농이었던 엄마의 벗들은 땅을 찾아 떠났다. 덕분에 십여 년 넘게 계속하던 밭일을 그만두고 엄마는 새로운 일을 찾게 되었다.
새 직장에 출근하고 맞이한 첫 주말, 엄마는 내 뒤통수에 대고 말을 걸었다. 처음엔 엄마가 내게 말을 거는지도 몰랐다. 엄마의 서툰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즐겨하던 스마트폰의 게임도 알고, 그날 하루 드셨던 음식이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게 하기 시작했다.
입을 옷이 없다며 아이처럼 투정하는 모습도 그때 처음 본 것 같다. 엄마의 낯선 모습이 어색하고 설렜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엘칸토 와인색 구두를 신은 선생님의 모습은 기억에 없다. 그 대신 상추 맛있게 먹었다고 전해 달라는 선생님의 말은 기억에 남는다. 그날 엄마에게 창피하단 말 대신 선생님의 선물을 챙겨줘서 고맙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종종 밥상에 올라오는 상추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아무도 먼저 말 걸어 주지 않는 그곳에서 엄마는 얼마나 고독했을까.
엄마는 그동안 동굴 속에 있어서 나와 나눌 말이 없었던 것이었을까.
그리고 나 또한 하우스 속에 갇혀서 엄마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상추는 아니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