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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Mar 13. 2024

모든 걸 알면 세상은 우리 것이 된다

요르고스 란티고스의 <가여운 것들>

[ 사진 출처: 네이버 ]
세상에 대한 찬미


갓윈(월렘 대포)은 자살한 벨라(엠마 스톤)를 의학 실험으로 살린다. 신생아의 뇌를 이식하게 되면서 새로운 인격체로 탄생하 벨라. 그녀는 육체와 정신의 부조화를 이겨내고 놀라운 성장력보여준다. 


벨라의 일상은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갓윈은 벨라의 일상을 관찰하기 위해 의대생 맥스(라마 유세프)를 조수로 용한다. 맥스는 순수하고 엉뚱한 벨라에게 애정느끼지만, 변호사 덩컨(마크 러팔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바람둥이 덩컨은 벨라에게 여행을 제안하고, 호기심 많은 그녀는 동행을 결심한다.


벨라는 사람들을 만나며 색다른 경험을 하지만, 여행비 충당을 위해 프랑스 매음굴에 정착한다. 얼마 후 갓윈이 위중하다는 맥스의 편지를  영국으로 돌아온다.



가여운 것들의 향연


<가여운 것들> 말 그대로 '가여운 것들의 향연'이다. 창조자 갓윈은 심리적 결핍에 시달리는 인물로, 아버지로부터 학대와 폭력을 버티며 살아왔다. 조각난 피부와 신체적 외상은 불행한 어린 시절의 증거다. 그는 과학자의 권위를 위해 실험에 몰두하고, 아름다운 육체에 순수한 정신을 가진 벨라를 통해 내적 결핍을 채워나간다.


던컨은 의뢰인의 딸을 유혹해 세계일주를 떠날 만큼 충동적다. 벨라의 솔직하고 엉뚱한 매력에 끌리면서 쾌락을 추구하며 산. 술, 도박 등 원초적 자극집착하던 던컨은 벨라의 관섭하기 시작한다. 애정을 갈구하던 덩컨은 벨라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해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남편 알피는 모든 존재를 도구로 인식한. 가족과 하인을 소유물로 여기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권위를 높인다. 욕구 충족에 방해가 , 총기로 위협하는 등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다. 독단과 이기주의에 심취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만드는 독재자나 다름없다.


윈은 의학적 재능을 빌미로 생체 실험을 자행한 뒤 창조자의 위치에 자신을 놓는다. 덩컨은 내적 공허함을 술, 도박, 여자로 충족하며 대상 중독에 빠진다. 알피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소유하며 무너진 자존감을 세운다. 이를 종합해 보면 '가여운 것들'은 존재의 근거를 찾지 못한 채, 내적 결핍에 허우적대는 인간가리킨다. 대상을 소유하면서 내적 허망함(애정)을 채우려인물들을 말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욕망과 사랑, 그리고 해방


<가여운 것들>은 욕망과 사랑, 해방이라는 굵직한 주제를 다룬다. 먼저 본 작품에서 주의 깊게 본 것은 사랑이다. 갓윈의 사랑은 관조적이다. 벨라에게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은 채 상징계 기표(과학자, 아버지)를 획득하려 한다. 맥스의 사랑은 신사적이다. 벨라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동시에 관습적 질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반면 던컨의 사랑은 집착에 가깝다. 결혼을 방해하는 해방꾼으로 등장하면서, 치졸한 사랑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랑을 원했을까.


당시 여성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은 잔혹했다. 히스테리 여성에게 가한 의학적 고문(음핵 수술)은 성에 대한 불합리한 사고에서 비롯된다. 성욕에 대한 절제가 미덕인 사회 속에서 벨라의 파격적 행보는 놀라움 그 자체다. 욕망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매음굴에 들어가는 벨라. 그녀는 매춘의 질서와 규율을 바꾸거나, 놀이 방식으로 성행위를 즐긴다. 행위하는 주체로서 몸의 해방을 이끌어가는 벨라, 그녀는 지적 호기심과 성적 욕망을 추구하며 상징계의 질서를 뒤흔든다. 사회적 관습과 계층적 질서에 구속받지 않는 삶을 원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충적 기법


19세기 의학과 과학은 근대 사회의 초관심사였다. 이성적 사고를 통해 생명 연장뿐 아니라 기술 발전, 경제적 번영이 목적이었. 이는 이성과 감성,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과 같은 이분법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우월과 열등의 대립을 가져왔다. 이러한 정신적 폐허 위에 개인의 감성과 주관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문화 사조가 등장하면서, 개성과 자유를 인정하는 문화적 흐름이 일어났다. 그 뒤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 정치 경체 문화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가여운 것들>의 미장센은 신비하고 다채롭다. 영화 속 배경이나 의상은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는다. 보편적 계급 체계를 의심하면서 개성, 창조, 다양성, 절충성 등의 문화적 특징을 되살린다. 이성보다는 감성,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문화적 흐름을 수용하여 초현실적 공간으로 묘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색채의 대비로, 갓윈의 실험실은 진보와 발전을 중시하는 이성적 공간, 벨라의 여정은 감각과 본능을 중시하는 욕망의 공간으로 표현한다. 스크린을 흑백과 컬러로 대비하여 표현한다는 점, 건축과 의상을 주로 혼합적 양식으로 연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욕망의 주체로 는 건 단지 절제와 규제를 파괴하는  아니다. 욕망의 원리를 알며 헛된 환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 즉 행위의 주체가 되는 삶을 말한다. 벨라던컨과의 관계에서 본능을 알게 되고, 크루즈에서 철학의 의미를 깨우친다. 그 뒤 매음굴 사장으로부터 '연민의 감정 뒤, 경멸과 분노를 일 것이고, 그 뒤에 지혜를 깨우친'라는 삶의 통찰을 얻는. 결국 그녀는 누군가의 창조물이 아닌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 이를 종합해 본다면 카메라의 시선은 다의적 의미를 품는다. '유희를 향한 관음의 눈, 존재에 대한 연민의 시선, 지혜를 품은 철학자의 사색'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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