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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Feb 21. 2024

위기의 순간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연상호의 <부산행>

[ 사진출처: 네이버 ]


한국형 좀비의 탄생      


좀비는 아메리카 노예를 모티브로 캐릭터다. 부두교 주술사가 주민에게 약물을 주입한 후 강제 노역을 시킨 일에서 착안했다. 현재 좀비는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개그 소재로 사용될 만큼  익숙한 존재다. 추한 외모에 신체적 한계를 지니지만, 청각 후각 등의 감각이 뛰어나. 초기 생존자를 공격하는 악인형태가 많았다면, 최근 화학 실험이나 생태계 오염 등의 피해자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좀비라는 존재를 인식한 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98)>알려진 이후부터다. 그 뒤로도 <새벽의 저주>, <28주 후>, <나는 전설이다>, <월드워 Z>  등이 상영되면서, 국내의 콘텐츠 제작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최근 <킹덤>, <해피니스>, <지금 우리 학교는>, <창궐>, <반도> 제작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자발적 희생과 공동체적 삶     


<부산행>은 재난 영화의 골자를 그대로 따른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감염으로 전국이 아비규환 전쟁터로 바뀐다. 이에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기대했다면 실망감이 다. 그러나 관람 포인트를 드라마에서 맞춘다면 얘기달라진다. 감독은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 자매, 연인, 친구’ 등 관계를 묘사하며, 부성애와 모성애, 형제애, 사랑, 우정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뤘다. 


먼저 공유가 연기한 석우를 보자. 그는 증권사 매니저로 시장과 경제의 흐름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능력자다. 경제적 이익과 출세에 야망을 가진 인물이지만, 불성실한 남편이자 아빠다. 그는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주변을 챙길 여유나 의무조차 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난을 겪은 뒤, 타인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공감하고 배려하는 인물로 바뀐다.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 역은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이다. 자신이 가진 힘과 추진력을 남을 돕는 데에 사용한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동시에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다. 그는 감염자를 힘과 의지로 막아서며 승객들을 구조한다. 생존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위트를 잃지 않을 만큼 긍정적인 인물이다.


영국(최우식)어떤가. 신체 건강한 운동선수지만 어딘가 소극적이고 유약해 보이는 인간이다. 진희(소희)의 구애에 어찌할 바 모르지만, 우정의 소중함을 아는 순수한 청년이다. 감염된 친구를 구타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영국의 모습에서, 우정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부산행>에도 스토리텔링맞는 악인이 존재한다. 그는 천리마 고속 상무 용석(김의석)으로, 생존의 본능을 따르는 사람이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힘의 논리가 아닌 비열함의 논리로 살아간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에 따라 연대를 결성하고, 의리 따위 쉽게 쓰고 버릴 카드로 여긴다. 


<부산행>은 생존을 향한 이기심, 공동체적 삶을 위한 덕목을 제시한. 문제 해결을 위해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배려와 협력의 윤리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 외에도 재난 대처 방식의 허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익 창출에 눈먼 경영진, 윤리 의식 부족, 안전 대비 컨트롤 타워의 부재 등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만화적 상상력과 미장센     


석우(공유)가 딸 수안(김수안)을 데리고 서울을 떠나는 장면에서, 화재로 인한 잔여물을 눈처럼 표현한다. 화려한 도시가 지옥으로 바뀌는 상황, 그 참혹한 현실에 만화적 상상력을 덧입혔다. 자동차 창에 중첩되는 고층 빌딩은 화려한 도시와 불안한 현대인의 이중성을 함축한 장면이다.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의 특성이 돋보이는데, 그 속도감이 가히 충격적이다. 맹목적인 추격에 겹겹이 쌓이는 좀비의 모습이 섬뜩하다. 관객들은 이색적인 좀비 출연에 공포심과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죽음을 선택하는 석우를 그림자로 표현한 부분이다. 만화적 상상력이 더해지며 감정적 절정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에 관객들은 딸을 지키고 싶은 아버지의 부성에 안타까움과 동점심을 자아낸다. 


<부산행>은 클로즈업 샷 (Close Up Shot)이 많다. 얼굴의 변화나 신체의 떨림 등에서 느껴지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에 집중시키기 위해서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딸에 대한 석우의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사랑하는 딸을 지켜보며, 좀비로 변하는 아버지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좀비로 변하는 그 순간, 딸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라는 설정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부산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부산행>은 상업 영화의 조건을 그대로 따른다. 먼저 인물의 내적 변화, 영웅과 악역의 조화를 이루는 스토리텔링이 그것이다. 둘째,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들의 등장이다. 도가니에서 호흡을 맞춘 공유와 정유미, 마동석이 개성 있는 연기로 극의 안정감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속도감 있는 CG로 관객들의 시선을 강탈하였다. 한국형 좀비의 탄생과 만화적 상상력을 더한 미장센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만 모든 주인공이 희생을 강요받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자는 약자를 위해 희생하고, 여자는 모성적 희생을 감수한다. 문제는 이러한 희생이 자의적 선택이 아닌 일반적 규율로 그려지는 데 있다. 관객들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당연한 듯 묘사되는 부분에서 신파적 느낌을 받는다. 



필자는 <부산행>을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으로 요약하고 싶다. 인간의 다양한 군상세밀하게 표현했고, 인간에 의해 벌어진 대참사와 인간을 위한 덕목을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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