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을 거스르다.
화염이 하늘에 닿고,
그 소식을 자랑하듯
어두운 연기는 온 마을을 덮는다.
말 그대로 화마(火魔)다.
모든 이들이 나오려고 하는 곳으로
우리는 그들을 역행해 들어가야만 한다.
나의 시계는 이 장비들과 함께 돌아가기에
30kg에 달하는 이것들을 세심히 점검하며
나의 안위를 맡겨본다.
우리들에겐
짊어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가장 큰 빚이 있다.
아빠로서 일상을 함께 하지 못하는
나의 아들딸에게.
이제는 평범하게도
살아갈 수 없음을 인정할 뿐인,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함으로 잠을 청하고 있을
나의 아내에게.
지구반대편에서
크게 불이 났다는 뉴스 소식에도
떨리는 목소리로 서둘러 전화를 걸어오는
나의 부모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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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이 울린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다행히 지금 화재현장은 목격자의 빠른 신고로 아직까지 그 불길이 크진 않은 듯하다.
구옥이 태반인 오래된 동네들은 그 길목이 좁아 물탱크차가 진입하기 굉장히 어렵다. 길가에 주차된 나란히 이어진 차량들 역시 큰 장애물이다.
구옥들은 대부분 각각의 대문들을 통과해야 한다. 또한 길가에서 식별이 가능한 주택뿐 아니라 사이사이 이어진 길목 안쪽으로 옹기종기 자리한 가정집들이 많다.
하필이면 화점이 주택가들 안쪽에 자리한 가정집으로 예상된다. 도착하자마자 호스를 전개해 화점을 찾아 투입한다. 300도에 가까운 화염은 집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우리의 방화복 마저 태워버릴 것 같은 기세이다.
방수개시.
방수개시.
미처 탈출하지 못해 방 안에 갇혀있는 노인의 소리가 들린다. 검은 연기로 자욱한 집안을 랜턴에 의존해 수색하며 나아간다. 미리 준비한 망치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노인은 창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기진맥진한 상태로 흐느끼고 있다. 마스크를 씌워드리고, 서둘러 구조를 진행한다. 유독가스는 단 한 번의 호흡으로도 치명적이기에 호흡마스크는 화재현장에 필수적인 장비 중 하나이다.
남은 대원들로부터 화점을 찾았다는 외침이 들려온다. 방금 전 구조된 노인은 이 집의 거주자로, 물을 끓이기 위해 불을 올렸다가 잊은 채로 잠에 들어 미처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스프링클러도 없을뿐더러, 집 안 소재가 대부분 목재여서 불이 쉽게 붙은 모양이다. 다행히 부엌 창 맞은편, 앞집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본 이웃 덕분에 빠르게 신고가 이루어졌다.
서둘러 가스를 차단하고, 수압을 높여 불길을 진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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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하러 가는 길.
휴게실에서 요리하다가 뛰쳐나와
음식이 걱정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 외 실없는 농담들이 오고 간다.
가수면 상태에서도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신입대원도 보인다.
긴장이 잠시 풀린다.
어느 누구도
아무 소리 없이
복귀하는 날들을
반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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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별일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로 아내를 불러본다.
아내 역시 미리 준비한듯한,
별일 아닐 줄 알고 있었다는
태연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