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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나in나 essay 30

by 나in나



우리게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누군가와 함께한 계절이 있었다. 웃고, 울고, 다투고, 화해하고... 그 사람이 전부인 듯이. 그 사람과의 시간을 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라 여기며. 어설프고 서 꽃을 피고 사랑이라 부르. 모든 사랑이 영원한 것을 우리는 분명게 배웠다.


이별은 우리조용히 변게 한다. 함께였던 기억이 문득문득 떠르는 순간,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꺼려지거나, 무심코 들려오는 노래에 마음이 저리다. 수가 줄고, 는 게 웃는 게 아닌 게 되고, 마음은 닫혀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사랑이 끝났을 때, 한동안 지나간 시간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익숙했던 말투와 습관,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온기까지도 아프게 맴돈다. 남아진 상처는 새로운 시작을 두렵게 한다. 또 아픈 사랑이 될까 봐, 이별하게 될까 봐. 떠난 이의 빈자리가 어색해서 억지로 잊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은 잊으려고 할수록 더 단단해진다. 지나간 사랑을 잊는다는 것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 일이다. 과거의 기억에 매여 살지 않는 것이다.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끝난 사랑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인정한 후에는 어떤 면에서 긍정적인 성장을 했는지, 어떤 점이 맞지 않았는지, 어떤 언행이 싫었는지, 어떤 점이 상처를 주었는지, 다시 사랑을 한다면 어떤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지 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러면 예전 다르게 지금의 내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짚어볼 수 있게 된다. 이별 후 달라진 나를 깨닫게 된다. 변화된 나와 맞는 새로운 상대와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신뢰를 가지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참 묘하다. 상처받았다며 또다시 사랑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천천히, 조용히 마음을 두드린다. 다정한 말에 흔들리고, 작은 배려에 마음이 움직인다. 이별의 조각을 안고서 다시 누군가를 보고 미소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해 보는 것도 아닌데 새로운 사랑 앞에서는 마치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어설프고 또다시 서툴러진다. 이별의 상처와 흔적 위에 조심스럽게 새 마음을 얹으며, 천천히, 따뜻하게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끝난 관계의 기억에 갇혀 현재를 잊고 살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토대로 다가올 새로운 인연은 더 지혜롭게 시작하고, 더 현명하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한 성패의 교훈들을 현재에 적용하거나 미래를 준비하는데 참고한다. 그러다 보니 다시 이별하지 않으려고 자꾸만 과거의 감정과 기억을 들춘다. 예를 들어 "이런 행동은 00가 이럴 때 했던 행동이야"라고 과거 연인과의 경험에 비추어 현재 곁을 지키는 이의 행동과 말투 등을 예측하거나, 침묵 속에 서로를 파악하거나 단정 짓기도 한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인데 왜 자꾸 끼워 맞추려고 하는 걸까?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예측하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라고 할 수 있지만, 연애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놓고 바라보는 것은 새로운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상처가 된다. 과거의 경험에 의한 잣대는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 독이 될 뿐이다. 조심스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난 만큼 조금 천천히, 조금 더 솔직하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그 안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개성적이며 고유의 향기를 지닌다. 그만의 사정이 있고 그만의 상처를 안고 산다.러므로 새로운 사랑은 완전히 새롭게 대해야 한다. 비교하지 말고, 예전의 흔적을 덧씌우지 말고. 새로운 사람의 지난날을 모두 품은 채, 사랑할 용기를 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다시 사랑은 시작된다. 설령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새로운 사람을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 온전히 새로운 사람 그대로 보아야만, 새로운 관계의 새로운 사랑이 가능하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이전에 만났던 누군가와는 전혀 다른 존재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투도, 생각도, 사랑을 주고받는 방식도 다르다. 과거의 실패를 이유로 이전 연인의 그림자를 새 사람에게 덧씌우고 밀어내는 태도는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을 기회를 놓치게 한다. 이전의 기억을 되짚으며 새 사람을 해석하는 순간, 점점 이별만 가까워진다. 과거의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편견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기본자세다.


새로운 사랑은, 이전 내가 아닌 새로워진 나에게 온 새로운 사람과 함께 는 것이다. 거의 나를 굳이 꺼내 보일 필요는 없지만, 나의 현재를 솔직하게 보여주려면 내가 어떤 상처를 갖고 있는지, 어떤 순간에 불안해하는지, 어떤 때에 기대고 싶은지, 두려움도, 나약함도 숨기지 않고 말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진심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 앞에서 가식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진짜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연인 관계에도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상대방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비추어보게 되고, 나도 몰랐던 감정과 생각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낯설지만 새로운 사랑 속에서 함께 배우며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 앞에서 서툴고, 때로는 아프다. 이별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새롭게 사랑하며 사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사랑의 경험은 실패가 아니다. 그 시절의 내 그릇만큼 사랑하는 법을 경험했고,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그만큼 더 성숙하고 더 깊이 있는 사랑을 할 수 있는 바탕을 쌓은 것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다만 지금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을 가장 아끼고 싶은 진심에서 시작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모든 사랑이 처음에는 설레지만, 그 설렘이 오래가려면 그 바탕에는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 신뢰는 한순간에 생기지 않는다.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시간들을 견디고, 때로는 오해하고 부딪치면서 차츰차츰 쌓여간다. 때로는 엇갈릴 수도 있고, 서로를 잘 몰라 서운할 수도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기다리며 알아가려는 의지와 노력으로 관계는 유지되고 깊어진다.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를 보완해 줄 누군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함께 찾으며 전진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불완전하지만 조금씩 맞춰가며 함께 성장하며 완성해 가는 것. 그것이 영원하고 진정한 사랑 결실을 맺게 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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