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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망각

나in나 essay 34

by 나in나



깊은 슬픔에 잠겼다가도 빠져나오게 되는 순간, 새로운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샘솟던 순간. 우리는 깨는다. 망각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망각함으로써 부서지지 않고 견디며 살 수 있었다.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기억은 망각하는 것이다.


뇌는 기억을 단순히 저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구성하고, 수정하고, 활용한다. 너무 아픈 기억은 조용히 덜어내고, 다듬고, 지운다. 기억은 리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 것인지 선택한다.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혹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행복을 느끼도록 기억을 재단한다. 완전하지 않은 채로, 때로는 왜곡된 채로 기억은 저장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로 최대한 다듬는다. 그 이야기는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기억이 되어준다.


러한 기억의 모든 왜곡과 망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기억은 거짓보다 더 깊은 진실을 품는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기억이 지금의 우리를 살게 한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기억을 맞이하고 채울 수 있다. 망각 덕분에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더 살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망각은 살기 위한 자연스러운 뇌의 필터링 시스템이다.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위대한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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