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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Jun 19. 2024

15. 빗방울, 비비탄되어.

2024. 3. 14 El calafate->El Chalten

  세계 3대 미봉이라는 피츠로이를 만나기 위해 엘찰텐으로 향하는 날!

원래 우리는 엘찰텐에 가면, 피츠로이 poincenot캠핑장에서 캠핑을 하고, 새벽산행을 해 정상에 올라, 불타는 일출 속 피츠로이를 보기로 했었다.

그. 러. 나. 예상대로 되면 여행이 아니지.. 훗. ㅠㅠ

어제 일기예보를 보니, 엘찰텐/피츠로이 강수확률 80%, 강풍예보, 최저온도 -9도. ㅡㅡ;;;;;;;

비 맞으며 캠핑하고, 덜덜 떨며 텐트에서 잔 뒤, 우중 새벽산행? 이건 자살행위라고 생각한 나는 깔끔하게 캠핑을 포기하고, 숙소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비 내리는 정도를 보면서 당일 산행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래도 고대하던 캠핑을 포기하기가 너무 아쉬워서 고민고민하다가 온이에게 이 계획을 이야기하자, 온이의 입꼬리가 씰룩씰룩거린다. (좋아서)

TDP에서 죽을 고생을 한 온이는 아직 산에 다시 오르고 싶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거의 팩트임)

MZ 세대의 검색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며 엘찰텐 숙소를 찾아내어 바로 예약까지 해버린다. 그... 그래... 네가 좋다면 나도 좋아.. ㅋㅋㅋㅋ

아쉽게도 캠핑은 무산되었지만, 최소한 다음날 날씨가 좋아 낮에라도 등산에 성공할 수 있길 바라본다.


새벽녁 엘칼라파테를 떠나며...




  그리하여 오늘은 캠핑하는 날에서, 엘찰텐의 숙소로 이동하는 날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Ruta40을 타고 시원하게 달려 엘찰텐으로 간다. 거의 도착했는데 날씨가 맑다. '일기예보가 잘못된 건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엘찰텐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비바람이 몰아친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이 비를 뚫고 어떻게 숙소까지 가지?


Ruta40을 달리다 만난 La leona 휴게소! 슬슬 먹구름이 생기기 시작


  일단 우비를 입고 몬스터와 작은 몬스터를 앞뒤로 메고, 모자까지 뒤집어쓴 뒤, 비장한 마음으로 빗속으로 걸어 나가본다.

우와 대박!!!
 


  빗방울이 비비탄 총알처럼 얼굴에 박히는 느낌이 뭔지 아는가? 나는 안다. 볼따구가 아파서 대역죄인처럼 얼굴을 푹 숙인 채 걸어야 했다.

강풍을 타고 빗방울이 느낌상 각도 45도로 들이치는데, 눈을 뜨기가 힘들다. 빗방울에 두드려 맞는 느낌.

캠핑은 무슨 캠핑. ㅜㅜ




  비 맞은 생쥐 꼴로 숙소에 도착한다. 비에 두드려 맞아 정신이 하나도 없어 망연자실 앉아있는데 온이가 내 꼴을 보고 깔깔거린다. ㅋㅋㅋㅋㅋ 나도 어이가 없다. 이 정도로 비를 맞아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비 맞은 생쥐


   아직 방이 준비되지 않아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다녀오기로 한다. 엘찰텐은 동네 전체가 아예  LTE가 되지 않아, 인터넷 사용이 불가하다.  Wifi가 잡히는 곳에서만 비밀번호 입력 후 한정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쿠바공화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구나... 너무 작은 마을이라 그런가... 한국에선 한라 꼭대기에서도 인터넷은 되는데...)

  그래서 숙소나 주변 마트를 찾을 때에도 스마트폰 이전 시절로 돌아간 듯 미리 다운받아둔 아날로그 지도를 보던지, 두 발로 걸으며 찾아보아야 한다.

이 빗속에서 슈퍼 찾으러 갈게 불쌍해 보였던지  숙소 아주머니가 태워다 준 작은 슈퍼는 소소하지만 없는 건 없는 만물상 느낌이었다.

숙소에 한번 들어가면 다신 나오지 않을 마음으로, 오늘 먹을 저녁과 내일 산에 가져갈 간식을 구매한다.


  다시 비 맞은 생쥐 꼴로 숙소에 도착한 우리. (아주머니는 우릴 내려놓고 다시 어디론가 가심)

비바람에 지친 우리는 얼른 씻고 침대에 누워 골골대다가 파스타를 해 먹는다. (나 말고 온이가. 온이는 요리를 잘한다. 온셰프, 그라시아스.)


올리브유 반통 쓴 오일파스타 ㅋㅋㅋ


  그리곤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 하루를 보내본다. 여행 중에 이렇게 침대에서 나가지 않고 드러누워 있는 일은 나에게는 이례적인 일인데, 침대에서 보이는 창 밖의 나무들이 불쌍하게 머리채를 쥐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나갈 마음이 싹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내일은 나 혼자 피츠로이 봉우리가 절경이라는 Laguna de los tres까지 올라갔다 오기로 했다. 온이는 역시나 등산 포기를 선언. ㅋㅋㅋ

제발 내일은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나 홀로 산행이 무서워서 유튜브를 좀 찾아보니, 날씨가 허락해주지 않아 그야말로 개고생만 하고 제대로 풍경도 못 본 사람들이 수두룩하더라.

내일 나는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필요시 포기하고 내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시도는 해 볼 작정이다.

  비바람이 잦아들고, 날씨가 허락해 준다면 정말 좋겠다. 구름이 거짓말처럼 걷히고, 미봉 피츠로이가 내 눈앞에 드러나 준다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을 하며 긴장감에 선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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