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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나 Sep 18. 2024

저녁시간

심장이 너무 떨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해야 할 일을 미뤄둔 채 계속 글을 끄적인다. 아마도 아이스커피를 두 잔 째 벌컥거리면서 마시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지만 작가 선정 메일을 받고 난 이후의 떨림과도 시너지 효과가 생겼을 수도 있다. 뭐라도, 손가락을 자꾸 움직이고 싶은 이상한 기분.


 하지만 저녁 시간이라 얼른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끼니는 내가 챙겨야 할 몇 가지 안 되는 일들 중 하나. 꼭 차려 먹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메뉴를 고민해서 결정하고 시키던지 만들던지 해야 한다. 당연히 다른 식구들은 시키거나 외식하는 걸 더 좋아하지만 전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마냥 시키는 건 나의 양심이 콕콕 찔린다. 미식에는 관심이 없어 사실 요리에도 소질이 전혀 없다. 맛보다는 배를 채우기 위해 끼니를 때우는 편이다. 어서 과학기술이 발달되어 알약 하나로 허기를 없애고 필요한 영양분을 채울 수 있다면 너무나 좋을 텐데.


 지난겨울이던가. 영감님과 뮤지컬을 보러 가던 중이었지 아마. 재미있고 즐거운 기분이 가득한 와중에.


- 영감영감, 나랑 결혼한 거 어때?

-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 갑자기? (가족끼리 그런 질문하지 않는 게 불문율 아닌가)

- 그냥, 나는 영감님 덕분에 조기은퇴도 하고, 하고 싶던 운동도 하고, 좋은 공연도 보러 다니고 좋아서. 고마워.


 희망퇴직을 한 이후로 경단녀, 혹은 전업 주부 타이틀을 달고 다니다가, 그날 이후로 나는 내 마음대로 조기 은퇴자라고 자칭하고 다녔다. 좋아. 일을 하면 좋겠지만 굳이 일을 못 구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지. 게다가 아직 손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고. 물론 내가 손을 떼도 아이들이 알아서 자신의 몸 하나 챙길 만한 나이가 되었지만 급하게 손을 떼지 않아도 될 터이다. 


  오랜만에 부대찌개를 먹기로 했다. 저녁을 먹다가 문득 영감이 이야기한다. 


-앞으로 무얼 할 거야? 은퇴하고 싶었는데 이미 했잖아.

-하하하 그렇지 은퇴는 했지.

-은퇴하고 싶은 일이 있어?

-글쎄, 음, 글을 쓰고 싶어. 

한 3년쯤 후에는 다른 일을 구해서 월급 생활도 같이 하고.


입이 근질근질하다. 하필이면 브런치 작가 선정된 날 이런 걸 물어보다니. 됐다고 이야기할까. 아냐 아직 아직이야. 아직 낯간지럽고 부끄럽다. 그러게 앞으로 무얼 할까. 


 그날 밤에는 둘째와 같이 잠드는데 귓가에 속살거린다. 요즘 한창 하고 싶은 게 많아진 아이. 선생님도 되고 싶고, 아이돌도 되고 싶고, 미용사도 되고 싶고, 화가도 되고 싶고, 보석디자이너도 되고 싶고. 세상 모든 게 되고 싶은 아이.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 왜?

- 그럼 꿈을 많이 이룰 수 있잖아, 

  엄마 엄마는 어른이잖아, 엄마는 무슨 꿈을 이뤘어?

- 그러게, 엄마는 무슨 꿈을 이뤘을까.


 엄마는 이제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는데. 

 이룰 수 있을까.

 엄마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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