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이었다.
남편과 오래 간만에 영화를 보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명절을 앞두고 제사가 기다리고 있다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일상적으로 그냥 지나가듯이 얘기했다.
나는 제사가 다가오는 일주일 전부터 변비가 심해져서 화장실을 못 갈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우리 이혼하자’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혼?’
‘어. 난 더 이상 우리 부모님을 욕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라고 말하며 이혼을 요구했다.
그 말을 듣는데 그냥 일시적으로 화가 나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나는
‘불편하게 들었다면 미안해. 나는 모든 며느리들이 그렇듯 제사 지내는 게 쉽지 않다는 뜻으로 말한 거야. 듣기 불편했다면 미안해’
사실 난 그 사람이 외도를 했을 때에도 그 여자에 대해 더 이상 캐묻지도 않았고 그 사람과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나에게 갑자기 이혼 요구를 하는 남편을 보며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혼 요구를 해도 내가 했지 주객이 전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남편 눈에는 내가 멀쩡해 보였을지 몰라도 나는 아직 그 상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었다.
‘오빠 왜 그래?’
‘난 행복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나도 남편이 나랑 살면서 쭉 바람 핀 것을 알고 내 스스로 자해할 정도로 행복은 둘째 치고 아예 삶을 살고 싶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해야 했고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어떻게든 상대방 여자를 찾아내서 뒤집어 엎어 버렸을 텐데 어차피 같이 살기로 결정한 마당에 굳이 그 여자를 만나서 그 난리를 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게 된다면 그 여자의 얼굴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서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나한테 이런 상처를 주고 오히려 내게 행복하지 않다는 남자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부부로 살면서 이런 저런 풍파를 겪기도 하고 위기도 찾아 올 텐데 그럴 때 마다 자신의 배우자한테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으니까 이혼하자고 한다면 이혼한 사람들로 넘쳐 날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당신이 요새 회사에서 꾸준히 스트레스 받고 사실 시댁과의 갈등도 있어서 그러는 거 같은데 이 두 가지 이유로 행복하지 않다는 거야?’ 라고 물었다.
‘회사 일도 그렇고, 더 이상 우리 부모님 욕 되게 하는 것도 싫어. 지금은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누군가를 내가 보살 필 수 있는 여유가 없어. 그냥 나 혼자 있고 싶다는 얘기야. 그런 의미로 행복하지 않다고 한 거야’
‘그럼 나에 대한 마음은 어떤 마음이야?’
‘너를 싫어하는 마음이 아니어서 헤어지는 과정이 힘들거야. 어쩌면 이혼하고 나서 언젠가 이때의 결정을 후회할 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그래’
난 결혼 생활 내내 아니, 연애할 때부터 이 사람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면서 살았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자그마치 11년이다.
남편이 없는 삶을 상상 할 수 없었기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면서 나는 매달렸다. 심지어 빌면서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남편의 결정은 너무 확고했다.
카페를 나와서 집으로 가는 내내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나에게 일단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다.
자기는 회사에 말하고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녀 올 거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렸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의 이기적인 모습에 화가 났고 그만큼 한편으로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하나 생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머리 속이 복잡했다.
친정에 들어가자마자 남편한테 다시 전화를 했다.
남편의 핸드폰은 이미 그 사이에 꺼져 있었다.
연결이 안 되자 불안함 마음에 손이 많이 떨리고 있었다.
시댁 부모님께 제발 이 사람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이 받으셨다.
근데 이미 알고 계셨다.
나는 그 사람이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계속 노출되어 있어서 일시적인 감정으로 극단적으로 나가는 것 같으니 말려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님은
‘행복하지 않다고 하잖아’ 라는 이 한마디만 했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며느리인데 이렇게 말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때부터 다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가게에 있는 친정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해? 이 사람이 이혼하재’
‘뭐라고?’
‘엄마 나 어떻게?’
‘아무래도 그 여자와 계속 연락하는 것 같은데 내가 잘 말해서 떳떳하다면 핸드폰 통신 기록을 빼 오라고 해 볼게’ 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나중에 이혼을 준비하면서 엄마가 자네가 떳떳하다고 하니까 통신 기록을 볼 수 있냐고 했더니 그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었다.
나 같으면 헤어지는 마당에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그게 억울해서라도 보여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통신 기록지를 떼오지 않았다.
우리 집은 충격으로 인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정지된 상태였고 대화도 없었으며 집안 분위기는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전화가 계속 꺼져 있는 일주일 동안 매일 매일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마치 일주일이 일년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일주일이 지났고 그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난 혹시나 내 문자 메시지나 음성 메시지를 듣고 마음은 변하지 않았을까 라는 심정으로 전화를 계속했다.
또 일주일 동안 휴가를 받아 여행을 했으면 마음이 가벼워 져서 이혼을 번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사람은 내게 전화를 해서 이혼을 해야 하니 부평구청으로 오라고 했고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남편이 외도를 했을 때 우리 집이 자신의 부모님을 모욕했다며 불쾌해 했다.
이런 말이 있다.
남자가 결혼 하면 효자로 바뀐다는 말.
결혼 전 남편은 시어머니가 뭐라고 말을 걸면 택택거리는 타입이어서 옆에 있는 내가 더 민망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반면 결혼 하고 나서부터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커졌다.
남편은 자신의 행동은 돌아보지 않고 이런 것들을 가지고 내가 시댁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며 더 이상 우리 부모님을 욕하는 게 싫다며 이혼을 요구한 것이다.
이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기면 여러 시각에서 신중하게 복합적으로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단순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스타일이다.
남편이 외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쉽게 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울며불며 매달린 게 너무 후회된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가사 도우미로 살게 한 너 같은 인간이랑은 더 이상 못 살겠다. 그리고 나를 기만하며 바람 핀 남편은 나도 필요 없어! 그래 효자 나셨으니까 좋아하는 부모님 부양하며 평생 살아.
헤어지는 순간 미련을 갖지 말고 나 또한 당당하게 말하며 되돌아 왔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가정을 지키려 했던 나는 이혼 도장을 찍는 그 순간도 마음이 바뀌면 돌아오라며 거지같이 매달렸었다.
우리의 이혼이 확정되는 날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나는 애써 담담한 척 웃고 당당하게 그 사람 앞을 지나쳐서 먼저 내려갔지만 그 날의 걸음은 내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이혼 하는 날 판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직 둘 다 젊고 결혼한 지 얼마 안됐는데 진짜 이혼을 하고 싶습니까?’
나는 계속 꿀 먹은 벙어리였다.
이 남자만 대답했다.
‘네’
그리고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본다.
근데 내 주민등록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 나는 내 의사로 이혼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신이 아예 없었다.
옆에서 그 남자가 가르쳐 주길래 그 때 주민등록번호를 말할 수 있었다.
이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이면 충분했다.
내가 이혼을 결정한 이유는 그는 결혼 후에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또한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을 굳이 내가 옆에 두고 같이 산다면 내 영혼이 점점 썩어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사람과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혼인 서약은 결혼식 때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도 나에게 실망하거나 불만을 가진 것이 있을 것이다.
백퍼센트 내가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부부라는 것이 끝까지 서로 균형을 맞춰 살면서 사는 것이지 서로 다른 것을 깨닫고 그리고 불만을 토로하며 이혼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그렇게 쉽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그 사람을 붙잡았던 것이다.
난 젊은 20대들이 서로 알콩달콩 하며 지내는 모습도 순수해 보이고 부럽지만 제일 부러운 커플은 백발이 되고 주름이 가득한 노부부의 모습을 가장 부러워한다.
그 한 평생 두 분께 얼마나 많은 시련과 갈등이 있었겠는가.
지금은 서로 대화도 없고 애정도 없어 보이는 노부부로 보이지만 다 키워 놓은 자식들은 자기들 살기에 바쁘기 때문에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는 모습들을 TV에서 보면 난 그 모습이 제일 아름다워 보인다.
왜냐하면 내가 지키지 못한 모습이고 이제는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서약과는 달리 한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
영원을 맹세한 여자에게 당신은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다.
누군가에게 내쳐지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이혼이 확정되는 이혼 숙려 기간 동안 새로 만난 남자가 있다고 하면서 반지를 끼고 갔었지만 그건 내가 초라해질까봐 한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원래 그 반지는 내가 고등학교 들어갈 때 엄마가 선물 해 준 반지였다.
그는 아내였던 나 대신 끝내 자신의 부모님을 선택했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에게
'힘들었던 내 삶에 당신이라는 선물을 유일하게 하느님이 선물해 주신 것 같다‘ 라고 한 말을 취소하고 싶다.
그는 이혼하자마자
‘전에 내가 바람 폈을 때 너가 자해한 적이 있잖아.
혹시 이혼하고 나서 너가 자살을 시도해도 그리고 자살해도 난 이제 상관없어.
그런 소식 듣고 싶지 않아‘ 라며
나를 수신 차단 해 놔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다.
이 사람은 헤어지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하는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가 한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보고 빨리 재혼해서 애 낳으라고 말씀하시던데’
아이를 갖지 않은 것은 그와 나의 동일한 의견으로 우리는 딩크족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혼하기 전부터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시부모님에게 말하고는 했는데 시댁에서는 아무래도 착한 당신의 아들의 결정이 아닌 나의 결정만으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건 아닌지 계속 의심했다는 간접적인 증거였다.
그래도 당신의 며느리였던 나에게 마지막으로 전화해서
‘우리 아들이 이렇게 이혼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니 너의 속이 어떻겠니? 그러나 싫다는 사람 붙잡고 사는 것도 고욕이니 너도 좋은 사람 만나 새 출발 하기를 바란다’ 라는 따뜻한 한 마디를 끝까지 기대하고 있었던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나랑 헤어지고 나서 당신이 원하는 행복을 얻었을 테지만 이혼 한 이후에 내가 홀로 겪어야 했던 시간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은 내가 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아파했는지 너무 후회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2012년 9월 14일에 이혼 했다.
지금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래서 행복하니?’
p.s 그리고 그는 이혼이 확정되는 날 내게 손편지를 건네 주었다.
현진아
이제 네 이름 석자만 적어도 눈물이 나는구나.
오늘 이 시간을 난 많이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아프고 또 아프고 바보같은 이런 결정에 미안하고 미안해.
돌이켜보니 좋았던 것만 생각나고 너와 난 행복했던 것 같아.
다시 날 계속 생각하며 살지는 마.
현진이 몸 잘 챙기고 꼭 성공하길 매일매일 기도할게.
십년간 못 난 남자 곁에서 고생했고,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다시 널 못 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현진이는
내 생애 유일한 only one 이라는 거......앞으로도 계속......
우리 행복해지자. 행복하렴......
정말 고마워......
p.s 너와 만나고 헤어지는 그 시간과 순간들이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시간 속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2012.9.14
마지막 못난 오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