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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12. 2024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다

 아빠가 정신과를 찾았을 때가 내가 20대 초반 대학생 때이다.

 내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아빠는 완전히 심각한 알콜중독 상태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술로만 살았다.

 대학교 때의 가정폭력은 내 인생 최대로 힘들었을 당시였던 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정말 오랜 기간의 설득 끝에 아빠를 

데리고 정신과를 찾았는데 정신과에서 진단 받은 진단명은 심각한

 알콜 중독 및 양극성 정동장애와 분노조절장애였다.

 양극성 정동장애라는 것은 기분이 들뜬 상태인 조증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는 우울증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조울증' 이라고 

부른다. 이는 기분·생각·행동 등에 극단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증상이다. 

말 그대로 중간이 없이 조증과 우울증의 양극을 달리는 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조증에서 갑자기 우울증의 양상을 보일 때 화가 나면 화를

 주체 하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까지 갖고 있었다. 본인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힘들어 하는 병이다.

 아빠는 한번 화가 나면 분이 풀릴 때 까지 살림을 부신다거나 

폭력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분노가 조절되지 않기 

때문에 장시간 동안 우리 가족을 괴롭혔다. 

 분노조절장애는 증상이 심하면 심지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무서운 질환이다.

 어렸을 때는 그저 아빠 성격이 변덕스럽다고만 생각하고 기분이

 갑자기 좋았다가 나빠졌다가 해서 우리 가족은 아빠의 기분을 

항상 살피며 살아야 했다.

 원래 집이란 편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우리 가족은

 항상 긴장 상태였으며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하는 불편하고 무서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알콜 중독은 아주 오래 전부터 말썽을 부렸던 불행의 씨앗이었다. 

술을 참 좋아했고 술만 마시면 난폭하게 변해 가정폭력을 휘둘렀다. 

 아빠가 술만 마시면 바로 가정폭력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어렸을 때

 도대체 이 술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원망하고는 했었다.

 왜 아빠 하나로 인해 엄마, 나 그리고 동생은 고통 받아야 하는지

 너무 원망스러웠고 이래서 술이 가족 구성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즉, 마음과 정서는 항상 억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난 내가 받은 충격과 고통, 두려움을 어디에도 이야기 하지 않고 

이 상황을 참아내고 이겨내 보려고 혼자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런데 내 감정을 억압한다는 것은 마치 빈 유리병에 휴지를 넣고 

또 쑤셔 넣고 그러다 더 이상 넣을 공간이 없어 꽉 막힌 유리병이 되어 

숨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감정을 억압하면 언젠가는 다양한 형태로 몸과 마음의 이상 반응으로

 일으킨다. 억압된 감정은 우울증, 무기력증, 불안증, 불면증, 강박증

 같은 신경성 질환으로 나타나고 한다. 

 그래서 가정폭력으로 인해 억압된 감정은 가해자에 의해 정신 장애를

 입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이 찾아오면 나중에 

성장해서도 꿈과 목표 따위는 없고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 보다는 

그냥 흘려버리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가출을 하여 

범죄에 노출된다거나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서도 아무런 의지와 

열정, 노력 따위는 칮아볼 수 없다. 그리고 자기 안으로 더 숨어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새 본인이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힘들게 버티고 버텨 오다가 한창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때였던

 대학생 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전혀 못 느끼게 되었고 삶의

 재미 따위도 없었다. 그냥 이쯤에서 끝내도 아쉬울 거 없는 인생이라

 생각할 정도로 떠 올릴 만한 좋은 기억도 없었다.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못 느끼는 순간 사람은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죽을지에 대해 방법을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도 자살의 유혹이 찾아 왔을 때 살아 있는 동안에도 고통스러웠는데

 죽는 그 순간까지 고통 받으며 죽어 가고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손목을 긋는다거나 목을 메기는 싫었다.

 술을 못 마시니까 소주 1병을 마시고 아파트에서 떨어지자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날아 내려가는 기분이 어떤 걸까 라고 생각하며

 자살로 인해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자살의 충동만을 느낀다면 나중에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행동으로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악플로 인해 고통 받아 자살한 수많은 연예인들이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평소에 얼마나 밝은 사람이었는데...’ 라고

 억압된 사람들은 무의식에 감정을 가두어 두었기 때문에 밖에서 타인을 만날 때

 이상 증후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살한 이에 대해

 생전에 보통 평범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밝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무렇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감정이 한계를 넘게 되면 갑작스럽게 폭발하기 때문에 한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

 같은 피해자였던 불쌍한 엄마에게 나를 둘러싼 환경이 그리고 살아가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차마 말하지 못 했었다. 근데 내가 너무 괴로우니까

 엄마에게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사는 게 재밌어?’

 딱 이 한마디였다.

 이렇게 내 영혼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신체적 증상으로는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고 안면 마비가 오는 등 매우 고통스러웠다.

 두통약 한판을 먹어도 약은 전혀 듣지 않았다.

 그 때 당시에 엄마는 나를 그냥 두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과에

 나를 데려갔고 심리검사 결과 굉장히 불안한 상태로 우울감이 매우 크다는

 진단을 받았고 상담만으로는 해결될 단계가 아니니 약물 치료를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때 뉴스에서 누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내용을 접하면 마치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또한 마치

 나에게도 언젠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이 들었다. 그래서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렸다.

 이런 심리상태에 있을 때 정신과 약을 먹는 것에 두려움과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는 절대 안 된다. 마치 암에 걸리면 항암 치료를 

하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 치료를 해야 한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주변 사람들이 정신과를 다니거나 약을 

복용하는 것에 대해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심리에 이중성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아쉽다.

 예를 들어 연예인들이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고

 하면 대체로 ‘감기와 같은 것이니 치료 잘 받으세요’ 라며 위로를

 해 주면서 가까운 친구 중 누군가가 고백을 하면 앞에서는 

‘얼마나 힘들겠니’ 라고 말하면서 뒤에서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고 의지가 약해서 걸리는 병이라는 둥 ‘정신병자’ 혹은

 ‘약쟁이’ 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게 댓글에 쓰는 것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은데 어떻게 내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다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내의 성장 과정과 가정환경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내가

 남다른 삶을 살아 왔다고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

 내 인생을 살듯이 각자의 인생은 따로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은 누구나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계속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현대인의 병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들에 대한 편견을 버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치유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과 시선을 고쳐야 한다.

 옛날에는 아이를 훈육할 때 어린 아이의 옷을 전부 벗겨서 내 쫒는

 벌을 간혹 주는 집이 꽤 있었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고를

 하는 게 아니라

 ‘아이고, 엄마한테 쫓겨났구나? 창피해서 어떻게? 춥지?’ 하며 그냥

 웃으며 지나가는 것이 대다수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옛날에 다 큰 나이인데도 이불에 오줌을 쌌다고 팬티만

 입히고는 얼른 가서 소금 얻어오라는 벌을 마치 내려오는 전통처럼 여기고는 했다.

 나도 그랬고 내 남동생도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위, 아래 속옷만

 입히고 겉옷은 벗겨서 집 밖으로 내 쫓긴 적이 있었다.

 그렇게 쫓겨 나가면 누가 볼 까 봐 숨을 데를 찾지만 숨을 데가

 어디 있겠는가? 혹시라도 엄마, 아빠 마음이 변해서 문을 열어

 주겠지 하며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근데 그 와중에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고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서 자꾸 나로부터 자신의 문제점을 찾는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하게 된다.

 내 친척 중에 나와 한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언니와 

오빠가 있는데 어렸을 때 밖에 눈이 많이 온 크리스마스 날 

둘이 싸웠다고 혼나서 완전히 발가벗겨져서 집 밖으로 

쫓겨났고 너무 추워서 앞에 있는 교회로 들어가 계단에서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옛날에는 

왜 어른들이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 아마 이런 일이 일어나면 큰일 날 것이다.

 즉, 아동학대는 인식의 차이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아동 학대 실태 조사에 따르면,

 가해자의 79.7%가 부모로 조사되었으며, 아동 학대 

유형으로는 복합적 학대가 41.4%, 방치 33.3%, 심리적

 학대 13.8%, 신체적 학대 6.9%, 성적 학대 4.5%로 나타났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의식이 선진화되면서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이 점차 줄어

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발생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미 지배되어 억압되어 있는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자신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은 매우 위험한 범죄이다. 

 요즘은 가정 폭력을 당하는 아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고 처벌 수위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학대와 폭력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면서 신고 비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처벌 수준은 제자리걸음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 받은 비율은

 2018년 기준 각각 46.5%, 27%에 달한다. 반면 실형을 

선고 받은 비율은 13.6%에 그쳤다.  

 그리고 가정폭력의 피해자 아동의 경우는 언젠가 자신의 

부모에게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기막힌 현실에 노출되어 있다.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서 학대에 노출되면 트라우마는 

평생 지속되는데 그건 곧 어떤 형태로 사회에 파장을 미친다.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며 무엇보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사후 관리 시스템이 이들을 지켜줘야 한다. 

 가해자에게는 마땅한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게 학대 신고 이후 이런 시스템으로 

너희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않는다면 초기 단계에서 

폭력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지 못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단계에서

 구출될 것이다.

 의식과 상식을 따라 가지 못하는 법은 없는 것과 같다.

 만약 내가 학대를 당할 때 주변인들의 가정폭력에 관한 

의식이 지금과 같았다면 그리고 성숙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 어떤 누구도 그리고 어떤 법이나 제도도 엄마와 나를 

구출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의 반만 되는 처벌적 제도가 있었다면 나는 그나마 

폭력 밖으로 나와 숨통을 틀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어쩌면 그동안의 억압과 스트레스로 인해 뉴스에서 

폭력적인 사건을 접하는 것만으로 큰 불안을 느끼며 떨고 

스무살 청춘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지금까지도 끔찍한 아동학대로 인해 한 아이가 생명을 

잃었다는 기사를 보면 내가 겪었던 그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사람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기까지 폭력과 갖은 

학대를 할 때 피해 아동이 얼마나 겁나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했을까 싶어 눈물이 난다.

 우리는 가끔 이런 질문들을 한다.

 ‘너는 다시 태어난다면 뭐로 태어나고 싶어?’

 ‘너는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

 난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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