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반찬 투정하는 어린이들의 볼멘소리 방지 위원으로서 전날 저녁부터 아침은 유부초밥으로 하겠노라고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먹기 싫은 사람은 미리 말하라는 의미였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기에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뽀얀 쌀밥을 짓고 유부초밥 만들기 키트와 추가로 넣을 부재료들을 꺼내 들고 유부초밥 장인에 빙의했다. 서울로 출퇴근하던 남편이 최근 집 근처로 다시 발령이 나면서 아침을 함께 먹게 되자 평소보다 두 배의 양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을 깨우고, 나도 출근 준비를 위해 고양이 세수를 하며 종종 거리며 아침을 만들 던 그때였다. 남편이 장인의 솜씨를 발휘하던 내 옆을 무심하게 쓰윽 지나가며 말했다.
"나는 안 먹어. 아침 먹고 왔어."
이 무슨 자다가 유부초밥 옆구리 터져 굴러 떨어지는 소린가. 집에 우렁각시라도 있어서 먼저 일어난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었을 리는 없고 말이다.
너의 죄를 소상히 고하라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니 그제야 쏘 쿨한 말투로 대답한다.
“나 오늘 새벽 예배 다녀왔어. 나 원래 새벽 예배서 뭐 먹잖아.”
나의 무지를 꾸짖는 듯한 표정을 짓고 다시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 등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남편이 두 달에 한두 번 정도 새벽 예배에 나가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밥을 주지 않기도 하고, 새벽예배 후 바로 서울로 출근했기 때문에 그가 예배 후 흙을 파먹는지 뷔페를 먹는지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입 짧은 둘째 4개, 6학년 첫째 6개, 남편 10개. 이렇게 피타고라스도 울고 갈 철저한 계산법을 통해 만든 20개의 유부초밥 중 절반이 갈 곳을 잃었다. 나야말로 10년 넘게 아침은 안 먹는데 몰랐느냐 말이다. 엉엉.
애써 만든 유부초밥 절반을 버릴 수 없어 내 입에 쑤셔 넣으며 남편을 째려봤다.
“담부턴 밥하고 있을 때 미리 말해!!!”
귓등으로도 안 듣고 콧노래 부르며 면도를 하는 남편 뒤통수가 참으로 탐스러워 보였다. 한 대 치기 좋아 보였으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내 안의 폭력성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남편은 저녁밥 다 차려놓으면 퇴근 후 그제야 약속이 있다느니 이미 자기 먹을 샐러드를 가지고 왔다느니 해서 밥을 푸던 주걱을 내려놓게 만든 적이 종종 있었다. 이순신 장군님의 뜻을 잘못 받들어 자신의 식사 여부를 적, 아니 아내에게 밝히지 않던 그였다. 한 번 대포 같은 포효를 들려주었더니 조심하는 듯했는데...
브런치에 연재해야 하는데 요즘 서로 바빠 접점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쓸만한 얘기가 없었다. 글감을 준 당신이란 남편. 밀당의 천재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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