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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낢 Jan 17. 2024

그만두고 뭐하게?

나는 회사를 오래 다닌 적이 별로 없다. 자의로 그만두기도 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갑작스럽게 부도를 맞는 중견기업도 많았다. 게다가 해외 근무를 주로 하다보니 한국에 돌아와서는 더 버티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근무 환경도 다르고 인간관계도 매우 다르니까. 어떤 조직에 가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내심 '나는 조직생활에 맞지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 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쉽게 도망칠 수도 없는 '조직'을 내 손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다들 젊은 날 사업을 시작했다고 대단하다 부추기지만 실상은 그래서 서툴고 부족했다. 사회생활 경험도 짧고 인간관계에는 거의 잼뱅이였으므로 나는 창업자가 아니라 창직자에 가까웠다. 운좋게 과분하게 멋진 파트너들과 일하며 굵직한 계약을 땄지만 십년쯤 지나 정신차리고 보니 절대 멈출 수 없는 톱니바퀴를 하나씩 하나씩 더 하면서 회사를 성장시키지도, 개인을 성장시키지도 못한 채로 오도가도 못하는 우스운 꼴로 매일 저녁 스몰 사이즈 컵라면을 끼고 야근 중이었다. 그리고 안과, 산부인과, 내과, 이비인후과, 응급실을 거쳐서 드디어, 이 정도면 '퇴사해도 되겠다' 또는, '퇴사해야 되겠다' 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친애하는, 그리고 매우 신뢰하는 나의 첫번째 사수이자, 마지막 사랑인 남편에게 내 책상과 노트북, 그리고 회계사의 연락처를 넘겼다. 


그만두고 뭐하게?

주 4회 이상의 야근에 익숙한 워킹맘이라 비즈니스로 얽힌 관계를 제외하면 사적인 인간관계는 거의 씨가 말랐는데 몇 안되는 지인들에게 나의 퇴사사실을 알렸을 때 모두 응원했지만 동시에 같은 걱정을 덧붙였다. 바쁘게 살던 사람은 루틴이 무너지면 상실감에 빠지거나 병이 날 수도 있다면서. 과연 그렇기는 하다. 직장인은 그만두면 이직을 하거나 공부를 다시 시작하던데 사업자는 그만두면 뭘하지. 


농담하나. 10년동안 제대로된 휴가도 없이 일만했는데? 하고싶은 것은 천지 빼까리였다. 결혼 전에는 통장잔고가 딸랑거려도 여기 저기 쏘다니는 재미에 새 영화가 개봉하기 무섭게 극장에 달려가서 보고 덕수궁 미술관에 새 전시가 걸릴 때마다 기웃거렸는데 이젠 통장리밋이 풀렸으니 뭔들 못 하겠나. 그만두자 마자 처음 한달동안은 매일 아침 출근하듯이 차를 몰고 나갔다. 영화도 보고 의정부에 새로생긴 국내 최대규모의 카페에 브런치를 먹으러 가기도 하고 비오는 날에는 서점에 쑤셔 박혀 이책 저책 뒤적거리고 서점에 딸린 커피숍에 앉아서 보란듯이 전자책을 보고 날씨가 기가막히는 날에는 은퇴한 할배들이 그러듯이 아침부터 햇살 좋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죽였다. 사무실이 성수동에 있는데도 성수동 뒷골목 한번을 제대로 못 돌아봐서 그 동네도 잊지않고 한바퀴 돌았다. 물론 그래봤자 놀아본 놈이 논다고 내가 돌아본 곳은 '성수동 카페 골목'이라고 불리는 그곳이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인생의 설렘이 예전같지 않아 그런지 뭐 엄청 즐겁지는 않기도 했고, 이제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보기도 했는데 또 어딜갈까 찾는 것도 일이되기 시작해서 그것도 그만두었다. 


그 다음에 몰두한 일은 집청소였다. 거실 쇼파를 벽쪽으로 돌렸다가 창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벽으로 붙이고 큰 아이 방 침대를 옮겼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구 틈사이, 침대 밑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면 말도 못할 희열이 있다. 그 만족감에 중독되어 매일 오전을 보내면서 일주일도 넘게 매우 행복했다. 무거운 가구를 옮기는 데에도 요령이 있는데 가구 발에 부드러운 수건이나 발매트를 깔고 밀면서 옮기면 책장의 책을 다 빼지 않고서도 3단 책장쯤은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나면 혼자 자축하면서 식탁의자에 걸터앉아 에스프레소 기계를 돌려놓고 스스로 대견해 하며 감상하다보면 오전시간이 다 흘러갔다. 내 반려인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 첫아이는 학교갔다 오면 달라져있는 집을 뛰어다니며 내일은 작은 테이블을 자기 방에 넣자거나 어항을 자기 방에 두자거나 하며 재잘거렸고 나는 아이가 주는 영감으로 다음날 오전을 불태웠다. 


어쩌면 그렇다. 설날 친인척이 모두 모여 노처녀를 걱정하듯이, 추석이면 시아버지의 사돈의 팔촌까지 신혼부부의 가족계획을 걱정하듯이 우리는 스스로의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한다. 그래봤자 우리가 상상 가능한 미래는 말도 안되게 재미없는 것들 뿐인데도. 


쿨링브레이크

FIFA는 선수 보호차원에서 체감온도지수가 32도를 넘어서면 경기 전/후반 30분 경에 3분 정도 브레이크를 준다. 이 인간적인 휴식시간은 2014년 브라질 노동법원의 명령으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이 결정이 아주 낭만적이라고 느끼는 개인적인 이유는 이 시간이 온전히 선수가 휴식을 갖기 위해 배정된 시간이라는 점이다. 농구경기의 작전타임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물론 감독도 코치도 선수들이 물을 마시는 동안 쉬지 않고 코칭을 하지만 어쨌든 이 시간은 공식적으로 온전히 선수의 휴식을 위한 것이니까. 찌는 듯한 더위에서 경기를 뛰다가 심판의 신호와 함께 물을 마시러 터덜터덜 걸어나가는 시간. 90분이 아니라 90년이 넘는 인생에도 이런 작은 배려가 있으면 얼마나 감흡할까. 45분 중 3분이니까, 45년 중 3년으로 환산하면 너무 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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