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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너의 개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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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Sep 03. 2024

너의 개

단편소설                              

너의 개 (1화)



  ‘개를 버리지 마시오.’


  잔디밭에 놓인 그 팻말은 다시 보니 해그림자에 가려진 글자가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왜 그런 착각을 했을까? 너는 손 그늘을 하고 부신 눈으로 해가 쨍하게 내리쬐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공원을 산책하는 개들은 저마다 사람을 동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끈을 쥐고 한가로이 개를 따라가거나 개 유모차를 밀며 걸었다. 너 역시 개 유모차를 밀며 걸었다. 산들바람이 이마를 스치는데도 너는 등에서 땀이 났다. 잔디밭 사이로 다져진 흙길은 보기와 다르게 울퉁불퉁했고 덜컹거릴 때마다 너의 개는 거의 어김없이 너를 돌아보았다. 


  ‘괜찮아, 치치.’ 


  너는 치치를 향해 웃어주었다. 쿠에티아핀 성분이 퍼지는지 치치는 표정이 게슴츠레했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확인해 보니 호텔까지는 아직 4km가 남아있었다. 개들에게 놀이와 식사, 잠자리를 제공하고 배설물 처리까지 해준다는 그곳은 공원의 서쪽 끝 야산 너머에 있다고 들었다. 너는 그곳에 당분간 치치를 맡기기 위해 가는 중이었다. 

  그러면 당분간이라도 개 소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너는 믿었다.



                                                                    *



  “기다려.” 


  오솔길에서 마주친 남자가 개 끈을 당겼다. 

  신이 나서 땅을 킁킁대던 개는 즉시 궁둥이를 내리고 의젓하게 앉아 길을 양보했다. 미용사의 솜씨인 듯 귀가 툭 튀어나온 멋진 눈사람 스타일의 개였다. 개는 네가 손수 깎은 치치의 하얗고 나름 둥그런 머리를 빤히 응시하다가 끈을 당기는 주인을 따라갔다. 

  전방에 개 유모차가 오고 있었다. 개 유모차를 밀던 여자가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의아해서 돌아보자 뒤에 다른 개 유모차가 오고 있었다. 개 유모차를 잡은 여자의 미소가 어색해졌다. 앞뒤로 개 유모차에 포위된 너는 길가로 빠져 벤치 옆에 치치의 유모차를 세웠다. 엉겁결에 앉은 너의 머리 위로 플라타너스 잎이 어른거렸다. 건너편 나무 아래 개 유모차를 마주 세워놓은 여자들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바람에 하얀 머리털을 가끔 날리며 치치는 졸린 눈을 감았다. 


  “우리 애는 훈련이 잘돼서 밖에서만 싸요.”


  한 사람이 흐뭇한 표정으로 유모차에 묵직이 매달린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너는 핸드폰의 메모장을 열고서 간간이 그들의 대화를 적었다. 훈련해도 결국 치우는 건 주인이라고 하면서 그들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거리를 둔 채로 조용히 그들처럼 웃었다.

  전에 다니던 광고 회사 사람들도 그랬다. 모이면 주로 개 얘기였다. 대표는 자주 개를 데리고 출근했었다. 직원들은 문득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 개를 발견하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오민정 대리도 그중 하나였다. 탕비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개를 어루만지던 그녀가 너를 올려다보곤 정확히 미소 짓던 그 순간, 야릇한 설렘을 느끼며 너는 괜한 머그잔을 꽉 움켜쥐었다. 오민정은 너보다 네 살이 연상이었다. 딱히 반할만한 매력이 있지는 않아도 너로선 동경할 만한 대졸 정규직이었다. 나란히 서서 대화를 하거나 눈을 맞추고 웃음 짓는 것만으로도 너는 회사 사람들 속으로 마치 동등하게 섞여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예술인패스 신용카드?” 


  오민정은 네가 떨어뜨린 그것을 보고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너는 중퇴한 대학을 다닐 때 한 공모전에서 단편소설로 입선을 하고 그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그것은 일부 미술관과 박물관에 입장할 때 약간의 할인을 받는 것 외에는 사실 별 쓸모가 없는 카드였으나 덕분에 네가 회사에서 교정이나 보는 비정규직 인턴에 불과하지만은 않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간혹 소설을 쓴다고 하면 조금은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오민정이 그랬다. 


  “태경 씨, 지금 소설 써요?” 


  그녀는 네가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고 있으면 다가와 관심을 표했고,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웃곤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네가 말이 지나치게 없다거나 골똘히 생각하다 고개를 젓는 버릇에 대해 가벼운 핀잔을 주기도 했다. 기껏 네 얘기를 듣고 나선 동정이나 하다 결국 지겨워할 거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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