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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May 01. 2017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1)

 층마다 같은 듯 다른 느낌 (Marriott Marquis Atlanta)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변곡점과 좋았던 시기와 불행했던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경험하는 당시에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고 곱씹어 보면, 다르게 했어야 하는 부분, 미리 대비했어야 하는 부분, 도움이 필요했던 부분이 보인다. 끝이 안 보여 막막할 때, 같은 상황을 이미 겪은 누군가가 “괜찮아, 다 지나갈 거고 넌 더 멋있어질 거야”라고 말해줬으면 하는 때도 있다. 


리서치를 위해 만난 ‘미국 유학생 와이프’ 11명이 한국에 있을 때부터 미국에 있는 현재까지 거쳐온 긴 시간들을 펼쳐보니 몇 가지 일반적인 경로와 이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미국에 오기 전까지 준비하는 단계, 미국에 도착 후 정착하고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 일상적인 생활방식을 만들어가며 진로의 목표와 계획에 대해 고민하는 단계, 그리고 설정한 계획을 실행하는 단계를 거쳤다. 한국에서 아직 일을 하고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다음의 진로를 위해 대비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지만 사람들마다 준비가 달랐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고 일상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은 다들 진로와 미래라는 문제에 직면해야 했고 길을 찾길 원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아무것이나 할 수는 없는 어른의 삶을 타지에서 살면서 고민은 깊지만 행동은 쉽지 않았다. 


여기 다섯 개의 경로는 먼저 겪은 사람들의 분투와 배움과 깨달음을 보여 준다.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을 통해 확인한, 자기 진로를 다시 찾아가는 다섯 가지 경로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을 하는 경우의 대략적인 경험의 흐름과 감정 상태

한국의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에 오면서 이 참에 새로운 진로를 찾겠다고 결심하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포부는 보기에 참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실제는 쉽지 않다. 그동안 해온 일과는 다른,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길을 찾는 일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그 일을 내가 잘 모르는 환경에서 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을 때, 내게 새로운 길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은혜 씨도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해 진로를 다시 고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많이 지쳤던 게 … 제가 생각했던 업계 현실이 아니니까 ‘이 일을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전부터 계속 들었어요. 바꾸려면 빨리 전향을 해야 하는데 생각은 하면서도 현실에 계속 끌려가는 것 있잖아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막상 뭘 시작하려니 용기도 안 나고, 회사 다니면서 지치니까 다른 걸 적극적으로 생각할 용기도 여력도 없었고 그런 생각이 계속 들던 찰나에, 남자 친구가 박사가 돼서 결혼하고 같이 미국에 오게 됐어요.”

암흑기


직장에 여전히 적을 둔 상태에서 새로운 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경우와 직장을 그만둔 후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한 경우의 감정의 진폭은 같지 않았다. 이미 직장이 없어진 상태에서 다음 길이 보이지 않는 경우 사람들이 만나는 건 기대와 희망보다 막막함과 두려움이었다. 어린이들에게는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다 큰 어른들은 알아서 탐색하고 알아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고민만 많고 방향성은 없는 시기는 커다란 암흑이 되어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다는 강렬함은 있지만 탈출구는 없을 때 내가 갇힌 공간이 나를 숨 막히게 할 수 있다. 미국에 온 지 3개월 차인 은혜 씨에게 인터뷰 시점은 고민과 막막함이 한참인 시기였다. “여기 와서는 점점 평정심을 되찾다가 지금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계속 하락하는 것 같아요. 많이 행복한 건 아니고 고민이 큰 것 같아요. 요새 한 달 반 사이에는 제가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아요. 안정이 되면서 뭐해야지 하는 생각이 많아지면서, ‘아, 어떡하지?’ 이런 상황이에요.” 


방향성과 기대


길이 보이지 않고 계획이 불확실한 시간에 사람들은 일상을 살며 끊임없이 고민을 이어갔다. 하루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시기를 잘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불안한 삶을 끝내고 새로운 길을 정하기까지 그 사이에는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굴곡과 회복이 있었다. 거대한 암흑의 시간을 끝내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방향성이었다. 확신 없는 가능성이 아니라, 내가 기대하고 걸어갈 수 있는 목적지와 그를 향한 기울기였다. 어두운 격동의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 모두 자신의 진로에 대한 방향성만으로도 새로운 기대를 시작할 수 있었고, 불안과 혼란 대신 반짝거리던 원래의 얼굴도 되찾을 수 있었다.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하는 경우의 대략적인 경험의 흐름과 감정 상태

직장을 휴직한 상태에서 미국에 오는 경우도 있다. 소속된 직장이 있기에 안정감은 있지만, 직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삶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기에 또 다른 가능성을 고민하며 원래 직장으로 돌아갈지 말지 저울질해보기 마련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원래의 계획과 다르게 미국에 자리를 잡는 것으로 가족의 계획이 바뀌면서, 휴직 중이던 직장을 사직하고 뒤늦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휴직의 당위성 고민


육아휴직과 같은 명백한 사유가 없는 경우, 자신을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직장을 쉬는 것에는 결단을 위한 고민과 결심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그 시간의 필요성에 대해 자신이 분명해져야 하고, 복직 후 혹시 있을지 모를 불이익과 같은 불확실성에 대해 대범해져야 한다. 명분도 있어야 하고 간절함도 있어야 하기에 당위성을 고민하는 시기에 기대도 높고 걱정도 많았다. 회사를 쉬고 있던 소연 씨도 휴직을 감행하기까지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올해 10년이라는 의미가 커요. 그냥 지내다가 10년이 되니까 그동안 뭐했고 앞으로 뭐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때라서. 10년이라면, 스스로 안식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그리고 대학 다닐 때도 한 번도 휴학 안 해봤고 현재까지 한 번도 휴직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언제 하느냐, 모든 것이 선택의 이슈인데, 지금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어요.” 


새로운 경험과 고민


돌아갈 곳이 있는 상태에서 휴식은 즐거운 일이다. 다른 네 개의 경험 곡선과 비교했을 때 사람들이 보여준 감정의 흐름도 제일 안정적이다. 돌아가도 나쁘지 않은 직장이 있고 이직이 그리 절박하지 않을 때, 지금 이 순간이 최대의 고민이 된다. 어떻게 쉴지, 무엇을 할지, 내 앞에 놓인 빈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고민은 고통스럽지 않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면서 내가 얻은 것과 해낸 것에 대한 조급함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결정한 시간에 대한 책임 또한 내가 지면 그만이므로, 새로운 경험이든 이직과 같은 또 다른 가능성이든 이 시간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 역시 유동적이었다. 소연 씨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점차 유연해지고 있었다. “초기 단계에서는 과정을 좀 즐기고 싶었거든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런데 이제는  반이 끝났다고 느끼기 때문에 결과를 생각하면 또 되게 조급 해지는 거예요. 그래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영화를 읽고 들을 수 있어야 되는데 막 결과를 생각하면 조급해지고 더 나한테 채찍질을 해야 하고 그런데, 그냥 과정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물론 달라지는 게 없더라도 결국 내가 있던 회사에 돌아가고 1년이란 시간의 전후를 살펴봤을 때 1년 동안 이것도 하려고 했고 저것도 하려고 했고 좀 더 열린 사고로 많은 문화를 받아들인 자체가 내면적으로는 굉장히 충만하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을 해요. 저도 인터뷰 같은 걸 막 봤는데, 돌아와서 변한 건 없었지만 본인들이 다 경험으로 즐겼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목차 및 이전 글 보기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소개
1. 배경

    1.1. 우리 안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

    1.2. 기대와 다른 현실

    1.3.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요인들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2.3. 나의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격동기

    2.4. 정해진 계획 안에서 살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2.5. 육아에 집중하며 향후 진로의 방향성 고민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월요일, 목요일마다 업로드 예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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