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름'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부름은 내가 머릿속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나를 이끄는 힘이다. 그 힘을 느낌이나 직관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부름은 때로 내가 질문한 것에 답을 주기도 한다.
나는 며칠 동안 계속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어 줄까요?' 그리고 부름이 내게 답을 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아라가 낮잠에 든 어느 조용한 오후 부름이 찾아왔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름이 어떤 답을 줄까? 글을 하루에 두 개씩 쓰라고 하면 어떡하지? 글 쓰는 시간을 내는 게 지금 좀 힘든데. 정보를 주는 글을 써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라고 할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어떤 답도 오지 않았다. 나는 더욱더 가슴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런데 갑자기 쾅쾅하고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밖을 내다보니 두 명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고 가슴에 온 의식이 집중되어 있던 나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벌컥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한 명의 백인 남성과 흑인 남성이 서 있었는데 방문 판매원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인 남성이 아주 빠른 영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가스비를 대신 내주는 서비스 같은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내게 지금 바로 가스비 용지를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내가 다음에 와달라고 정중히 부탁했지만 그는 예약된 손님이 많아 다시 올 수 없으니 지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가스비 용지를 가지러 가는 척하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기를 그 백인 남성에게 건네주었다. 남편은 아주 단호하게 당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관심이 없으니 나의 부인을 괴롭히지 말고 지금 당장 우리 집을 떠나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백인 남성은 신경질적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대더니 핸드폰을 나에게 건네주고는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나는 부름 덕분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고 그것이 부름이 온 이유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모든 것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한 편의 에세이를 쓰고 자리를 잡고 명상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 참 깊은 명상에 빠져 있을 때, 이마에서 강렬한 빛이 느껴지며 하나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그날 오후에 만난 두 명의 방문 판매원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백인 남자는 없었다. 기억은 내가 조금도 신경 쓰지 못했던 흑인 남자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어깨를 약간 굽힌 상태로 굉장히 정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보며 미소를 띠고 있었고 백인 남자가 화가 난 상태로 자리를 떴을 때 밖에 있던 무거운 택배 상자를 집안에 넣어주며 시간을 내어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무례한 행동을 하는 백인 남성에게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부름은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흑인 남성의 눈이 놀라울 정도로 푸르고 아름다웠다는 것과 그가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는 것 모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질문에 대한 부름의 답이었다.
너는 왜 네가 결핍만을 경험한다고 생각하느냐.
왜 네가 가지지 못한 쪽만을 보느냐.
그리고 그런 너는 세상에 어떤 경험을 주었느냐.
네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신경질적으로 요구하는 사람이었느냐.
아니면 모든 순간에 미소를 잃지 않으며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느냐.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어주길 원했다. 홀로 글을 쓰며 좌절감을 느꼈고 더 많은 사람을 나에게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었다. 매일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며 한 명이라도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의 해석에 불과했다. 부름은 내가 보지 못한 흑인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 아무 말도 없었다. 부름은 단지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였다. 부름은 언제나 더 원대한 것을 보고 있었고 내 안에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나를 이끌었다.
부름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고 부름은 언제나 응답했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부름의 대답이었다. 부름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어주던 읽어주지 않던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글을 매일 쓰건 쓰지 않건 중요하지 않았다. 부름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경험이었다. 부름에게는 결핍의 경험도 풍요의 경험도 모두 중요했다. 그리고 언제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대답이 없었다.
괜찮아.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그 결핍의 경험도 중요해. 모든 것을 느끼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까. 그리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일 뿐이야.
부름에게는 모든 것이 다 좋았기에 대답이 필요 없었다.
오늘 길 건너편에 있는 도넛 가게에 갔다. 커피 한 잔과 크루아상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하고는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하는 완벽한 오후를 상상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서야 직원이 오더니 크루아상이 없다고 말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빵이나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오늘은 결핍을 경험하는 날인가 보다 하고 웃었다.
주문을 한지 삼십 분 만에 직원이 나의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했고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는 두 개의 머핀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
때로 내가 결핍이라고 섣불리 생각했던 경험이 사실은 풍요의 경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