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샌드위치를 읽다.

그 외의 동거.. 감자샐러드 샌드위치

by 남이사장

"경남아 나 집이 없어, 일주일 정도 너네 집에 지내면 안 될까?"

그와 만나 점심을 먹다가 그가 내게 물었다.

스튜디오 계약이 꼬여서 한 일주일 정도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서 물어보는 거라고.

"어 그럼 그렇게 해"

생각도 안하고 냉큼 답을 해버렸다.




남자인 오빠가 우리 집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는 것.

그 오빠를 그때쯤이면 3년 정도 나 혼자서 굉장히 좋아하면 지낼 때였고

지금 생각하면 둘 다 무척 위험한? 요구였는데

난 당연히 지내도 좋다고 했다.


오빠가 오기로 한 일정이 있는 주말,

난 바지런히 청소를 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다르게 무척 바지런하게 집 청소와 정리에 집착할 때여서

집에 오는 친구들이 욕조와 변기에 밥 비벼 먹어도 탈 없겠다고 놀림을 받으때였으나

난 참으로 혼신의 힘으로 집을 치우고 하지만 넌지시 흩트러진 모양새를 연출해서 그가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었다.

오빠가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낸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렴풋하게 "뭐 하러" 혹은 " 말만 많아질 거야" 라 생각하고 난 말을 아꼈다.

비밀이라고 할 건 없었는데 그러고 싶었다 보다.

나를 항상 주시하고 감시하던 재승이도 몰랐으니 사람이 속이고자 하면 속일 수 있는 것이었다.


주말을 보내고 오빠가 왔다,

늘상 자주 왕래하던 사이라 어색할 것도 없었다.

오빠도 나도 학교가 달랐으니까 학교 다녀온 짐을 내려놓고

내가 차린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과일을 먹고 오빠는 거실에서 나는 내 방에서 잠을 청했다.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는 이른 밤에 잠이 들었고 새벽에 일짝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빨래를 돌리고 아침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갔다.

오빠는 느지막하게 부스스 일어나서 뭐라고 투덜거리는데

혼잣말이려니 했었다.


막상 오빠와 같이 지내는 일주일 동안은 좋아하는 맘 대신 편안한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오빠의 부스스한 모습이 좋았고 내 등위에서 계속 뭐라고 말을 하는 오빠의 목소리가 따뜻했고 둘이 저녁을 먹고 배부르다며 슬리퍼를 구겨 신고 번쩍거리는 맨해튼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고 맨하탄의 각종 사이렌소리도 달콤했었던 기억이 있다.

오빠는 남자 나는 여자.

이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20 중반이었는데 왜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지.

좋아한다고 그리 따라다니고 모든 나의 축이 오빠에게 맞춰진 나였는데 작동 오류였는지 지금 생각을 해도 아까운 안타까운 때인듯 하다.

빨간 파자마 잠옷을 입고 지냈었는데 오빠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던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무 말 안 하다가 몇 년 후에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헛물켰네 어이구 이 모지리야"라는 말을 듣고도 난 내가 왜 모지리였는지를 깨닫지를 못했다.

오빠랑 지내는 동안 난 저녁과 아침을 열심히 해냈다.

학교 끝나면 동양 마트에 달려가서 장을 봐서

된장찌개를 끓일 재료를 사서 두 손 가득 들어오고 어렴풋하게 참으로 많은 반찬을 만들었었다.

어느 아침인가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오빠 학교에 가져가라고 싸주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이 나는 건 내가 오빠 것의 샌드위치 빵 가장자리를 잘랐다는 것이다.

손이 발발 떨렸던 일본베이커리 식빵 이였는데.

감자 샐러들을 딸기 잼과 함께 빵사이가 끼웠는데 오빠 싸가라면서 가장자리를 아무런 거칠 일 없이

두껍게 자르고 샌드위치의 개수를 늘였다.

근사하게 싸주고 싶었지. ㅎㅎ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어떤 재료로 그 어떤 재주를 부린다고 해도 그때의 샐러드 샌드위치는 따라갈 수 없다. 일본 제과점에 가서 제일 좋은 식삥을 사고 감자를 삶고 계란을 당근을 익히고 썰고 다지고 오이를 아삭하게 절이고 마요네즈를 바르고.. 모든 게 귀찮아서 쉽게 하려는 지금의 나에게는 꿈만 같은 기억이다.

동생과 함께 제주도 시골마을에서 맛있는 식빵을 사 와서 매일 감탄하면서 먹는 식빵.

보드랍고 도톰한 것이 텍스쳐가 말하기도 어렵게 쫀득쫀득하다.

그 당시에 맨해튼이 아니라 뉴저지까지 가서 일본베이커리 식빵을 준비했었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 샐러드를 가장자리를 비우고 잼을 한껏 바른 후에 높이 쌓아서 만든다.

누르면 눌러지고 내용물도 가득하다.

감자 샐러드는 준비과정은 쉬운데,

살짝 디테일이 필요하다.

감자는 으깨고 당근은 작게 깍둑 썰고 오이는 얇게 슬라이스 계란은 손으로 뭉개고 맛살을 손가락 두 개로

밀어서 으깨듯이 해주어야 식감이 좋다.

준비된 재료에 마요네즈를 적당히 레몬즙도 적당히 후추를 더해서 샐러드를 완성 한다.

감자 샐러드가 뻑뻑하겠지만 오이의 수분이 더해지고 맛살의 깔끔한 식 강이 더해지면서

서로 잘 어울리는 샐러드가 된다.


오빠와는 밤에 영화도 많이 보고 숙제를 같이 걱정하고 학교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를 하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좋은 일... 어떤 의미에서의 별일,

같은 건 없었다.

서로 배 집어 먹다가 손이랑 손이 맞다았을 때 서로 소르라치게 놀란 것.

딱 그 정도.

감자 샐러드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의 일주일이었다.

일주일이 지나 오빠가 돌아가고 혼자 남아서 집에 창문을 전부 열어젖히고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화장실에 약을 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혼자 냉장고에 잔잔히 남아있는

야채들과 반찬들을 모아서 신나게 밥을 비벼먹었었다.

집안에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내 폐부로 내 피부로 깊게 깊게 들어와 머물렀었다.

시간이 지나 아직도 내가 전화를 하면 가장 반갑게 맞아 줄것만 같은 오빠.

잘 지낼것이다.

그때의 난 그때의 오빤 너무 예뻤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3화샌드위치를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