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지금 대한민국은 룰라를 주목해야 하는가

by 남킹

2025년 6월, 캐나다 G7 정상회의장에서 세계의 눈길을 끈 장면이 연출되었다. 대한민국의 이재명 대통령과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만나 굳게 손을 맞잡고 어깨동무를 한 채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두 정상의 만남이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온 두 사람의 인생 궤적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소년 노동자에서 시작해 온갖 정치적 탄압을 이겨내고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두 사람. 특히, 극우 세력의 발호와 사법 시스템을 이용한 정치 공세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어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고 있는 룰라의 삶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한 대한민국과 이재명 대통령에게 단순한 참고 사례를 넘어 생생한 정치 교과서가 되고 있다. 그의 고난과 영광, 그리고 끈질긴 투쟁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과 경계해야 할 함정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1부: 가난의 용광로에서 단련된 두 소년공

룰라의 서사는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쿠주의 척박한 땅에서 시작된다. 1945년, 문맹인 소작농 부부의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이름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다. 그가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상파울루로 떠났고, 7년 뒤 어머니와 형제들이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어린 룰라에게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외면과 학대뿐이었다.

결국 가족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상파울루로 이주했지만, 가난의 굴레는 끈질겼다. 룰라는 7살 때부터 땅콩을 팔고 구두를 닦으며 생계에 뛰어들었고, 10살이 되어서야 겨우 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마저도 4학년 때 그만두어야 했다. 14세에 금속 공장에 취직해 선반공으로 일하며 고된 노동으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룰라의 유년기는 이재명 대통령의 삶과 놀랍도록 겹쳐진다. 경상북도 안동의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후 학비가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경기도 성남의 공장으로 향해야 했던 소년 이재명.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던 10대 시절, 프레스기에 왼팔이 끼는 끔찍한 사고를 당해 장애를 얻게 된 그의 삶은 룰라의 그것과 평행이론처럼 느껴진다. 룰라 역시 18세 되던 해,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중 프레스 기계에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두 사람에게 '소년공'이라는 꼬리표와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라는 육체의 상흔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 구조의 모순과 노동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었고, 불의에 저항하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정치적 소명의식을 싹틔운 원초적 경험이었다. 그들은 책상에서 배운 좌파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피와 땀으로 체득한 '민중의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2부: 노동의 상처, 저항의 씨앗

룰라가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게 된 계기는 개인적인 비극이었다. 공장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뒤, 그는 노동자의 권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후 결혼한 아내가 임신 중 간염에 걸렸으나, 열악한 환경과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는 참척을 겪었다. 이 사건은 룰라에게 '가난한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평생의 신념을 심어주었다.

1975년, 그는 10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브라질 금속노조 위원장에 당선되며 노동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다. 당시 브라질은 군부 독재의 서슬 퍼런 압제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룰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그의 투쟁은 단순한 임금 인상을 넘어,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그가 주도한 대규모 파업은 브라질 사회를 뒤흔들었고, 마침내 1980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는 '노동자당(PT)' 창당으로 이어졌다.

정계에 입문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 역시 궤를 같이 한다. 인권 변호사 시절, 그는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싸웠다. 성남시장이 되어서는 청년 배당, 무상 교복, 공공 산후조리원 등 시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을 추진하며 '실용적 민생 정치'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의 정책들은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말하는가?'라는 룰라의 유명한 어록과 정확히 같은 철학적 기반 위에 서 있다. 두 지도자 모두 개인의 상처를 사회적 연대로 승화시켰고, 자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3부: 삼바 신화, 브라질의 황금기를 열다 (1, 2기 집권)

세 번의 대선 낙선 끝에 2002년, 룰라는 마침내 브라질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에 브라질 기득권층과 국제 금융시장은 극도의 불안감을 표출했다. 급진적인 좌파 정책으로 브라질 경제가 파탄 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그러나 룰라의 선택은 예상을 뒤엎었다. 그는 이념의 도그마에 갇히지 않는 놀라운 실용주의를 선보였다. 중앙은행 총재에 우파 성향의 시장주의자를 임명해 시장을 안심시키는 한편, 그의 상징적인 복지 정책인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ília)'를 통해 빈곤층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정책은 단순히 현금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자녀의 학교 출석과 예방 접종을 의무화함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교육 및 보건 정책의 성격을 동시에 띠었다.

결과는 경이로웠다. 룰라의 8년 재임 기간(2003~2010) 동안 브라질은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고, 2,500만 명 이상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국가 부채는 해결되었고 중산층은 두터워졌다. 퇴임 당시 그의 지지율은 무려 87%에 달했다. "나는 좌파인 적이 없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브라질과 브라질 국민을 위해 일했다"는 그의 말처럼, 룰라는 이념을 넘어 국익과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룰라주의(Lulism)'라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이는 현재 이재명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실용'과 '민생'이라는 키워드는 국정 동력을 확보하고 국민적 지지를 넓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룰라가 좌파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던 것처럼, 때로는 진영의 논리를 넘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박정희 정책과 김대중 정책을 모두 쓰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러한 룰라식 실용주의와 맞닿아 있다.

4부: 사법전쟁과 극우의 발호

영광스러운 퇴임 이후, 룰라에게는 혹독한 시련이 닥쳤다. 브라질의 기득권 세력은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사법 시스템을 동원한 '법률 전쟁(Lawfare)'을 시작했다. '라바 자투(Lava Jato, 세차 작전)'라는 이름의 부패 수사는 룰라를 정조준했고, 그는 결국 뇌물수수 및 돈세탁 혐의로 기소되어 2018년 징역 12년 1개월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이로 인해 2018년 대선 출마가 좌절되면서, 브라질은 극우 포퓰리스트인 자이르 보우소나루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룰라를 수사하고 판결을 내린 세르지우 모루 판사는 '부패와의 전쟁을 이끄는 영웅'으로 떠올랐고, 보우소나루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입성했다. 그러나 이후 탐사보도 매체 '인터셉트 브라질'의 폭로를 통해 모루 판사가 검찰과 공모하여 룰라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도록 수사를 지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명백한 사법 농단이자, 특정 정치인을 제거하기 위한 표적 수사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 과정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성남시장 시절부터 대선 후보, 그리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검찰 수사와 재판에 시달려왔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정치 탄압'이자 '사법 쿠데타'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룰라의 사례는 사법 권력이 기득권의 손에 들어가 정치적 무기로 사용될 때,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보우소나루 집권 4년 동안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아마존은 파괴되었으며, 사회적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는 극우 세력의 위험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극우는 단순히 보수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을 통해 사회를 분열시키며,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법 시스템마저 사유화하려 든다. 룰라를 감옥에 보냄으로써 권력을 잡은 보우소나루와 그의 추종 세력은,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민주주의의 토양을 훼손한다. 룰라의 고난은 "극우의 어둠의 싹을 과감하게 잘라야 하며 그 잡초 같은 생명력을 끊임없이 지켜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피로써 증명한다.

5부: 불사조의 부활, 그리고 끝나지 않은 싸움

2019년,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2심 유죄 판결만으로 피고인을 수감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하여 룰라는 580일 만에 극적으로 석방되었다. 나아가 2021년에는 마침내 모든 부패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완전히 복권되었다. 사법살인의 족쇄에서 풀려난 그는 2022년 대선에 출마하여, 현직 대통령이었던 보우소나루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선거는 브라질 사회의 극심한 분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1.8%p라는 근소한 차이로 룰라는 승리했고, 12년 만에 대통령 궁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브라질 역사상 최초의 3선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2023년 1월 8일, 수도 브라질리아에 있는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궁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이는 2년 전 미국의 1.6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를 연상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극우 세력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얼마나 위협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룰라 대통령은 이들을 '광신도 파시스트'로 규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며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했다. 하지만 여전히 브라질 의회는 보수 세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사회는 좌우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 룰라의 세 번째 임기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극우의 망령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는 훨씬 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결론: 룰라의 길이 이재명의 길에게

지구 반대편 브라질의 늙은 노동자 대통령 룰라 다 시우바의 파란만장한 삶은 202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소년공에서 대통령까지, 그의 여정은 이재명 대통령의 삶과 놀랍도록 닮았다. 그들이 공유하는 가난의 기억과 노동의 상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공감과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의 원천이 되었다.

룰라의 1, 2기 집권기가 보여준 실용주의 리더십은 이념 과잉의 시대에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정 운영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가 겪었던 '사법 전쟁'과 극우 세력의 발호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기득권의 반격과 정치적 음해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굳건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룰라의 불굴의 재기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 승리의 증거다. 그는 조작된 혐의로 감옥에 갇혔지만, 진실의 힘과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시 일어섰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수많은 정치적 고비를 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이제 대한민국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룰라가 직면한 것처럼, 우리 사회 역시 극심한 분열과 갈등,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룰라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 도전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이념을 넘어 민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우의 잡초를 걷어내고,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공동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두 소년공 출신 대통령의 역사적인 만남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시련을 통해 더 강해지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며,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야 할 지도자의 숙명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룰라가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가고 있는 길은 앞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험난하지만 가치 있는 여정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128.jpg
바티칸의 최종 병기 _ 1.jpg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3화위험천만한 뉴라이트 사관